베리타스

[정재현] 믿음과 삶(2)

[정재현] 믿음과 삶(2)Nov 14, 2011 07:28 AM KST

그런데 사실상 이 물음은 너무 많이 물어왔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 물음은 묻지도 않고 이에 대한 대답들만을 떠벌려왔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온갖 교리들이 대체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등장했었으니 이 물음에 대해 대답을 들먹거려가면서 더 곱씹을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교리라 하고 보니 중국집 메뉴판에도 순서가 있거늘 교리에도 마땅한 순서가 있을 터인즉, 교리는 과연 신론으로부터

[정재현] 믿음과 삶(1)

[정재현] 믿음과 삶(1)Nov 12, 2011 12:21 AM KST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물어 마땅한 물음이지만 대답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게다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오히려 앞선 물음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통찰도 주목해 마땅하다. 종교의 연원이 죽음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생존본능과 떼어놓을 수 없으니 죽음이 없었다면 종교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6)Nov 09, 2011 02:22 PM KST

오늘날의 [정신여자중고등학교]의 근원은 경성(京城)의 연동교회에서 시작한 [연동여학교]이다. 이 학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여선교사 애니 엘러스(Annie J. Ellers)가 설립하였다. 그분은 여의사로써 당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공사관원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황후의 주치의 노릇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 정동(貞洞)에서 시작하여 [정동여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으나 몇 대 후의 교장 도티((S. B. Doty)때에 당시 [연못골]이라고 부르던 연지동(蓮池洞)으로 이전하여 [연동여학교]로 바뀌었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7)(마지막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7)(마지막편)Nov 09, 2011 01:51 PM KST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말은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하는 희랍어 원어 ‘oikoumene’에서 온 것이어서 ‘전 세계적인 것’이란 뜻인데, 세계의 모든 교회를 한 집안 권속으로 삼는 운동을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신도는 “하나님의 온 집안 사람”(히 3:6)이라고 말하였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Nov 09, 2011 01:50 PM KST

로마가톨릭교회가 계몽주의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트렌트 공회」 (1545~1563)를 소집하여 자체 교회의 부분적 개혁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더 강화하고 수호하였다. 이것은 제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무성했던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달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투쟁이었다. 특별히 18세기 말의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사상과 물질주의사상이 팽창하여 불신시대가 된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교리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Nov 09, 2011 01:48 PM KST

8세기 이후 모하메드의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전파되어 중동지방 즉 옛 페르시아와 시리아 지방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이 지역에 있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교 정권들을 타도하고 이슬람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4)Nov 05, 2011 04:22 AM KST

동남아에는 일찍이 불교가 오랜 역사를 통해 전파되어 불교국가가 된 나라가 많았는데, 버마도 불교국가였다. 미국의 회중교회가 파송한 저드슨(Adoniram Judson, 1788~1850)과 라이스(Luther Rice)가 인도로 파송받아 배를 타고 캘커타(Calcutta)를 향해 여행하던 중 침례교 선교사 한 사람과 만나 대담하면서 세례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 침례교의 세례교리를 배우고 자기가 받은 세례의식이 신앙의 확신 없이 된 것으로 알고 침례교를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3)Nov 05, 2011 04:21 AM KST

한반도 남단에 AD 42년에 건국된 가야국이 약 500년 후에 신라와 통일이 되었는데 가야국에 사도 도마가 선교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사적(史跡)들이 있다. 그것은 1987년 8월에 「도마석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4.87m, 폭 3.3m가 되는 큰 자연석 바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경북 영주군 왕류리에 있다. 이 석상의 머리 부분은 떨어져 없어졌고 어깨의 너비는 1.5m이다. 이 석상은 예술적으로 조각된 것이 아닌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2)Nov 05, 2011 04:21 AM KST

한국에 서양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일시에 몰려든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맨 마지막으로 개국(開國)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선교단체들이 가능한 한 연합체를 만들어 협력하는 길이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최선의 길이어서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와 캐나다 장로회의 선교부들이 1893년 1월에 연합하였다. 그리하여 독노회(獨老會)가 정식 탄생하여 이 선교연합회가 장로교회를 다스렸다. 감리교회도 남북미국감리교회 선교회 연합회에서 감리교회를 다스렸다. 이런 연합회는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넘어서는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1)Nov 05, 2011 04:20 AM KST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로서 최초로 조선을 방문한 귀츨라프(Gutzlaff)는 유대계 독일 출생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개혁파교회 선교회에 가입해서 동양선교의 꿈을 가지고 1826년에 출발하여 황해 해안의 상하이와 천진 등지를 항해하면서 선교지를 찾았다. 그가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속하여서 한국, 일본 및 오키나와 지방을 순방하는 무역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를 타고 통역관으로 출항하였다. 그 회사가 요청한 것은 영국과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Nov 04, 2011 11:46 AM KST

로마가톨릭교회가 계몽주의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트렌트 공회」 (1545~1563)를 소집하여 자체 교회의 부분적 개혁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더 강화하고 수호하였다. 이것은 제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무성했던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달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투쟁이었다. 특별히 18세기 말의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사상과 물질주의사상이 팽창하여 불신시대가 된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교리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Nov 04, 2011 11:43 AM KST

8세기 이후 모하메드의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전파되어 중동지방 즉 옛 페르시아와 시리아 지방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이 지역에 있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교 정권들을 타도하고 이슬람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0)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0)Nov 04, 2011 11:21 AM KST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선교가 먼저 된 중국과 일본을 이웃으로 한 조선에 천주교 선교의 길이 트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장군의 군목, 포르투갈 신부 세스페데스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있던 천주교회에서 전쟁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와 있던 천주교 선교회는 조선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9)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9)Nov 04, 2011 11:13 AM KST

중국에 온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는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에서 파송받고 1807년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로버트 모리손(Robert Morrison, 1782~1834) 목사였다. 모리손은 광동(廣東) 지방에 당분간 숨어 생활했다. 이 당시 서양인으로서 동남아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은 광동 지방뿐이었는데 광동이 동서 무역의 항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역상에 종사하는 서양인들만 거주할 수 있었고 선교사는 거주할 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8)Nov 04, 2011 10:58 AM KST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반 선교사들이 인도 식민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었을 때 이 회사의 목사로서 인도에 와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가난한 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하였고 15세 때 옥스퍼드대학의 코푸스 크리스티 칼레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입학시험 성적으로는 통과했는데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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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식전이나 식후 혹은 이기주의의 기도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가득찬 기도, 위안을 찾는 기도조차 응답해 줄 의무가 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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