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5)Nov 02, 2011 07:36 AM KST

소래 마을의 김좌수 김성섬은 일찍이 깨어난 사람인데도 여전히 옛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었나보다. 그의 후처 안씨가 그 집 자녀로써는 열 번째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김성섬은 아들 낳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딸을 낳은 것이다. 크게 실망한 김성섬은 홧김에 막말을 하였다.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Oct 31, 2011 08:20 AM KST

4세기에 일본의 정신사를 세팅해준 왕인박사, 그가 영암출신이었다. 화랑도가 단순히 육군사관학교가 아니듯이 박사 역시 단순히 관직명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일본서기』는 그를 단순히 박사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다른 책에는 그를 왕(王)이라 묘사하면서 우이고수라고 부른다. 우이(宇爾)는 우주, 즉 하늘이라는 뜻이기에 그는 하늘의 고수이므로 매우 종교적인 직책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도선 역시 이 곳 출신이었다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Oct 24, 2011 06:49 AM KST

정말 맛있게 늦은 점심을 실컷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왠지 불안, 불안했는데 식당을 나서자마자 정말 반갑지 않은 님을 만났다. 이제까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바지 장마철이라 나대지 않던 해님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자 그간 태양을 솔찬히 가려주던 구름들이 거의 실종되어 있었다. 비켜버린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 맹렬히 내리쬐고 있었다. 2번과 함께 가다가 분리된 13번 국도는 2번처럼 자동차 전용도로인데다 오르막길이었다. 구름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지체할 수 없기에 국도로 올라타서 걸어보지만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길은 훤하게 뚫려 있지만 예상치 못한 난코스였다. 태양은 모자 속에 숨긴 내 정수리를 사정없이 때려대고 상의는 땀으로 젖고 또 젖었다. 내가 살던 미국 같았으면 등이 다 타든 말든 웃옷을 다 벗어 던졌겠지만 차마 그럴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Oct 04, 2011 04:07 AM KST

나는 이런 도보여행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다. 해남에서 강진으로 오는 길은 위험한 도로였지만 그래도 길과 농토가 맞닿은 꼬불꼬불 국도였다. 그런데 새로 확장 개통된 2번 국도는 차만 쌩쌩 달리는 불쑥 솟은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조선시대 어르신들이 살아 돌아오셔서 삼남대로가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고 상상해본다. 한참을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Sep 26, 2011 01:20 PM KST

어릴 때 시골택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비포장도로를 무서우리만치 달리는 그 속도 그리고 기사님이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무릎에 앉힌 내가 택시미터기를 들이 받을까봐 한손엔 미터기, 다른 손엔 내 머리를 감싸시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그렇게 달리면서도 기사님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으셨다. 질문에 대답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우윳빛 물의 정체에 대하여 물었다. 답은 매우 명료했다. 태고 적부터 쌓이고 쌓인 산호와 어패류의 퇴적층들, 유황, 타닌과 같은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Sep 21, 2011 01:42 PM KST

김규식은 호가 우사(尤史)로서 강원도 홍천의 유서 깊은 청풍 김씨(淸風金氏) 양반의 후예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김지성이 동래부사 종사관으로 재직중에 민씨 정권에 대하여 일본 정권에 대한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3년 만에 객사하고, 김규식이 6세 때에 그의 어머니마저 죽으니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렸다.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Sep 03, 2011 11:20 AM KST

계획을 변경하든 뭘 하든 주변에 사람이 있고 인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갑자기 조상님들의 길을 바꾸어 버린 인간들이 미워졌다. 지금 걷고 있는 55번 국도는 조선시대에 살던 조상님들이 걷던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도로 바뀌었고 차만 쌩쌩 다닐 뿐 그 어느 누구도 걸어서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처럼 이 길을 걷는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물론 119로 전화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오래 전 조상들은 이 길을 걸어서 여행했어야만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3)Aug 31, 2011 06:50 AM KST

우리나라 최초 7목사의 한분인 서경조는 형 서상륜과 함께 소래 마을에 소래교회를 세웠다. 이 일에는 그 지역의 유력자 인 김성섬과 그의 장남 김윤방의 전적인 후원이 있었던 사실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언더우드 목사는 이 지역 인사들과 친숙해 져서 소래교회를 자주 방문하여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앙과 교육의 모든 분야를 지도하였다. 이 시기에 서경조 목사에게 두 번째 아들 서병호(徐丙浩)가 태어났다. 병호는 언더우드 목사에게 [젖 세례]를 받았으니 이는 우리나라 유아세례 제 1호이다.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Aug 27, 2011 07:29 AM KST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고 내게 묻는 사내에게 나는 북일면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여기서 북일면이 어딘데 걸어가려고 하느냐며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을 했지만 이 사내는 막무가내로 버티며 차에 타란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한 장면과 불안한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8)Aug 25, 2011 10:40 AM KST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반 선교사들이 인도 식민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었을 때 이 회사의 목사로서 인도에 와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가난한 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하였고 15세 때 옥스퍼드대학의 코푸스 크리스티 칼레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입학시험 성적으로는 통과했는데 떨어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2)Aug 20, 2011 08:57 AM KST

광산김씨 제 2대인 김성섬 김좌수에게서 첫 부인이 아들 셋을 낳고 죽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첫째가 김윤방, 둘째가 윤오, 셋째가 윤렬이다. 재취로 들어온 안(安)씨 가문 여인의 첫 아들이 김필순(金畢淳)이고, 그 다음 첫째 딸이 김구례(金求禮), 둘째 딸이 김노득(金路得), 둘째 아들이 김인순(金仁淳), 셋째 딸이 김순애(金順愛), 넷째 딸이 김필례(金畢禮)이다.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Aug 19, 2011 12:04 AM KST

한눈에 봐도 이상야릇한 분위기다. 화려하지만 아주 촌스러운 리본이 달린 큰 챙모자로 가려진 얼굴은 새빨간 립스틱과 떡분칠로 변장을 했어도 족히 70 가까이 돼 보였다. 블라우스와 치마는 울긋불긋하다. 게다가 빨간 양말에 비닐 뾰족구두다. 큰 가방을 벤치에 턱 하고 던지시면서 내가 앉은 벤치 끝에 앉으신 할머니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럽고 농촌 마을 정류장 분위기와 전혀 조화롭지 못한 튀는 모습이었다. 물론 울긋불긋 등산복과 빨강배낭을 맨 내 모습도 그 분위기와 조화롭지 못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 정류장 벤치 양쪽 맨 끝에 앉아 있는 분위기 비슷한, 그러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7)Aug 12, 2011 02:39 PM KST

인도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선구자는 영국의 침례교인 윌리엄 캐리였다. 그는 가난한 한 영국성공회 교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구두 만드는 제화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독서의 기회를 만들어 남의 책을 빌려 독서하였다. 빌린 책 한 권은 영어로 쓰인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Aug 12, 2011 02:36 PM KST

제1차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4개 주에서만도 인구 30만명 중 4만명 가까운 결신자가 생겨났고, 150여개 교회가 신설되었다. 중남부 지방에서도 수만 명의 결신자가 생겨났고 사람들의 개인생활과 가정생활의 변화와 함께 도덕적 기풍이 쇄신되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을 반대하는 학파의 비판이 많아 교파가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Aug 12, 2011 12:20 AM KST

7월의 첫 주말이었고 주말은 평일과 뭔가 달라도 달랐다. 방학 중인 내가 요일감각이 무뎌져서 그만 경계심을 늦추고 말았던 것이다. 기도하던 중 잠들어 버린 나는 깊이 잠들기도 전에 큰 소음에 깼다. 야식 배달원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다른 투숙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 게다가 발암물질의 냄새까지 스며든다.

오피니언

연재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식전이나 식후 혹은 이기주의의 기도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가득찬 기도, 위안을 찾는 기도조차 응답해 줄 의무가 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