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kimkisuk

    [김기석 칼럼] 희망은 변방에서 움터 나온다

    "교회가 세상의 추문거리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이런 현실에 직면할 때마다 과연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묻곤 했다. 원론적인 대답은 희망의 뿌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일렁이는 절망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
  • kimkisuk

    [김기석 칼럼] 미안합니다, 본회퍼 목사님

    "어느 목사의 막말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은 종교인의 책무이기에 뭐라 할 것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몰상식하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때, 더 나아가 신앙적이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특정인에게 불온의 찌지를 붙이고, 경멸의 언사를 일…
  • jorz

    [김기석 칼럼] 조르주 루오의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

    파리 코뮌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난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어린 시절 파리 교외의 지하실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가난한 이들의 신산스런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 경험은 일평생토록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어려운 이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었습니…
  • kimkisuk

    [김기석 칼럼] 파밀리아 데이

    "어머니를 상기할 때마다 내게 떠오르는 느낌은 따스함과 고요함이다. 엔도 슈사쿠가 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는 바로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자신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어머니의 따스함뿐이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손을 잡았을 때의 그 따스함, 안아 주셨을 때의 체온의 따스…
  • kimkisuk

    [김기석 칼럼] 천둥이 하는 말

    "아낌없이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 확장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욕망은 독점을 지향하기에 타자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잠재적 적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욕망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손익 계산을 하지 않는다. 기쁘게 자기를 증여한다. 그런 이들이야말로 불…
  • syagal

    [김기석 칼럼] 고통을 넘어 기쁨에 이르다

    "'이삭의 희생'(230×235cm)은 그가 거의 80세 가까이 된 1966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겪었을 나이이고, 젊은 날의 열정도 다 사그러들 법도 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 속에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세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의 우측 하단에는 아브라함과 장작…
  • tomas

    [김기석 칼럼] 의심은 더 깊은 인식으로 인도하는 통로

    오늘 우리가 함께 보려는 그림은 (107*146cm, Sanssouci Museum, Potsdam)입니다. 도마는 회의적 신앙의 대명사처럼 소비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그는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름으로만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그는 예수…
  • fra

    [김기석 칼럼]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프라 안젤리코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가 일평생 수사로 살면서 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성품이 좋은 수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프라 안젤리코'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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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석 칼럼] 습관의 폭력에서 벗어나라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벌어진 인종주의자의 증오 범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인간은 누구도 타자의 '있음'을 무화시켜서는 안 된다. 어느 종교를 신봉하든 그들의 있음은 생명의 주인이신 분의 의지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권력형 성범죄가 벌어지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
  • kimkisuk

    [김기석 칼럼] 당당함과 숭고함으로 걷는 길

    "예수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는 자신을 '인자'라 칭했다. 묵시문학적인 전통 속에서의 '인자'는 메시야를 암시하지만, 예수의 인자 선언은 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을 '보냄을 받은…
  • seo

    [시론] 노예시대가 그런대로 좋았는데...

    "5.18의 민주주의와 정의, 참된 민중 해방의 외침은 다시 이집트 군대 이상의 화력으로 조용해졌다. 2016년의 광화문의 촛불 혁명은 3년도 못 돼서 꺼져 가고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 공존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험하다. "그래도 박정희 때가 좋았다. 경제성장, "한강의 기적"을 우리가 만들지 않았는가?"…
  • kimkisuk

    [김기석 칼럼] 진흙 등불

    "신앙은 하늘의 눈으로 이웃과 세상과 역사를 보게 만든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물화시키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된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욕망의 눈으로 바…
  • nakyungwon_0103

    [서광선 칼럼] 내 눈의 들보, 네 눈의 티

    "2018년 막판에 여의도 정치판 소식은 거의 희극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웃지 못할 희극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날 대한민국의 총리를 지냈다는 "노련한" 정치인이 여당을 대표한답시고 이런저런 공식 모임에서 하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어처구니도 없고 너무 한심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가령 베트남 …
  • kimkyungjae_07

    [숨밭 칼럼] 플라톤의 동굴비유와 바울의 눈에 덮힌 비늘

    고대로부터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요 밝고 맑은 이성으로서 사건의 진위 판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왔다. 고대 헬라사람들의 로고스 이론이나 불교와 유교에서 인간 품성에 대한 신뢰가 그것을 말한다. 그런 입장에 비교하면 기독교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긍정적이…
  • kimkyungjae_07

    [숨밭 칼럼] 그리심산도, 예루살렘도 아니다

    유엔총회는 2017년 12월21일(현지시간) 용기 있고 올바른 역사적 결정으로서 "예루살렘 결의안'을 가결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미국내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 일방적 선언을, 유엔이라는 인류양심의 힘으로 부결시킴으로서 유엔정신에 입각한 '예루살렘 결의안'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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