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

    귀국하자마자 정신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공부만 할 때는 흡족하진 못해도 기도도 공부도 질서가 있었다. 목회를 할 때도 아침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취직이란 것을 하고 나니 내 계획대로 하루를 살기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잠시 pause버튼을 누를 짬도 없었다. …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

    의주에서의 체포령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 서상륜, 서경조 형제는 그들의 당숙이 살고 있는 남쪽 지방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로 남하하게 되었다. 그들의 당숙은 아마 옛날 해적의 침입로에 세운 봉화대가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살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씨의 후손들은 그를 봉대(烽…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

    로쓰 목사에게는 조선의 복음화가 지상명령이었다.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 나라 말로 되어있는 성서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갖고 있는 성서는 영어와 그것을 번역한 한문 성경뿐이었다. 그는 조선의 북쪽 국경선 너머 청나라의 우장과 고려문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중 뜻있는 조선 청년들…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4)

    18세기 중엽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영국 교회의 각성과 부흥을 위해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가 속한 영국성공회는 영적으로 퇴락해 있었고 목사들도 무기력하게 목회하여 신도들의 신망을 잃고 잃었다. 목사를 신사(gentleman)로 통칭하였고 신도들이 목사를 만나 인사 삼아 “신사님, 우리 …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7)

    민들레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라 가서 전혀 연고 없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뻗는다. 서상륜(徐相崙, 서경조(景祚) 형제는 로쓰 목사의 우리말 성서 번역과 소래마을 복음화의 결정적 인물들이다. 서경조의 본래 이름은 상우(相佑)이거 [경조]는 그의 자(字)인데 그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으므로 앞…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3)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3)

    30년전쟁 기간에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보헤미아와 영국과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나타나서 영성 회복을 위한 책을 저술하거나 찬송가를 작사해서 부르게 하거나 심지어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부흥시키고 도덕적…
  •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6)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6)

    로쓰 목사에게 있어서, 토마스 목사가 순교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선교의 사명감은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조선 왕실의 국금(國禁)에 의하여 길이 막혔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건 처음부터 기독교를 받아드린 곳은 없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라 길을 찾고,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닫힌 문이 …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2)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2)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가톨릭교회 교세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가톨릭 국가들과 교황청 사이에서도 교황의 권위와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났다. 첫째, 가톨릭 국가들이 자국 내의 교회와 수도원에 대한 인사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
  •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5)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5)

    우리나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러 온 열혈 청년 목사 토마스(Thomas)는 1866년에 대동강에서 순교 당했다. 토마스 목사와 관련된 영국 스코틀랜드 선교부의 중국 산동성 지푸(芝罘-오늘날의 燕苔)에 있던 선교부 총무 월리엄슨(A. Williamson)목사는 이 일을 영국 선교회에 보고하였다. 스코트랜드 선교부는…
  •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4)

    금맥을 찾아다니는 어느 탐험가가 어느 날 한 원주민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그 원주민들은 아주 친절하여 지나는 나그네를 친절하게 접대하고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그날 밤 그 여행자는 한 천막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녘이 되니까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해졌다.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일어나서 …
  •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3)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1889-1975)는 말하였다.“한 나라의 멸망의 요인은 외부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있다.” 1800년대 우리나라 형편은 국가적 말기현상의 표본이었다. 극심한 당파싸움과 적대의식, 부정부패의 편만, 탐욕스러운 외세의 침탈 등 그 혼란과 불안을 이루 다 말 할 수 없었…
  •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2)

    이 송천리를 순수한 우리말로 부르던 옛 이름. [소래마을]은 구월산 끝자락의 불타산맥이 이어지고 그 끝에 허룡산이 병풍처럼 마을 뒤로 둘러서 있고, 그 앞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바다에 이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마을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한 우리의 힘으로 [솔내교회]가 세워진…
  •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1)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1)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세인의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는 멀리 벗어나서, 물욕과 권세욕으로 병든 자본주의에 빠진 교회의 지도자(?)들의 행태와, 기독교 전반의 Mammonism은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의 원래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1)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1)

    제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중세 말기 문예부흥운동의 인문주의가 중세의 문화와 문명을 개혁하는 시대에 있었던 한 운동이었으므로, 종교개혁운동과 인문주의운동은 많은 점에 있어서 상호 영향을 준 것이었다. 즉 양자가 공통된 개혁의 타깃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 말에 정치사상가들은 국가가 가톨릭…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1)

    제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중세 말기 문예부흥운동의 인문주의가 중세의 문화와 문명을 개혁하는 시대에 있었던 한 운동이었으므로, 종교개혁운동과 인문주의운동은 많은 점에 있어서 상호 영향을 준 것이었다. 즉 양자가 공통된 개혁의 타깃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 말에 정치사상가들은 국가가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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