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6.3 자기를 기만하는 성서 문자주의 신앙의 극복

계시 신앙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에서 살펴본 바, 성서 문자주의 신앙은 기록된 계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리킨다. 이것이 위험한 까닭은 특정한 시간성과 유한성이라는 조건 아래 이미 주어진 과거의 기록된 신의 계시에 우발적인 신의 계시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유폐시켜 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신성모독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자주의 신앙을 가리켜 포이어바흐는 "미신"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장소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계시는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손상되지 않은 채로 향유할 수 있도록 문서에 의해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계시에 대한 신앙은 동시에-적어도 후세의 사람들에게-기록된 계시에 대한 신앙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시간성과 유한성의 모든 조건 아래서 씌어진 역사적인 책에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보편 타당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신앙의 필연성인 결과 및 작용은 미신과 궤변일 뿐이다"(<기독교의 본질>, 340-341)

포이어바흐는 나아가 성경이 도덕과도 모순되고 이성과도 모순되며 심지어 자기 모순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들어 영원하고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성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자기기만에 의한 궤변일 따름이라고 폐부를 찌른다.(<기독교의 본질>, 343) 신으로부터 출발한 계시라는 점을 내세워 성서의 갖가지 모순을 신비성 혹은 불가해성이라는 이름으로 대강 봉합하고 성경의 진리성에 일말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그 중심에 남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자기기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문자주의 신앙이 신의 진리와 인간 자유 사이에서 갈등을 부채질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아래와 같은 포이어바흐의 언명도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만일 신이 인간의 머리카락의 수를 센다면, 만일 신의 의지에 의하지 않고는 한 마리의 참새도 지붕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신은 어떻게 해서 스스로의 말- 인간의 영원한 행복이 달려 있는 말-을 기록자의 무분별과 자의에 맡겨두겠는가? 왜 신이 스스로의 생각을 모든 왜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기록자들에게 받아쓰게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만일 인간이 성령의 단순한 기관이라면 그 때는 인간의 자유가 폐기될 것이다!" 아, 이것이 얼마나 가련한 이유인가! 도대체 인간의 자유는 신적인 진리 이상의 가치가 있는가? 또는 인간의 자유는 오로지 신적 진리의 왜곡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기독교의 본질>, 342)

성서 문자주의 신앙이 내포하는 신적 진리와 인간 자유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 포이어바흐는 사실성과 확실성에 입각해 보편 타당한 진리로 성서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그 모순은 필연적으로 더 강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런 모순 속에서 문자주의 신앙을 유지하려는 개개인은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이는 자기기만에서 벗아날 길이 없다고 분석한다.(<기독교의 본질>, 344)

특히 이 같은 문자주의 신앙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활동 범위를 특정한 시간성과 장소성을 요소로 하는 성서 안으로 축소시켜 신을 확정된 과거의 문자 속에 속박시키는 신성모독 행위를 자기무의석적으로 저지르게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사실성과 확실성의 유혹에 기록된 계시라는 과거 시제에 붙들려 신의 현재와 미래 시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나 성서라는 기록된 문자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또 시제에 관한 한 어느 특정 시제로 규정할 수 없는 무규정적인 하나님이시다. 오늘도 내일도 창조세계를 운행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은 이미 기록된 성서 문자를 신격화하는 과거 시제의 그물에 결코 걸리지 않는 분이시다. 이미 주어진 계시가 주는 종교적 안정성에 취해 신을 기록된 과거의 문자에만 가두려는 신성모독적인 행위를 더 이상 획책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자 속에 갇힌 하나님은, 다시 말해 포켓 속에 들어온 하나님은 왜곡된 신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런 신을 섬기는 일은 우상숭배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주의에 입각해 성서 문자에 오류가 없다는 확신에 차 보편 타당한 진리로서 성서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얼치기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있다. 과학적 객관성의 잣대로 성서의 가치를 판단 하려는 이들 역시 성서의 권위에 도전하고 성서의 진실한 가르침을 왜곡하는 우상숭배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는 과학책이 아니다. 성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기자들이 축적된 종교·문화 전통이라는 한계 안에서 하나님과 조우한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문자주의 신앙의 또 다른 위험성은 그러한 신앙 유형을 고수하는 이들이 보이는 독단적인 태도다. 설혹 그것이 미신에 불과하며 자기기만적 궤변일지라도 믿겠다는 이들을 말릴 이유는 없다. 다시 말해 믿거나 말거나 그들의 선택이고 자유다. 하지만 기록된 신의 계시를 소유하고 있다는 허위의식이 다른 신앙에 대한 폭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기록된 계시를 기준으로 이들은 자기 믿음을 타자에게 강요하는 한편 다른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진리 수호자 행세를 하기까지 한다. 이런 신앙 유형을 주로 채택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성서 문자를 절대화하는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에 빠져 이단 시비를 통해 다른 신앙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했다는 점은 그 좋은 예다. 이처럼 문자주의 신앙은 타자에게는 억압을, 자기에게는 강박에 따른 소외를 낳기에 문제다.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고착화시키는 문자주의 신앙의 극복은 포이어바흐가 수차례 강조한 투사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는 데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등에 꽂힌 칼과 같은 종교적 안정 추구 욕망에 의해 사실성과 확실성을 추구하는 자기 믿음을 절대화해 성서에 투사했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고 경전 우상화를 포기하는 모험적 결단이 필요하다. 절대적인 신의 계시를 소유하고 있지 못해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견디는 것이 신앙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종교적 안정 추구 욕망으로 그려낸 왜곡된 신 이미지를 해체하는 우상파괴 신앙의 실천이다.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포켓 속의 신을 내려 놓아야 한다.

신의 계시는 사실성과 확실성을 담보하는 기록된 문자로만 포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시간성과 장소성으로 제약되는 성서 안에만 계시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은 성서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다. 성서를 덮는다고 침묵하지 않으신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은 성서 안팎에서 필연성을 가로질러 우발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으시고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때문에 소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앞세워 성서와 하나님을 동일시 하는 우상숭배 행위는 당장 멈춰야 한다. 성서는 하나님을 가리킬 뿐이지 하나님 자체가 아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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