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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저항: 전환과 전복

[편집자 주] 지난 6월 16일(월) 개최된 한국민중신학회의 월례세미나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민중신학적 담론이 개진되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전통신학은 ... 이미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지만]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임 있게 참여하는 [민중]신학은 오히려 부상한다”고 전제한 뒤 “고통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에 메아리로 공명하며 참여하는 민중신학[적]” 성찰을 ‘애도,’ ‘기억,’ ‘저항’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제시했다. 본지는 정경일 원장의 발제문을 각 주제별로 3회에 걸쳐 전재한다.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3)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베리타스 DB
가난과 죽임의 체제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은 세 가지다ㅡ협력하는 것, 달아나는 것, 달려드는 것. 협력하거나 달아나면 나 하나는 살 수 있겠지만 제2, 제3의 세월호가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살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세월호 사회의 항로를 바꾸기 위해 달려들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해 달려들어야 할까? 탐욕과 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의 방식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부각시킨 ‘의자놀이’의 은유는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하며 몰아붙이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이야 어찌 되든 나만 앉으면 된다. 모두가 적이다. 안전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으려고 다투는 아수라장에서 밟히고 밀려나고 탈락하는 타인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을 보며 “나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무사하다”고 안심한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살아남는 강자독생(强者獨生)의 길이다. 
그러나 탐욕의 체제에 순응하며 악착같이 경쟁해 이기더라도 최종적 승리는 없다. ‘노동 없는 자본주의,’ ‘고용 없는 성장’이 점점 더 지배적 현실이 되어가는 시대에 의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구직자, 실직자만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김진숙은 “오늘의 정규직은 내일의 비정규직”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고 실직자가 될 수 있기에 늘 불안하다. 비극은 그 불안이 사람들을 더 모질게 하여 신자유주의적 의자놀이에 더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관하고, 앉은 자들이 앉지 못한 자들의 고통을 모른 척한다. 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지만,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얻는 개인의 안전이 행복을 줄 수 없다. 의자에 앉지 못한 자도 앉은 자도 모두 불안하고 불행하다. 
고통이 사람들을 깨우친다. 의자놀이 사회, 세월호 사회에서 불안하고 불행하게 살아온 시민들은 4·16 이후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이전에는 가만히 있던 이들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한다. 그들의 참여와 행동은 전통적(?)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주도 없이 자발적,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 개인이 집단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학생 용혜인은 지난 4월 말에 “가만히 있으라ㅡ침묵행진”을 제안하여 매 번 수백 명이 참여하는 직접행동을 여러 차례 주도해오고 있고, 벌써 두 차례나 연행되었다. 그 외에도 엄마들, 고등학생들, 동네 주민들처럼, 기존의 조직운동에 참여하지 않던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런 시민 행동이 세월호 ‘이후’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확산되며 사회운동 양식의 변화를 가져온 ‘촛불시위’는 시민의 자율적, 자발적 행동을 상징한다. 또한 지금의 시민 행동이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이나 2008년의 촛불시위보다 더 큰 규모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의 시민 행동에는 삶의 근원적 변화를 바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근원적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세월호를 단번에 전복시켰지만, 우리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적당히 항의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한, 신자유주의를 단번에 전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전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복이 불가능한 시대에도 ‘전환’은 가능하다. 전환이란 무엇으로부터 무엇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메타노이아(회개)가 그것이고, 안병무가 제시한 탈(脫)/향(向)이 그것이다. 그것은 탐욕에서 생명의 가치로, 이기적 삶의 방식에서 이타적,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들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 또는 “돈보다 생명”이라는 손팻말은 세월호 침몰의 근본원인이 탐욕과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이며, 그 체제로부터 전환해야만 살 수 있다는 각성과 각오를 표현한다. 
탐욕의 체제로부터 전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한 저항이다. 우리가 사회이다. 세월호 사회의 항로를 바꾸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내탓이오〉 운동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죽임의 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나부터 회개”하자며 〈회초리 기도회〉를 갖자는 것도 아니다. 〈내탓이오〉 운동의 한계는 참사의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지 못하거나 은폐하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우리 시대의 악은 이름과 주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처럼, 세월호를 침몰시킨 악의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악의 이름은 탐욕이고 그 주소는 신자유주의다. 〈내탓이오〉 운동이 저항적 의미를 얻으려면, 우리의 집단적 이름이 탐욕이고 우리의 주소지가 신자유주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안의 신자유주의, 내 안의 세월호를 알아차리고 참회 혹은 전환할 때에만 죽임의 항해를 끝낼 수 있다.  
전환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적 의자에 앉을 때 얻게 될 안전감을 포기하고 의자에 앉지 않고 사는 삶, 세월호 밖에서 사는 삶이 위험하고 두렵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라면 덜 두려워할 수 있다. 오늘의 민중신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개인들에게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삶으로부터 전환하는 것이 사는 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그 개인들이 연대하여 전환의 삶을 함께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민중신학은 ‘민중교회’의 역사적 경험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안병무는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에서 “교회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0세기의 민중교회는 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의 원형으로 시작된 운동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중교회 운동이 약화되어왔다고 하지만, 사실 진화해 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과거의 ‘계급교회’로서의 민중교회는 쇠퇴했지만, 다중적 고통의 부르짖음이 더 크게 들리는 21세기의 민중교회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회’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권진관은 민중교회 활동이 복지, 마을공동체운동, 청소년운동, 생태환경운동, 외국인노동자 운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전문화 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런 교회들의 “연대체”로 21세기의 민중교회를 정의한다. 
이런 민중교회 운동은 전환을 통한 전복을 꿈꿀 수 있게 한다. 국가를 한 번에 바꾸는 정치적 변혁은 어려워도 생활공동체를 바꾸는 문화적 변혁은 불가능하지 않다. 오늘의 민중교회 혹은 대안교회는 탈-신자유주의적 삶을 꿈꾸는 공동체, 마을, 지역과 동맹하여 공생(共生)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탈/향의 전환이 우리 시대의 전복이다. 지난 해 [생명평화마당]이 주최한 〈작은 교회 박람회ㅡ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도 그런 탈/향적 전환과 전복의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이정배는 ‘작은교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작다는 말은 종래와 같은 기형적(자본화된)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자 좀 더 다양해지는 것(카리스마 공동체)이며 역사적 뿌리에 충실한 것(언더그라운드 교회)이고 종국에는 치열하게 대안적 신앙양식을 창출하는 것을 함의한다.” 세월호 이후/안의 한국사회에서 민중교회 혹은 작은교회는 체제에 투항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달려든 이들, 탐욕과 경쟁의 체제로부터 전환한 이들이 연대하여 대안을 만들어가는 탈/향 공동체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런 탈/향 공동체가 추구하는 전환은 안병무가 성찰한 공(公)의 실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것, 즉 “아무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것”을 홀로 차지하려는 탐욕의 세력과의 투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도생, 강자독생의 길에서 공생의 대안적 삶으로 돌아서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이다. “공을 공으로 돌리는 것”은 함께 사는 길인 것이다. 함께 사는 삶으로의 전환은 ‘최대’가 아니라 ‘최소’의 길이다. 시인 송경동은 호소한다. “우리의 요구와 꿈이 큰 것도 아니다. 당장 사유재산을 폐지하자는 말도, 모든 기업과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요구도 아니다. 자본 권력을 민중 권력으로 라는 요구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더 슬프지만 다만 안정된 일자리 하나 얻게 해달라는 소박한 꿈들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슬픈 호소들이다.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나누자는 것이다. 너희들하고 같이 못 살겠다가 아니고, ‘함께 살자’라는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슬픈 호소들”에 응답하며 그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공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기적 안전과 안락의 의자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과 경쟁의 항로에서 뛰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깨우쳐준다. 뛰어내려야 산다! 그 자발적 위험의 감수와 전환이 세월호 안의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뛰어내려라. 그러면 너를 받아 줄 그물이 나타날 것이다.- 禪家의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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