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6월 16일(월) 개최된 한국민중신학회의 월례세미나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민중신학적 담론이 개진되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전통신학은 ... 이미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지만]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임 있게 참여하는 [민중]신학은 오히려 부상한다”고 전제한 뒤 “고통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에 메아리로 공명하며 참여하는 민중신학[적]” 성찰을 ‘애도,’ ‘기억,’ ‘저항’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제시했다. 본지는 정경일 원장의 발제문을 각 주제별로 3회에 걸쳐 전재한다.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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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 시점에서 재경험한다. 또한 기억의 다리는 그 위로 걷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도 형성해 준다.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나’가 되고 기억의 공유를 통해 ‘우리’가 된다. 인간은 기억함remember으로서 자신과, 공동체와 다시re 하나가member 된다. 그 하나 됨은 삶과 죽음의 경계도 넘는다. 요하네스 메츠는 고통의 기억을 통해 산 자는 죽거나 잊혀져서 말을 할 수 없는 이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억은, 인간을 경계를 넘어 서로 기대고(人) 관계하는(間) 존재가 되게 한다.
그런데 기억은 복수적이고 복합적이다. 사건은 하나지만 기억은 여럿이다. 주체의 관점에 따라 사건이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각 주체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 혹은 자신이 잊지 않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창조하거나 왜곡하거나 조작하기도 한다. 특히 국가폭력의 경우 기억의 복수성과 복합성이 더욱 분명하다. 가해자인 국가권력은 사건의 ‘공식적 기억’을 만들고, 그것과 다른 피해자의 기억을 억압한다. 피해자는 ‘대항기억’으로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에 맞선다. 따라서 사건의 진실을 다투는 ‘기억투쟁’이 벌어진다.
이념적 갈등이 격렬했던 한국 현대사에는 이런 기억투쟁의 사례가 많다. 예를 들면, 제주 4·3을 가해자인 국가권력은 ‘반란’으로 기억하지만 피해자인 제주 민중은 ‘학살’로 기억한다. 광주 5·18도 국가권력은 ‘폭동’으로 기억하지만 광주 시민은 ‘민주화운동’ 혹은 ‘민중항쟁’으로 기억한다. 피해자들의 기억투쟁은 고통스럽고 지난하게 전개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4·3은 66년 만에, 5·18은 17년 만에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을 피해자의 기억으로 수정하거나 대체했다. 그런데 이런 공식적 기억의 수정과 대체 가능성은 피해자들에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게 한다. 기억투쟁을 통해 그들의 대항기억으로 국가권력의 공식적 기억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 공식적 기억 역시 정치적 역관계의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다시 다른 기억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쟁’도 정치권력의 변화가 국가의 공식적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 사례이다.
4·16 세월호 참사도 기억투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가해자인 권력과 자본의 의도에 따라 사건의 표층 원인ㅡ유병언과 구원파의 종교적 광신, 선장과 선박직의 도덕적 해이, 소위 ‘관피아’의 적폐ㅡ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고 있고, 사건의 심층 원인ㅡ권력과 자본의 구조적 책임ㅡ은 은폐되고 왜곡되고 조작되고 있다. 그럴수록 피해자들은 기억의 왜곡과 유실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대상은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가 곧 기억 과정의 일부이다. 4·16에는 과거의 4·3이나 5·18에는 없던 현상이 하나 있다. 정보 획득의 ‘실시간성’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었다. 이 실시간성이 중요한 이유는 권력과 자본의 정보 독점이나 일방적 편집이 용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매체들은 특정 관점으로 선택하고 해석한 정보를 전파하지만, 시민들은 그것을 재료로 하여 전혀 다른 관점의 분석과 주장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제도언론이 전유한 정보를 대안적 해석을 위한 정보로 재전유할 수 있는 자율성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 제도언론을 불신하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스스로 사태를 기록한다. 심지어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던 아이들까지도 자신들의 최후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문자로 남겼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기록자요 기자가 되었고, SNS는 ‘사용자 제작 뉴스’(User Created News)를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이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관찰, 기록, 분석이 바로 공식적 기억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도 주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기억된다. 세월호 참사의 실시간적 정보에서 여러 기억들이 실시간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기억이 단지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개별적 주체는 특정한 관점을 선택하지만, 그 관점을 공유하는 이들이 집단적, 사회적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특정한 관점으로 선택하고 공유한 기억을 통해 사람들은 결속하거나 배제한다. 이처럼 선택이 불가피하고 기억이 복수적이라면,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민중신학은 희생자 중심의 관점을 선택한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4·16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한 추모미사에서 유가족 대표 유경근 씨는 호소한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저희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민중신학은 기억의 신학운동이다.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은 예수와 역사 속의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그들과 다시 하나 되어왔다. 세월호 사회의 민중신학이 모든 힘을 기울여서 해야 할 것은 희생자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안병무는 “민중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이 민중신학”이라고 했다. 오늘의 민중신학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말해야 한다. 오늘 희생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라며 말하고 있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이 진상규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기억투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침몰과 구조 실패의 원인은 ‘세월호 이후’만을 추적해서는 규명할 수 없다. 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는지 규명하려면, 세월호가 지나온 죽음의 항로를 모두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고통의 시작이 아닌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세월호 참사는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제국주의 강점, 분단, 전쟁, 독재, 산업화, 신자유주의로 연속된 사회적 악의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세월호 이전에도 우리 사회의 ‘세월호들’이 하나 둘 침몰해 왔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세월호 ‘안의’ 삶이었다.
우리가 세월호 안에서 경험해온 것은 ‘가난’과 ‘죽음’이다. 어느 유가족이 안산 합동분향소에 한탄의 글을 남겼다. “그 동안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이제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가난한 그는 세월호 ‘이전’에도 ‘이후’에도 가난하다. 차이는 그나마 있던 작은 행복조차 아이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것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세월호 안에서 살아왔다. 가난한 이들은 오늘도 과적상태의 신자유주의 세월호 안에서 돈과 물질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절대적 빈곤’은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은 없고,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극빈국가들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신명호는 최근의 한 집담회에서 가난한 사람을 ‘절대적 빈곤선poverty line’ 아래의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적 삶의 수준’의 절반 수준 아래의 삶을 사는 이들로 정의한다. 그는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의 15퍼센트 정도는 여전히ㅡ그리고 앞으로도ㅡ가난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가난은 상대적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체적 부의 양이 팽창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의 무게만큼 그들이 느끼는 비참의 무게도 커진다. 그 비참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가난한 자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난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세월호에서 250명의 청소년들이 죽임 당했지만, 2012년 한 해 동안 336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청년, 여성, 노인의 자살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살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가난’이다. 가난한 이들은 ‘살기 싫어’ 죽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없어’ 죽는다. 삶이 지겨워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옥 같아서 죽는다. 지금 여기에서 지옥을 사는 이들이 지옥을 떠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가난과 죽음의 세월호 사회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가난한 자는 자신의 명보다 일찍 죽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비통하게 확인해 준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구조적 죽임’을 당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삶의 구조적 불안정성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2013년에 한국의 산업재해자 수는 91,824명에 이르고, 그 중 사고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1,090명, 질병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839명이었다. 매년 2천여 명이, 약 네 시간마다 한 명씩,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부끄럽고 비참한 ‘OECD 1위’ 항목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전에 이미 죽음의 세월호였다.
죽는 자만이 아니라 산 자도 괴롭다. ‘자살율 최고’가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자기파괴적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라면 ‘출산율 최저’는 자포자기적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구조적 불안이 개인적 불안과 불행을 낳고, 그 불행이 죽음 혹은 비-생명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도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세월호 이전에는 ‘정규직’이라도 희망했지만, 세월호 이후에는 ‘살아 남는 것’을 희망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불안감, 불행감, 피로도, 자살율의 수치로 보면 한국의 ‘국민총고통(Gross National Suffering)’은 세계 최악 수준일 것이다.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으면서 이전의 세월호들인 가난과 죽음이 떠올랐다. 그 세월호들 안의 오래 된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4·16의 기억은 온전할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죽음의 바다로 끌고 와 빠뜨린 세월호들의 항로를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세월호 진상규명도 근본적 원인규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세월호들은 죽음의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면에서 ‘죽임’이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민중신학자들에게 비통함과 함께 희망을 준다. ‘죽임’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남동은 말한다. “죽음(死)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형제를, 이웃이 이웃을, 동포가 동포를 죽이는 ‘살(殺)’의 문제는 우리가 마음 고쳐먹고 회개하고 제도를 달리하면 어느 정도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회개, 곧 전환이 죽임의 항해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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