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희년, 하나님이 제정하신 정의와 평등의 제도(2부)

세계기독교선교포럼 2025년 목회자 포럼 장윤재 교수 발제문

이화여자대학교 장윤재 신학대학원장이 얼마 전 '위기의 시대, 희망의 선교'라는 대주제로 열린 세계기독교선교포럼 2025년 목회자 포럼에서 '희년, 하나님이 제정하신 정의와 평등의 제도'(Jubilee as God's Institution of Justice and Equality)란 주제로 발표했다.

장 교수는 해당 영역의 주제 발표에서 지난 50년간 세상을 지배해 온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불의의 만연이라는 사실이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총평했다.

또 "오늘의 정의롭지 않은 체제 속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며 "이 체제 안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악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지 않는 선이 우리의 죄를 고발한다. 죄는 하지 말라고 금한 것을 한 것만이 아니라,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불의의 극복을 우선적인 선교 아젠다로 제시했다. 본지는 발제문 전문을 입수해 이를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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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4. 하늘을 향한 울부짖음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만사 형통할 것이라는 믿음은 결국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불의의 만연이라는 사실이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가 경험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하려고 무리하게 자본시장을 개방하다가 1997년에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가계나 기업이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추웠던 겨울에 길거리로 강제 퇴직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노숙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한국 사회가 빨려 들어갔습니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 공동체가 찢겨 서로 갈등하는 사회로 변모하였습니다. 1997년 이후 한국은 이른바 '3무 성장', 곧 신규고용과 임금인상과 분배가 없는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이전에는 경제성장이 곧 빈곤율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정설인 것처럼 행세했으나 1997년 이후의 한국은 "아랫목이 절절 끓어도 윗목이 냉골인"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의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의 불평등이 세습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교육은 사회적 계층상승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교육은 거꾸로 부모의 사회적 계급을 세습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한국 사회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그가 누구의 자식인가'와 '그가 누구와 결혼했는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신분사회로의 회귀나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 세계의 소득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은 대단히 큽니다. 전 세계 인구의 단 10%의 부자가 전 세계 소득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 중 가장 가난한 절반은 오직 8.5%만 벌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단 10% 부자가 전체 부의 76%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절반은 겨우 2%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단 67명만이 세계 부의 5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한 이들을,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Pope Francis)라고 했는데, 이러한 수치는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사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의 규제 완화 정책과 자유화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증가했습니다. 오늘의 세계 불평등은 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가 정점에 달했을 때만큼 심각하다고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는 말합니다. 성 불평등은 더욱 심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총 근로소득(노동소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미만입니다.

이 보고서는 또 전 세계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생태학적 불평등 및 기후변화에 대한 기여도의 불평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주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상위 10%가 전체 탄소 배출량의 50%를 담당하는 반면, 하위 50%는 전체 배출량의 12%에 불과합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곳은 세계의 부유한 지역인데, 이 지역들로 인해 세계의 가난한 지역들이 점점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중적인 불의입니다.

아,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지난 50년간 '사회정의'와 '이웃사랑'이라는 가치와의 이념전쟁을 선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태풍처럼 휩쓸고 간 지구촌 곳곳에서 치유와 회복, 자유와 해방,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향한 울부짖음이 들려옵니다. 이 울부짖음은 하늘을 향한 외침입니다. 이 외침은 하나님마저 떠나버린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이 세계의 밑바닥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절규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선교적 상황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가 다시 성서를 열어 희년의 약속과 비전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입니다. 고 위르겐 몰트만은 고통과 절규로 가득 찬 오늘 우리의 세계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우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적 구조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강자와 약자를 분리해 놓은 정치적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의 자연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동식물의 다양한 종을 매년 감소시키고 있는 인간 사회 속에서 먹고 마시며 살고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희생시켜 가면서 우리의 현재를 즐기고 있으며,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의 잘못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러한 체제는 정의롭지 않은 체제이며, 이 체제는 그 안에서 먹고 일하고 사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악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지 않는 선이 우리를 고발한다.

오늘의 정의롭지 않은 체제 속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 체제 안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악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지 않는 선이 우리의 죄를 고발합니다. 죄는 하지 말라고 금한 것을 한 것만이 아니라,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가 행하지 않는 선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연 무엇이 두려워 성서 안의 완전히 새로운 신세계를 그저 아주 면 옛날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까?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불의의 극복이 우선적인 선교적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그동안 국가와 기업이 여러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국가와 기업이 제시하는 낡은 상상력과 해법을 넘어 복음의 생명력에 기초한 새롭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 대안과 실천이 곧 희년입니다.

희년은 단순히 50년째 한번 맞이하는 특별한 행사(program)나 사건(event)이 아닙니다. 희년은 패러다임(paradigm)입니다. 희년은 시스템(system)입니다. 희년은 제도(institution)입니다. 희년은 자신을 '자유의 제도'(institution of liberty)라 불렀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고 대안입니다. 희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하신 '정의와 평등의 제도'(institution of justice and equality)입니다. 성서의 희년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먼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한 오늘, 희년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입니다.

5. 희년을 선포하라!

국가와 기업의 낡은 상상력을 넘어서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정의와 치유 그리고 해방과 회복을 이룰 기독교적 대안이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그 대안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사랑하는 책인 성서 안에 있습니다. 성서 안의 기독교적 대안이 바로 '희년'입니다. 우리는 이 성서의 대안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세계에 창조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기후가 붕괴하고, 전쟁이 확산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안으로 선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잘 아시지만, 성서에서 희년은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을 7번 지낸 다음의 해를 말합니다. 속죄의 날에 뿔 나팔 소리와 함께 희년이 선포되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이 선포됩니다. (레위기 25:10) 사람들은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 돌아갑니다. 희년에는 농사를 지어도 안 됩니다. (레위기 25:11) 땅은 투기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다만 그 땅 위의 나그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13) 무엇을 사거나 팔 때 이웃 사이에 억울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레위기 25:14) 세금과 이자는 철저히 금지되었고 진 빚도 무조건 탕감되었습니다. (레위기 25:37) 식객과 종으로 타향에 팔려 간 사람들은 고향으로 되돌아옵니다. (레위기 25:39)

레위기에 기록된 이런 희년법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사회상, 곧 노예와 농노의 반란과 채무자들의 극에 달한 궁핍과 권력자와 부자들의 횡포가 극대화되었던 시대 속에서 극심하게 분열된 이스라엘 공동체를 개혁하고 회복하려는 레위인들, 곧 민중 사제들의 신앙과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희년에 담겨있는 알맹이는 세 가지의 관계 회복(갱신)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갱신)입니다. 희년이 선포되는 날은 속죄일인데, 1년에 하루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가서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대속 받습니다. 속죄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갱신)됩니다. 두 번째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갱신)입니다. 가난한 이웃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주고, 가난한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땅과 집과 자유와 가족을 회복시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땅을 포함한 자연과의 관계 회복(갱신)입니다. 안식년에도 땅을 쉬게 하지만, 희년에도 땅을 쉬게 합니다. 또 땅에서 저절로 난 산물을 가축과 들짐승이 먹게 합니다. 이와 같은 삼중의 관계 회복(갱신)이 희년의 알맹이입니다.

이렇게 선포된 희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선포되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사렛의 한 회당을 찾아간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이 말씀이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곧 '사명 선언'(mission statement)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여기 이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Lord's Favor)가 바로 희년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신 후 예수님은 자신을 쳐다보는 회중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누가복음 4:21)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설교입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이렇게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한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 희년, 곧 주의 은혜의 해는 50년마다 이루어지는 어떤 주기적인 행사가 아니고, 또는 최장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여기에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실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오래된 찬송가 가사처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 곧 하나님의 희년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은 성서 속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희년은 단지 3,500년 전 고대 이스라엘의 한 '종교적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 제21세기 세계에서 적용되고 실천되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혁하는 운영하는 '하나님의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성서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그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직하게 믿고 그 말씀을 그대로 살려는 의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브리서 11:1)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이 곧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과연 우리에게 있습니까?

6. 그 이상 올라가서도, 그 이하 떨어져서도 안 되는 선

우리는 먼저 성서의 희년 사상을 지금의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를 막는 원칙이나 협약으로 세상 앞에 제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E. Daly)는 구약성서의 희년을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데일리에 의하면, 희년 사상은 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사회적으로 관용될 수 있는 일정한 한계 안에 불평등을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희년에서 오늘의 세계를 '무제한적 불평등'에서 '제한적 불평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데일리에 의하면 희년 사상은 사회적 불평등과 지나친 양극화를 막는 대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의 희년법이 우리 시대에 문자적으로 소생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년법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 불평등'이라는 원리가 오늘날 부와 소득에 있어서 일정한 최고 한계와 최저 한계를 정하는 정책으로 제도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간략히 말해, 최고 소득과 최저 소득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정함으로써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부유한' 양극화를 막자는 것입니다. 경제학자가 성서에서 이런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참 반갑습니다. 데일리는 이와 같은 정신이 신약성서 고린도후서 8:13-15에서 바울에 의해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광야에서 있었던 만나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평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평등, equality)을 이루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형(평등, equality)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사실 부와 빈곤은 하나로 연결된 문제입니다. 둘은 한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부자의 강함과 가난한 자의 약함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빈곤의 문제와 싸우기 위해서는 (그리고 생태적 파괴와 맞서기 위해서도) 지나친 부의 문제를 같이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빈곤의 문제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부라고 하는 측면을 놓칠 것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오직 부자의 소비와 소득의 상한선을 정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인식한 세계교회는 이미 '탐욕선'(greed line)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세상에 그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빈곤선'(poverty line)이 있는 것처럼, 그 이상 올라가서도 안 되는 부의 한계, 즉 '탐욕선'(greed line)이 있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부와 가난에 대한 이와 같이 관계적이고 통전적인 이해는 부의 분배와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될 것입니다. 성서의 희년은 그 이상 올라가서는 안 되는 '탐욕선'과 그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되는 '빈곤선'을 정함으로써 지금의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막는 사회적 대원칙이나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3부에서 계속)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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