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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아포리아에 빠진 한국교회

정체성의 위기와 무종교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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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2023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 한국교회탐구센터 등이 리서치 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상대로 교회의 미래이자 교회의 약한고리로 손꼽히는 3040세대의 신앙 생활과 의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최근 1년새 개신교 신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종교를 버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지표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위기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안으로는 맹목적인 믿음을 부추겨 혹세무민하는 컬트 세력의 준동을 경계하고 밖으로는 안티기독교 세력에 대응하는데 집중해 왔다. 이들 경계할 세력이나 대응할 세력은 적어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공통분모로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표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은 교회가 머지않아 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이른 바 무종교인들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엄숙한 현실이다.

"신은 죽었다!"며 교조화된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부조리한 제도 종교의 현실을 가리켜 환상, 우상, 아편, 신경강박증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한 종교 비판가들의 반신론적 비판은 엇나간 종교 실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참된 종교를 논하는 길목에서 비판적 수용이 가능한 주장이었다. 이들 종교 비판가들은 말하자면 대화의 파트너였던 셈이다. 하지만 무종교인들은 다르다. 종교 자체에 애당초 관심이 없기에 더 이상 종교 담론의 형식으로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어렵다.

세태가 이러한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자체의 문제로 아포리아에 빠진 상태다. 자유주의 진영의 교회는 인권운동가들의 언어에 지배되어 NGO 이중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고 보수주의 진영의 교회는 개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쇼핑상가처럼 개인의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는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개인구원, 사회구원이라는 토끼를 쫓아 각각 치달은 결과 쇼핑상가로 탈바꿈된 교회, NGO 이중대 교회로 전락해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처럼 아포리아에 빠진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거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신학계의 시도도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대개 연구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관행처럼 자기 연구 분야의 주요 인물에 대한 주석을 늘려 나가는 추가적 연구 활동에만 몰두할 뿐 통전적 시각에서 한국교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정체성의 위기, 외적으로는 무종교 시대의 도래 등으로 아포리아에 빠진 한국교회에 출구는 없는 것일까?

한국교회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지도력 부재도 문제다. 교회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알박기를 통해 '떼법'을 쓰고 교단 헌법을 뭉개고 '세습'을 감행한 목회자들은 저마다 욕망의 상향성의 삶만을 추구했지 소명의 하향성의 삶은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목회자 스스로도 추구하지 않는 소명의 실천을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중형교회 담임목사가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방 교회를 개척하고 2만여 명을 크게 웃도는 한 대형교회가 29개 교회로 스스로 분립 개척한 사건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세속적 욕망을 충족하는 길을 택하는 대신 소명을 실천함으로써 욕망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어두운 한국 개신교의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이러한 상징적 사건은 아포리아를 극복하는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포리아 극복의 많은 경우는 지도자의 솔선수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교회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 말씀을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는 등 믿음과 삶의 일치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것만이 아포리아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가 될 때 비로소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종교인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부디 칭찬받는 교회가 더 늘어나길 소망해 본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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