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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열(熱)은 있으나 빛(光)이 없다

지난 주간 모(某) 목회자모임에서 주최한 목회자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첫시간 강사로 나선 분은 보수교단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수 생활을 접고 지방의 제법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성공한’ 목회자를 자부하는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네온사인처럼 반짝거리는 성령체험을 했다고 주장한 그 분은 기장(基長)과 같은 진보적인 교단의 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는 예수와 복음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와 복음을 내버리고 엉뚱한 데 정신을 팔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지 못한다는 논지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라도 성령을 힘입어 예수와 복음을 말하면 교회는 성장할 수 있노라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진보적인 교단의 목회자들이 예수와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서슴없이 주장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교단의 목회자들이 예수와 복음을 말하지 않아서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한다는 호통 앞에서 저는 교회를 성장시킨 목회자들이 말하는 예수와 복음, 성령의 역사는 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예수의 이름을 많이 들먹인다고 예수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얼마나 자주 예수를 말하느냐 보다는 얼마나 그 마음의 중심이 예수의 마음에 가까이 닿아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정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는 영’(고전2:10)이라면 통상충만(通常充滿)이니 비상충만(非常充滿)이니 하며 성령충만을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일이 중요하기 보다는 무슨 역사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에 부합하느냐 여부가 중요합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를 계기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불길은 들판의 불처럼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번져갔습니다. 그 결과 1905년 대비 1907년의 교회 수는 321개에서 642개로, 전도소(傳道所)는 470개에서 1,045개로, 세례교인 수는 9,761명에서 18,964명으로, 학습교인 수는 30,136명에서 99,300명으로 2~3배 증가하였습니다. 단 2년 동안에 267.84%의 경이적인 부흥을 기록하였습니다.(출처: 한국기독교의 역사 1, 한국기독교사연구회) 이러한 폭발적인 부흥에 힘을 얻어 한국교회는 1909~1910년에 ‘백만 명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이른바 ‘백만명구령운동’을 펼쳤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때를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시기로 추앙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놀랍게 부흥한 한국교회가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곧 신사참배와 부일협력(附日協力)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며 포복절통(匍匐切痛)하던 성령충만한 신자들이 일왕(日王)이 있는 동쪽을 향해 동방요배(東方遙拜)하고 신사(神社)에 머리를 조아려 참배했습니다. 예배당 안에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걸어놓고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제창했습니다. 이 모두가 성령의 역사로 폭발적으로 부흥한 한국교회의 성령충만한 신자들이 행한 일입니다. 이 모두를 단지 일제의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2006년 기독교대한복음교회와 2007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교단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신사참배에 대해 회개하고 죄책고백문을 발표한 것을 제외하면 여태껏 주요교단들조차 교단차원의 신사참배에 대한 공식적인 회개와 죄책고백이 부재합니다.

마치 성장 자체가 지고(至高)의 선(善)인 양 오로지 성령충만, 예수복음 말하면 교회가 성장한다고 호통을 치는 자칭 복음주의자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힘입어 성장한 교회가 과연 ‘무얼 했느냐’고. 기껏 교회가 성장해서 신자를 불려놓았더니 하나같이 일경(日警)의 니뽄도(日本劒) 앞에 겁을 집어 먹고 신사 앞에 우르르 몰려가서 머리를 조아린 것이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입니다. 과연 그 모습이 하나님의 속 깊은 것까지 통달하고 계신 성령의 영이 충만한 신자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까? 오늘도 입만 열면 예수, 성령, 부흥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사는 자칭 복음주의자들의 성장한 교회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공금횡령, 사기, 폭행, 성추행, 교회세습, 금권선거, 차마 일일이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추태들이 자칭 성령충만한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진보적이라서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한 무능한 기장교단의 목회자를 앞에 놓고 호통을 친 그 강사 목사님은 장로교단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교단의 목회자입니다. 일전에 여성의 목사 안수를 반대하며 총회장이 나서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갈 수는 없다”고 여성모욕적인 발언을 해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교단입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거부하는 그들의 신앙과 고백은 과연 예수의 마음에 가까이 닿아 있는 것일까요? 그 마음이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 통달한 성령으로 충만한 마음일까요? 예수를 설교하라,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어째 예수의 마음과 정신으로부터 그렇게 동떨어져 있을까요?
 
오늘 한국교회는 ‘꿩 잡은 매’들이 망쳐놓고 있습니다. 예수 대신 ‘꿩’에 마음을 빼앗긴 ‘매’들이 도리어 꿩 잡는 비법이라며 예수를 말하라, 성령을 받으라며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몰역사적(沒歷史的)이고 반지성적(反知性的)인 자신들의 신앙을 부끄러워할 줄 모릅니다. 예수를 부지런히 말하나 예수의 마음과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무당 초혼(招魂)하듯 성령충만을 부르짖으나 정작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짓들을 성령의 이름을 빙자하여 버젓이 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신앙의 현주소를 가리켜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은 있으나 빛이 없다> 종교적인 뜨거운 열정은 있으나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열(熱)을 내라고 하지 않고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교회는 꿩 잡는 일에 열(熱)과 정(情)을 다 쏟을 게 아니라 빛을 발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수의 교회입니다.

 

글: 김성 목사(강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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