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6년 간의 대화 채록…종교간 대화 분야 기록적인 책

▲신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 ⓒ운주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 ㅣ 종교간 대화 모임 지음 ㅣ 운주사 ㅣ 570쪽 ㅣ 2만 3천원

종교간 대화 분야의 기록적인 책이 발간됐다. 가톨릭 씨튼연구원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총 6년에 걸쳐서 진행된 종교간 대화 채록을 신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에 담았다.

대화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원불교, 유교 등 5개 종교에 깊숙이 몸 담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개신교 신자이자 저명한 종교학자인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 중앙승가대 총장을 역임한 종범 스님, 원불교 교무 양은용 교수(원광대), 유교계 대표 인사 최근덕 성균관장 등이다. 대화를 개설하고 지속하는 일은 가톨릭 수녀인 김승혜 교수(서강대 명예)가 맡았다.

이들은 모두 각 종교의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들이지만 종교 대화 이론에는 문외한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 2년을 종교학 책을 읽고 토론하는 데 보냈다. 교재가 된 책은 마크 하임의 「구원들」과 윌프래드 캔티웰 스미스의 「지구촌의 신앙」이었다.

길희성 교수가 「구원들」을 논평하면서 ‘종교다원성’을 바라보는 세 가지 종교신학적 입장-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를 소개하자,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은 “솔직히 말씀 드려 저는 지금까지 다른 종교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 없이 나의 종교인 불교만을 통해서도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며 “그런데 지금 종교다원주의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우리 불교 안에서 굳이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어도 이미 그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지적으로 자극 받는 모습이었다. 해주 스님은 “우리 불교에서는 왜 종교신학에서와 같은 심각한 고민까지 나아가지 않고 자족하고 있었을까”자문하고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따져보았다. 종교계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도 타종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대화는 다양해져 갔다. 1967년부터 10년간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과 불교선사들이 토론한 내용을 텍스트 삼아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대화’를 해나갔고, 중국계 종교학자 줄리아 칭의 「유교와 기독교」 등을 읽고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를 시도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 문화 속에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와 유교의 대화를 위해 최치원과 최승로의 유·불사상, 정도전의 「불씨잡변」, 득통 기화의 「현정론」을 읽고 토론했다.

김승혜 수녀가 종범 스님에게 “불교에서 종교적 인격과 같은 개념을 논의하는 게 문제가 없냐”고 묻자 종범 스님은 “큰 문제가 없다. 불교에서 해탈은 초인격적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동시에 자비를 근본으로 하여 세상의 인격들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 윤리를 부정한다든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대답한다. 김승혜 수녀가 또 다시 “그렇다면 무아(無我) 개념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묻자 종범 스님은 “무아의 근본의미는 무자성(無自性)인데, 무자성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 많은 현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고 답한다.

길희성 교수는 불교 스님들을 향해 “불교의 무아 개념은 자아를 지나치게 초월화함으로써 현실문제에 대해서도 무관심적이고 도피적이 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고 문제 제기 한다. 이에 대해 종범 스님은 “불교의 평등논리와 인과논리만 가지고서도 현실문제의 불의에 항거할 근거는 충분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의나 문제상황을 ‘망념’의 소산이라고 하는 논리도 있다”고 답한다.

때로는 선문답 같은 대화로, 때로는 질타 어린 지적에서 시작된 활발한 토론으로, 이들은 서로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서서히 넓혀갔다 .

이번 책은 ‘소그룹 대화 모임’이라는 종교간 대화의 한 형태를 국내에 소개하고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혜 수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 사이에는 인간적 이해와 신뢰가 쌓여서 서로를 만나는 것이 편하고 기뻤다”며 “이웃종교를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영감과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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