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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칼럼] 새해 연초의 단상: 역사와 희망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우리는 2010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처럼, 지난 한 해에 있었던 모든 사건을 강물에 띄워 보낸 듯이 다시 돌이키거나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간과 함께 생겼다가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린 것을 우리는 과거사라고 말한다.

지난 한 해 동안 기뻐 감격스러웠던 일들도 과거사로 처리되었고, 돌발적이든 우연적이든 의도적이든 그 많은 비통한 사건의 원인을 다 캐지도 못한 채 보내버렸고, 불행한 일들이 올바른 심판을 받지 못했거나 정의로운 법정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흘러간 것이 많다. 그런데 사건들을 단순한 사건(event) 또는 어떤 상황(condition)으로만 생각할 수 없고 배후에 어떤 행위자의 동기와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밝혀질 때 그 사건은 역사적 사실(fact)이 된다. 이 진실 규명도 못한 채 시간의 강물에 유실되어 영원한 과거가 되어버려서 체념이나 단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한(恨)을 품게 된다.

사건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마치 풀포기 하나를 뽑았을 때 땅 속에 보이지 않던 뿌리가 많고 오래된 뿌리도 있고 수없이 많이 생긴 새 뿌리도 있고 그 뿌리들에서 다른 풀포기가 돋아난 것도 있듯이, 인간 사회의 역사적 사건들도 연결과 연속의 뿌리로 복잡할 수 있다.

아무튼 계속 흘러왔다가 흘러가는 시간이 마치 물레방아를 돌리듯 인간 세계를 돌려 사건을 계속 만들면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게 하여 인간은 이 회귀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길이 없고 또 멈추는 때도 모르고 살고 있다. 강물이 계속 흘러가도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옛날에 있었던 일이 다시 오며 어제 떴던 해가 그 자리에 또 뜨듯이 영원한 과거사로 체념했던 사건들과 비슷한 사건들이 다시 생기는 회귀의 쇠사슬을 끊을 힘이 인간에게는 없어, 역사의 의미와 함께 사는 사람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허무 또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회의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역사의 어떤 발전을 찾으려고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여 진보나 향상된 상황(조건)을 발견하려 한다. 실로 인간의 역사는 원시상태에서 많이 향상하고 발전하였다. 인간의 사고와 이성, 지성, 의지의 종합적인 노력으로 옛 상황에서 벗어나 향상과 진화된 상태가 많다. 그리하여 사람의 의식주 생활을 편하게 하는 문명의 많은 이기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이 옛날보다 더 고상하거나 도덕이 더 선량하게 되었다고 단언하기 어렵고, 지상의 모든 지역에서 전쟁이 끊일 날 없었고 문명의 이기들은 살생과 파괴의 흉기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발달과 발전은 있어도 진보는 찾기 어렵게 되었을 때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아주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어떠한 혁명과 전체주의도 성공할 수 없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살고 있는 우리는 인류 역사의 오메가포인트 즉 인류 역사의 성취를 진보와 진화를 통한 인간 정신의 완전한 자유의 성취로 생각할 것이나, 또한 혁명의 수단으로 물질의 공유에 의한 평등의 성취로 생각한 운동들이 다 한갓 관념에 불과한 것이 된 것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가 핵무기의 공포에 휩쓸려서 세계가 역사의 희망을 찾기 어렵다.

시간이 오고 또 오는 무한한 것 같지만 시간은 어떤 사물의 운동의 길이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운동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서 시작과 끝 사이의 시간은 제한이 있다. 즉 시간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모든 운동과 사물은 유한하며 우리는 그 유한한 것들만을 상대로 하여 보고 생각한다. 개인의 일생도 그의 출생과 같이 시작됐다가 그의 삶의 운동의 끝과 함께 끝난다. 그런데 영감과 사고의 힘을 가진 인간은 시간 밖에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이 세계를 보고 말하는 어떤 소리(말)를 들으려 한다. 우리는 이 소리를 성경을 통하여 듣게 된다. 그 소리, 그 말은 천지를 창조하셔서 시간과 지구와 만물 밖에 계시면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영원하신 분이어서 미래, 현재, 과거 사이의 시간 구분이 없이 늘 현재하시는 분이므로 인간 세상의 지나가는 사건이 세상의 종말의 날까지 그에게는 지나가지 않고 현재로 남아있고 그리고 모든 사건의 진실(fact)을 아시고 어떤 사건들은 인간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어떤 새 일을 위한 때 또는 적시(適時, 카이로스)가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사람들이 말하는 숙명이나 운명이 없고, 어떤 원인은 반드시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과율이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역사의 법(인과율, 순환론)도 그에게는 없고, 시간과 역사와 지구의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면서 만사를 경륜하신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成肉)하여 이 세상에서 분명하게 들리게 되도록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신 이후로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셔서 절망과 회의와 허무 대신에 현세와 내세의 희망을 들려주셨다. 그는 이제 인간의 역사 안에서 또 역사와 함께 일하시면서 역사와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와 지금도 함께 하시면서 역사의 오메가포인트 곧 역사의 성취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정의는 엄격하게 역동적으로 역사하고, 그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역사하여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와 선악의 기준이 전도(顚倒)되고 희비(喜悲)의 안색(顔色)이 뒤바뀐다.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세상을 밝히던 태양과 같은 존재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겠고 어둠을 틈타서 빛을 내던 달과 같은 존재들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고, 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많은 악의 군졸들이 땅에 떨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마가복음 13장 14절).  하나님의 이 최후심판은 시간과 날로 추정하거나 예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때에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시간이 아니고 때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때는 요행 아니면 불행의 때인데 요행도 그 장래가 불확실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살아서 역사하도록 만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역사의 희망이 되는 그 말씀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자들로서 역사에 참여할 사람들이다.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의 일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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