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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스탈린의 충고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스탈린이 어느 날 신부의 성복을 벗고 자기를 만나러 온 러시아정교회의 한 고위 신부를 보고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시오’라고 충고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무신론자이며 종교무용을 말하는 공산주의의 무서운 독재자였지만 그래도 인간의 도의를 가르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부의 직업을 정치와 구별되는 한 영역의 직업으로서 혹은 ‘성직’이라고 인정한 듯하다. 그리하여 신부직에 대하여 일종의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듯한데, 독재정치가로 모두가 인정하는 자기를 두려워하여 신부복을 벗어버리고 찾아온 신부를 보고 멸시하는 마음으로 직언하고 충고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신부가 무슨 목적으로 스탈린을 만나러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신부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키고 세욕과 권력지향적인 독재정치인 앞에 굴종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신부나 목사나 더 나아가서는 불승에 이르기까지 종교 전문 직업을 가졌다 하여 성직자 또는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경거망동을 충고하는 것이 된다. 종교는 일종의 거룩한 영역이라는 일반적인 성속의 구별 또는 거리 개념은 성직자들이 보통 사람들과 아주 다른 성인이라는 말이 아니고 종교에 종사하는 전문인이라는 말인데, 그 직업에 충실하여 자기들이 섬기는 종교를 타락시키지 말 것을 사람들은 바라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올바른 길은 사회정의와 자유와 평등 등의 현대 민주주의 이상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종교적 이념을 신도들에게 권위 있게 바로 가르쳐서 그들이 정의와 올바른 자유의 사도로서 혼잡한 정계나 사회 속에서 그 사명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평신도 교육과 훈련을 바로 하지 못하고 신부나 목사나 승려들이 정치의 여, 야를 막론하고 거리에 직접 나와서 일반 민중들을 선동하면서 정치참여니 사회참여니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스탈린이 러시아정교회의 그 신부에게 준 어떤 충고가 있었다면 러시아 제정시대의 ‘정교일치’ 정치가 그 나라와 종교를 다 타락시켰던 그 과거를 회상해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스탈린도 자신의 정치생명과 함께 공산주의 이념이나 체제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늘 염려하였을 것이지만 종교는 자기가 미워하고 싫어해도 공산주의 이념이나 체제보다 더 오래 아니 인류의 역사가 존속하는 날까지 살아남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그 신부에게 준 충고는 종교인은 종교인답게 행동할 것이지 정치운동 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스탈린을 비롯하여 서양의 과거의 기독교가 국가와 사회에 남겨놓은 영향과 감화의 흔적을 말살하려는 세속주의 정치인들이 서양을 비기독교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기독교계 안에서 진보주의 신학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의 세속화 운동을 내세우고 인간의 자유와 인권과 평등 등의 세속적 민주주의 개념을 가진 세속주의 정치가들 및 사회운동가들과 합류하였다. 일례로, 서구 국가들에서는 임신중절(낙태)이 자유롭게 되었고, 동성혼인도 허용되었고, 동성혼인 한 사람이 영국성공회에서는 신부가 될 수도 있게 되었다. 또 성윤리 문제도 과거의 규제가 풀려서 간통이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불교와 유교와 같이 사회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종교들의 전통적인 윤리적 감화가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에서 말살되기 시작하였고, 이 지역 기독교의 사회적 감화는 아직 그 뿌리가 깊지 않다. 이러한 종교들이 오늘날의 반종교적인 세속주의 문명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정교분리는 오늘의 세속주의자들이 말하는 정교분리와는 달랐다. 현대의 정치적 및 사회적 인권사상과 자유 및 평등사상이 성윤리와 가정윤리의 파탄을 야기했다. 이러한 사회사상은 인간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원시적 자연을 이상화하는 사상이다. 인간의 원시 상태를 악으로 보는 성악설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즉 인간을 낙관할 수 없고 비관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종교는 인간성의 자연적 또는 본능적 이원론이 아니고 현실적인 도덕적 이원론을 토대로 선을 권장하고 악을 억제하는 일을 한다. 그리하여 종교는 세속주의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 및 평등 및 인권사상이 만드는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정교분리 시대에 종교의 정치참여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종교의 정치참여를 보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 기독교 목사들이 그 두 정권에 협력하여 여러가지 요직에 앉아 출세도 했지만 그들이 속한 종교의 감화를 얼마나 주었는지 의문이며, 또 이 정권에 들어와서는 그 두 정권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이 정권 비판과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진정한 의미의 정치참여운동이 아니고, 정치운동이다.

이제 한국에서 진정한 정치참여운동이 일어나서 세속주의 정치가들의 입법과 행정과 사법을 종교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비판하오 옳고 그른 것을 담대하게 발언하며 잘못된 것을 시정 또는 폐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날 여자의 호주권이 한국 국회에서 논의되었을 때 유교 측에서 반대가 있었다. 이 법은 한국의 재래유교적 가정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유교 측에서는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심각하게 다룰 문제는 인간 존재의 자연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간 본성을 파손하고 그것이 나아가서는 인간공동체(가정이나 국가)를 파탄으로 이끌어가는 입법과 행정인 경우일 것이다. 인간의 자연적 욕구가 인권이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사회적 이념과 잘못 어울리면 인간 본연의 자연에 역행하여 창조적 섭리에 역행하여 가정과 국가까지 파탄으로 이끌 수 있다. 일례로, 인구의 증가와 감소를 산아 제한이나 산아 장려와 같은 정책으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조정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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