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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사회적 외상(Social Trauma)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 : '용산 참사' 사건을 중심으로(1)

행사명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134차 월례포럼
일시 : 2010년 8월 30일
발표 : 이철(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종교사회학)
*저자의 동의 하에 전문을 게재합니다. (각주 제외)

 

 

 

1.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두 가지 목적, 곧 이론적 목적과 실천적 목적을 가진다. 이론적 차원에서는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이 사회적 외상으로 구성되기 위해 필요한 문화적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실천적 차원에서는 이 이론적 작업을 2009년 1월 20일 용산구 남일동 건물에서 발생한 ‘용산 참사’를 통해 실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외상이란 문화사회학자 제프리 알렉산더(Jeffrey Alexander)의 ‘문화적 외상’ 정의로부터 응용해온 개념이다. 알렉산더는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집단의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서 그들의 기억에 영원히 자국을 남기고 돌이킬 수 없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신들 미래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끔찍한 사건을 당했다고 여겨질 때 문화적 외상은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용산참사 철거민이나 그 가족들 혹은 관련자들에게 용산 참사는 문화적 외상 또는-본 논문에서 사용하고자 하는-사회적 외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용산참사로 인해 이들의 의식이나 정체성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변화하였음을 보여주는 여러 기록들에서 잘 나타난다.

문제는 이 외상이 다른 집단에게까지 외상적 사건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히 중요한데, 이유는 “특정집단에게 극히 외상적인 역사 사건이 이후 다른 집단에게 외상적인 사건으로 재정의 될 때 그 사건은 도덕적 악에 대한 일반화된 상징이 되면서 보편적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이 사건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느끼는 다른 집단 사람들도 이 일에 대해 기억, 반응,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도덕적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집단 구성원들이 그러한 기억, 반응, 느낌을 가지게 되면 그 사건은 더 이상 특정집단의 외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건으로도 인식되며 이로 인해 그들은 사건 피해자들과 정서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교류하고 연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사건은 특정 집단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수 있으며, 사건의 도덕적 악에 대한 대결 및 문제 해결이 사회적 차원에서 시도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용산 참사는 과연 다른 집단들에게 외상적인 사건으로 재정의 되었는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용산 참사의 전반적인 사태 진전을 살펴볼 때 그 사건은 그들만의 외상으로 남았다. 용산 참사는 도덕적 악-예를 들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에 대한 일반화된 상징이 되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사회적 외상 사건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용산참사에는 피해 집단과 사회 일반 집단들 사이에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교류나 연대가 부재하였다. 무엇이 원인이었는가? 본 논문은 그 원인을 문화사회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특별히 제프리 알렉산더와 필립 스미스의 문화사회학(Cultural Sociology)의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이들에게 문화란 “물질적, 테크놀로지적, 사회구조적인 것에 대립되는...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그것은 “관념적인 것, 정신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의 영역”에 속하며 “신념, 가치, 상징, 기호 그리고 담론의 유형화된 영역”과 관련된 것으로, 그 역할은 “개인, 집단 혹은 제도적 행위를 안내”하는 것이다. 이 두 사회학자들은 문화를 정치나 경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인 실체로 보았고, 문화가 정치, 경제 못지않게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하에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이 논문 역시 그러한 시도 중에 하나이다.

논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다음 장에서는 이 주제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이론적 고찰을 시도한다. 언급한 두 문화사회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서술된다. 3장에서는 2장에서 논의된 이론을 토대로 용산 참사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상징, 심리적 동일시, 이항대립의 분류체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4장에서는 사회 여타 집단들로부터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연대를 얻지 못한 철거민 집단들이 갖게 되는 자신들의 개인적, 사회적 삶의 이해를 서사분석-특히 비극서사-을 통해 분석한다. 5장에서는 이러한 문화사회학적 분석이 기독교 신앙 혹은 신학에 주는 함의와 제의가 무엇인지 밝혀본다. 6장은 결론이다.

 

2. 이론적 배경: 상징, 심리적 동일시, 코드 그리고 서사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에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그 충격의 정도만큼 사회적 외상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알렉산더는 이를 ‘자연주의적’ 사고 유형으로부터 오는 오류로 인식한다. 그에 따르면 이 오류 뒤에는 두 가지 사고 유형이 작동하고 있다. 먼저, 계몽론적 유형으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잔학행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며, 정당화를 허용했던 신념체계를 공격함으로써 잔학 행위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정신분석학적 유형으로 “공포에 직면했을 때 당사자와 관객은 비판과 단호한 행위로 대응하지 않고 침묵과 당황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발생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인식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오류들을 극복하면서 자연주의적 사고 유형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도덕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충격적이고 잔학한 사건에 대해 반드시 비판과 단호한 행위로 대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하다. 또 사람들은 잔학 행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알렉산더는 이에 대해 “어떠한 외상도 자체 해석을 하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사건의 내용이나 본질이 그 사건의 외상 가능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명이 사망해도 외상이 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 반면 단 한명이 사망했는데도 사회적 외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외상 여부는 존재론적 보다는 인식론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항이다. 곧 그 사건이 어떻게 알려지고 구성되는가―문화사회학자들의 표현을 사용하면 표상 혹은 재현(representation)―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이 재현 과정을 통해 도덕적 악의 상징으로 표상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사건에 대한 이해와 사건의 외상으로의 발전은 모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구성, 곧 문화적, 사회적 작업의 산물로 인식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건은 문화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적 해석을 위해 우리는 다음 네 가지 이론 주제를 알렉산더와 스미스로부터 끌어올 수 있다. 상징의 구성 및 확대, 심리적 동일시, 이항대립 분류체계 그리고 서사이다. 먼저, 사건은 상징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재현하고 전달한다. 이 때 상징은 단 하나의 의미로 구성될 수 있고 또는 여러 의미로도 구성될 수도 있다. 기호학적으로 서술한다면 기표(記標, 시니피앙)는 하나이나 기의(記意, 시니피에)는 다의적일 수 있다. 여러 의미로 기의가 확대된다면 기의가 단 하나일 때 보다는 수신자의 범위가 확대된다. 여기서 확대는 양적 차원과 질적 차원이 있다. 양적 차원은 기의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고, 질적 차원은 기의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양적, 질적으로 확대될 때 상징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상징의 형성과 확대에는 상징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중요하다.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계급이론과 유사하게 상징에 대한 생산수단을 소유한 집단이 상징의 형성과 확대를 통제한다. 이들은 상징의 ‘지배계급’이 되는 반면, 상징 생산수단을 갖지 못하는 계층은 상징의 ‘피지배 계급’ 혹은 상징 소비자로 남는다. 일반적으로 볼 때 오늘날 상징 생산수단은 문화 권력이 점유하고 있고 따라서 상징의 향방은 이들의 손에 좌우된다. 대표적인 문화 권력은 정부, 대중매체, 제계 그리고 학계이다. 이상의 내용에 근거해 ‘용산 참사’의 상징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상징의 확대는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누가 상징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묻고 대답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사건에 직접 관련된 체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사건이 외상이 되기 위해서는 심리적 동일시의 과정이 필요하다. 심리적 동일시란 해당 사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사건 피해자와 감정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감정적 연대가 형성되면 그 사건은 사건 당사자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사건이 되며, 이 때 두 집단 간에는 도덕적 교류와 연대도 가능해 진다. 다시 말해, 동일한 도덕적 내용을 공유,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동일시는 다음 두 요소에 의해 촉진 혹은 억제 될 수 있는데 곧 피해자의 ‘개인화’ 여부 및 양 집단 간의 이질성 여부이다. 사건의 피해자가 추상적이고 익명적으로 다루어졌을 경우 사람들의 심리적 동일시는 발생하기 어렵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상이나 사연이 대중매체 등을 통해 ‘개인화’ ‘인격화’ 하면 동일시는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발생한다. 한편, 피해 집단과 여타 사회 집단 간에 이질성이 심하다면 심리적 동일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이질성이 동일시의 발생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요소들이 용산 참사에서는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살펴보자.

셋째로, 알렉산더와 스미스는 구조주의 문화인류학 이론에 근거하여 사건을 성(聖)과 속(俗)의 이항 대립의 상징 분류체계를 적용하여 해석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항 대립의 이원성은 “모든 인류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이는 원시 사회나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하며 특히 한 공동체 내에 외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항대립은 그 대립적 특성으로 인해 사건의 특성과 의미를 대립적으로 드러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분명히 가질 수 있게 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때 사람들은 성과 속의 대립 분류체계에 대해 인식론적으로만 접근-예를 들어, 옳다 아니다, 혹은 선하다 악하다-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접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을 위협하거나 오염시키는 속이 발생하였을 시 이 사실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 속에 대해 강한 반대 감정을 소지하게 된다. 그리고 성 주위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확립하려 하며, 속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나 공격 방책을 세운다. 이는 외상 사건의 문제 해결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러한 상징 분류체계가 용산 참사에서도 구성되고 작용하였는지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서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오늘의 시대를 ‘서사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하나의 거대 서사가 존재하던 모던사회와 달리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다양한 서사가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도 모던의 연속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에도 아직 거대 서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서사가 중요한 것은 사건이 서사에서 위치와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각개의 사건들은 일회성, 불연속성, 비동일성, 혼돈의 상태에 존재한다. 그러나 서사는 이것들에게 지속성과 의미와 동일성을 부여하면서 그 사건들을 사람들의 인식과 판단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서사 안에서 사람들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사건을 의미 있는 실재로 인식하게 되고, 이 인식에 근거해 사건에 대한 태도를 정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들이 어떤 서사를 취하느냐-서사의 개인화-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실재적 의미가 달라진다. 스미스와 알렉산더는 사건을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하여 텍스트 분석을 시도한다. 그들은 문학비평가 노스롭 프라이(Northrop Frye)의 서사 연구로 부터 네 가지 서사를 활용하여 이를 수행하는데, 곧 로망스, 희극, 비극, 아이러니 서사이다. 이 가운데 로망스와 비극 서사가 중요하다. 알렉산더는 로망스 서사를 진보 서사라고도 하였는데, 이 서사의 특징이 진보, 안정, 성장, 통합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비극 서사는 소외, 축출, 비극, 종말 등과 관련된다. 용산 참사는 어떤 서사를 구성하였는지, 사건 관련자들은 어떤 서사를 자기 서사화 하여 사건의 의미와 성격을 인식하였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용산 참사 분석

 

용산 참사는 사회적 외상으로 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다. 5명이 일시에 화재에 의해 참혹하게 사망하였을 뿐 아니라 이 일이 경찰력에 의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산 참사는 사회적 외상이 되지 않았다. 이는-비록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지만-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이한열 사망 사건처럼 단 한 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사회적인 사건이 되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분명 차이가 있다. 또한-공권력에 의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용산 참사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다. 조두순 사건은 인명 사망이 없는 상해 사건이었지만 사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외상을 일으켰다. 결국 사회적 외상 발생 여부는 사건의 계량적 내용 혹은 사건 자체에 달려있지 않다. 그것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알려진다. 용산 참사는 이 문화적 재현에서의 문제점으로 인해 사회적 외상 사건이 되지 못하였다. 이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외상 구성의 실패 원인 분석

 

(1) 상징 구성과 확대

 

용산 참사의 상징은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거나 수용하기에는 구성의 방향이나 확대의 정도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건 초기 이 사건은 공권력의 무모한 과잉진압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 보다는 철거민들의 불법과 폭력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변하게 되었다. 순순히 분석적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사건은 정부와 공권력의 문제점들-인권 침해, 과잉 진압, 국가 폭력, 공권력에 의한 인명 사망 등-을 지적하면서 생명의 존귀함, 주거의 자유, 인권, 행복, 가족, 경제 정의 등과 같은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내용들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확대 될 수 있었다.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에 따르면, 이 후자의 내용들은 한 사회의 ‘성스러운 중심’에 속하는 것들로서, 만일 어떤 힘이 이 ‘성스러운 중심’을 오염시키거나 위협하게 되면 이 힘은 곧 도덕적 악으로 상징되면서 사람들은 이 악에 대한 강한 반대 감정과 함께 악에 대한 강력한 제재나 공격 방책을 세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 것이 2008년도 미국산 수입 쇠고기 사건 때였다. 이 사건의 초기 기호는 ‘무역불공정’ ‘정치적 협상’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정치적, 경제적 기호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호가 ‘생명’ ‘건강’ ‘가족’ ‘행복’ ‘주권’ ‘미래’ 등과 같은 보편적인 도덕적 내용으로 확장되면서 사람들의 숫자와 관심과 참여가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이 보편적인 ‘성스러운 중심’이 속에 의해 오염, 위협당하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이에 대한 반대 감정과 저항을 촛불집회에서 집합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만일 용산 참사의 기호가 이러한 방향으로 구성과 확대를 이루었다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일으켰을 것이고, 사건은 이제 특정 집단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결국 도덕적 악에 대한 대항과 문제 해결 시도가 사회적 차원에서 시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용산 참사의 기호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으로 구성되기 보다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것으로 구성되었으며 그것도 내용적으로는 부정적으로 구성되었다. 불법, 폭력, 테러, 게릴라, ‘전철연’, 보상금, 의도적 전입, 좌익, 집단주의, 이기주의, 사회 불만자 등이 용산 참사를 표상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러한 기호는 사람들의 호응과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가 없다. 성스러운 중심에 속한 보편적인 도덕적 기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쉽게 속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들로 간주 되는 것들이었다.

용산 참사의 기호가 이러한 방향으로 구성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전형화’로 인한 것이다. 전형화란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과 슈츠(Alfred Schutz)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그것이 특이하거나 놀랍거나 끔찍한 것과 상관없이-이전에 발생하고 알려진 사건이나 범주로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화를 통해 생소할 수 있는 새로운 사건이 ‘친숙’하고 인식 가능한 범위 안으로 불러들여 진다.

용산 참사는 사람들에게 ‘놀랍고 끔찍한’ 사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혹은 새롭게 인식하기보다는 전형화를 통해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이전의 철거와 관련된 사건이나 유사한 사건의 범주, 곧 불법, 폭력, 집단주위, 공권력, 보상금 등과 관련된 사건과 연결시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전 사건에서 형성된 상징이나 코딩이 현재 사건의 특이성이나 다름에 대한 적절한 비교, 고찰 없이 현재 사건에 전이되어 붙는다. 그 결과 용산 참사는 이전 철거 사건이나 공권력에 대항한 폭력 사건과 동일하거나 별 다름이 없는 사건으로 사람들의 인식 안에 자리 잡는다. 그리하여 용산 참사는 그 사건의 특이한 내용과 성격과 무관하게 이전의 유사 사건과 동일한 사건으로 재현되어 버린다.

용산 참사의 상징 형성의 두 번째 이유는 상징 생산 수단이나 분배, 통제 능력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있지 않고 정부나 언론과 같은 문화 권력의 손에 놓여있었다. 철거민이나 이들을 지지 집단들도 인터넷을 포함한 대중매체를 통해 상징을 어느 정도 생산, 전파 할 수 있었으나 문화 권력의 것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징의 의미나 성격은 피해자나 동료들의 생각이나 판단과는 상관없이 문화 권력자의 의도대로 형성되고 확대된다. 용산 참사의 기호가 불법, 폭력, 테러, ‘떼법’, 질서 파괴 등과 같은 기의로 채워진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위에서 언급하였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사건이나 숭례문 전소 사건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광우병 사건의 경우 상징의 형성, 전파, 분배의 주도권은 정부나 언론에 있지 않았다. 2008년 6월 10일 서울 시청을 중심으로 100만 여명이 모인 집회가 이루어지기 까지 상징 생산 수단은 네티즌과 시민들에게 있었다. 청소년에서 주부에게 이르기까지 주로 인터넷을 통하거나 또는 집회에 직간접적 참여를 통한 집합표현을 통해 이 사건의 상징은 형성, 확대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미국 쇠고기 수입사건 기호가 생명, 건강, 행복, 가정, 미래, 주권,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상징으로 재구성 및 확장된 것은 네티즌과 시민들이 상징 생산 및 전파 수단을 소지하고 있었던 결과이다. 2008년 2월에 전소된 숭례문 사건도 유사하다. 사건 이전 숭례문은 단지 국보1혹 혹은 때로는 교통지표를 의미하는 정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전소된 후 숭례문의 상징은 매우 확대되어 여러 의미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정부 행정당국이나 언론 보다는 네티즌과 시민들의 활동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숭례문의 기표가 ‘민족’ ‘자존심’ ‘얼’ ‘역사’ ‘대한민국’ ‘정체성’ ‘유산’ 등의 기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숭례문 사건의 경우 정부 당국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숭례문의 기호들이 반정부적인 성격과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숭례문 기호들은 사회통합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비록 정부 당국이 상징 생산 수단을 전유하지 못하였지만 반드시 그것을 되찾거나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쇠고집 촛불 집회의 경우는 반정부적 내용과 성격을 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상징을 통제할 수단과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 결과 정부 당국은 상징 생산 수단을 소유한 집단의 활동을 주변부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용산 참사는 이와는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상징 생산 수단은 정부와 언론과 제계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징을 구성하고 전파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건 피해자나 동조자 집단의 상징 구성 능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 역시 상징을 구성하고 전파하고자 하였지만 이들의 활동은 상징 ‘지배계급’에 의해 제약되고 통제되었다. 결국 상징 소비자들, 곧 일반 시민들이 구매할 상징은 정부, 언론, 기업주들이 구성한 부정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의 상징이었다.

 

(2) 심리적 동일시

 

용산 참사는 심리적 동일시가 발생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극히 제한된 숫자에게만 동일시가 형성되었고 나머지 다수 사람들에게는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피해자 집단과 다른 사회 집단 구성원 간에는 감정적 연대나 도덕적 연대가 형성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잠시 언급한 조두순 사건과 비교해보자. 조두순 사건은 피해자, 가족, 친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 전형적인 외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다른 집단들에게, 특히 여성, 부모 집단에게 강력한 심리적 동일시를 일으켰다. “‘딸 가진 부모로서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딸 가진 부모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어떻게 그런 짓을…”이라고 적은 사람도, 또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우리 모두의 딸 나영이”라고 말은 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동일시로 인해 피해자를 위한 모금활동도 사람들의 높은 관심 속에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사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제제와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거셌다. 이 모든 일이 심리적 동일시로 인해 해당 사건이 단지 피해 당사자나 가족의 사건, 즉 ’남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조두순 사건은 사회적 외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도덕적, 감정적 연대를 형성하면서 나타난 악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편 동일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안전장치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조두순 사건과 용산 참사를 계량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으나 단지 분석적 차원에서 비교해 본다면 후자는 전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고 그것도 불에 타서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용산 참사에는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심리적 동일시가 발생하지 않았다. 용산 참사가 사회적 외상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심리적 동일시는 다음 요인에 따라 촉진되기도 하고 저지되기도 한다. 곧 개인화와 이질성이다. 먼저, 개인화는 사건의 피해자가 대중 매체를 통해 인격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전기적 묘사로 개별화되어 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보도와 묘사를 통해 그들과 ‘개인적’ 혹은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이런 만남을 통해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서 사건의 고통을 부분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그들과 심정적 동일시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중 발생한 유대인 학살 사건 경우 우리와 직접적인 체험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건 피해자들과 심정적 동일시의 가능성이 극히 낮다. 그러나-예를 들어-『안네의 일기』는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잔학행위를 전혀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심리적 동일시와 도덕적 연대를 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피해자 안네와 그의 가족들이 책이나 영화 매체를 통해 인격화, 개인화된 결과이다.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 자신들과 같은 동일한 개인들이 겪는 불행과 두려움과 고난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고통을 보다 구체적이고 가까이 느끼게 된다. 이 사실은 다음의 비교에서 잘 들어나는데, 동일한 유대인 탄압행위가 역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익명적이고 추상적인 형식으로 보도될 때와 『안네의 일기』와 같이 개인화된 형식으로 보도될 때를 비교해 보면 된다. 전자에 경우 동일시가 발생되기 어렵다.

조두순 사건 역시 피해자와 그 가족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개인화 되면서 동일시가 더욱 강하게 발생하였다. 심지어 숭례문 전소사건에서도 이러한 동일시가 일어났다. 숭례문은 비인격적 물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숭례문이 의인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의인화된 숭례문을 향해 망자에게 행하던 추모를 행하게 되었다. 네티즌과 시민들은 숭례문에 대해 ‘친구’ ‘가족’ 또는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 같다고 하였고, 화재 현장에 찾아와 참회, 조문, 삼오제, 씻김굿등을 하였으며, ‘▶◀지못미’와 같은 상징 표상을 집단적으로 사용하면서 숭례문을 ‘지켜주지 못해 잃은 것’에 대해 강한 심정적 아픔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감정적 동일시를 통해 숭례문 전소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외상으로 발전하였으며, 방화범에게는 강한 분노를, 책임 당국에 대해서 거센 항의와 함께 분명한 책임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대과 연대감이 형성되었고, 이에 재발 방지에 대한 행정당국의 조치와 결단을 촉구하였다.

용산 참사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개인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용산 참사 피해자 어느 누구도 ‘개인화’나 ‘인격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것은 다섯 명의 사망자중 어느 한 사람의 이름도 일반 대중들에게 회자되거나 기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쉽게 예증된다. 물론 뉴스 매체들이 사망자 중 일부를 인격적으로 다루고 또한 부분적으로 나마 전기적 묘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이 동일시를 발생시킬 정도의 수준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보도는 대부분 사건 발생 초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난 후 보도되었다. 일부 신문에서는 초기에 사망자의 신상과 사연에 대해 언급되었으나 그 내용과 길이가 매우 제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철거민들에 대한 개인화 작업이 발생되지 않았고 따라서 동일시의 발생과 촉진에는 제약이 있었으며 그 결과 이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에 외상과 연대감과 도덕심을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동일시를 촉발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변수가 있는데 곧 이질성이다. 사건 피해자들이 사회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한 집단이거나 혹은 반드시 친밀하지 않다 하더라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 사람들이라면 동일시가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연예인과 같이 친숙하게 알려진 인물들이나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혹은 숭례문 같이 보편적인 대상들은 이질성이 약하므로 동일시 발생의 장애 요소가 적다. 그러나 피해자 집단이 그 사회 공동체에서 이질적인 집단으로 간주될 경우 동일시와 연대의 유발은 어렵다. 사람들이 피해자들과의 동일시를 주저하거나 스스로 금하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의 경우 이 이질성이 강하게 작용해 동일시 발생에 제약을 주었다. 이 이질성의 근원은-이미 위에서 상징 구성을 분석하였을 때 언급하였지만-철거민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으로부터 기인되며 이러한 인식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철거민과 지지 단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과 표현들은 인터넷을 포함한 대중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되었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부정적인 내용은 보상금과 폭력 문제이다. 철거민들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혹은 더 많이 받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것이고, 이들 대부분 이를 위해 그 지역으로 전입한-그것도 최근에 전입한-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이나 폭력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철거민들에게 부여된 이러한 부정적 인식들은 비도덕적, 비양심적, 비윤리적, 비인간적, 혹은 반사회적 영역으로 철거민들을 분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철거민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보편적인 사회도덕과 양심에 어긋나고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따라서 철거민들의 요구와 집단 행동은 사회 보편적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이로 인해 다음에 언급할 성과 속의 분류 체계에서 철거민들은 속의 영역으로 분류되게 되었다. 물론 이 속의 영역은 사람들이 철거민들에 대해 가지는 이질성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3) 이항 대립적 분류 체계

 

모든 사회에서 성과 속의 이항 대립적 분류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위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분류 체계는 외상 사건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사회에 발생하였을 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 이항 대립을 통해 사건의 의미와 특성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건 초기에는 사건의 의미와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 사건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모호할 수 있지만, 시간의 진행과 함께 사건에 대한 분류 체계가 이루어지면 사건은 의미와 성격을 분명히 나타내게 되고 사람들은 이에 근거하여 사건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분명히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사건의 분류 체계를 정당화시키고 강화시킨다. 예를 들어 미국산 수입 쇠고기 사건의 분류 체계를 살펴보자. 사건 초기 이 사건의 의미와 성격은 모호했다. 그 사건 안에는 정치적, 경제적 의미와 성격 그리고 도덕적 성격과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 혼재 상태에서 각 의미와 성격들이 갈등하고 있었고 어느 것도 절대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모호함의 시간이 사건 발생 초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누리꾼들과 십대 여학생 등이 관여를 시작하면서 사건의 정치적, 경제적 의미나 특성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도덕적 의미와 특성이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촛불집회가 확대되어 갈수록 아래와 같은 이항 대립적 분류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수입 철회

경제/무역

생명/건강/가족

독단

주권 재민

이명박 정부

촛불 집회

쇠고기 협상 대표자들

온 오프 집회 리더들(예: ‘안단테’)

‘조중동’/ ‘네이버’

‘아고라’/ ‘다음’

경찰

평화시위자들

 

이러한 분류 체계가 전파되고 사람들의 인식 안에 자리 잡게 되면, 사람들은 사건을 성과 속의 대립과 싸움으로 판단하게 되고, 이 대결 속에서 성이 속으로부터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성에 속한 것을 보호하려 하고, 속에 속한 것에 대항하게 된다.

용산 참사에도 이항 대립적 분류 체계가 존재하였다. 위의 촛불집회 때와 달리 이 사건에는 두 개의 분류 체계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하나는 철거민들의 분류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사회 집단들의 분류 체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자의 분류체계는 분명하였는데 후자의 것은 모호하였다는 것이다. 후자 중에 모호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한 부분도 전자의 것들과 비교하여 보면 그 내용이 상이하였다. 그리고 이 모호성과 상이점이 용산 참사가 외상 사건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제약으로 작용하였다. 먼저, 철거민들의 분류 체계는 아래와 같이 구분될 수 있다.

 

 

용산 참사 피해자 집단의 분류 체계

경찰/검찰

철거민

용역

‘전철연’

김석기

남경남/피해사망자

조합

‘범대위’

재개발

생존권, 주거권

진압

촛불집회

시공사/구청/정부/한나라당

재개발 관련 시민단체/참여 종교단체

 

철거 피해자들과 참여 단체들은 이러한 분류 체계로 용산 참사 사건의 특징의 의미를 인식하였고 이런 인식 하에 자신들의 주장을 행동으로 실행하였다.

한편, 용산 참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분류 체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특히 이항 대립성이 약하였다. 일단, 철거민의 분류 체계에서 성에 속했던 내용들이 여기서는 속으로 분류되었다. 이 속의 부분은 이 분류 체계에 있어 모호성이 약한 부분이다. 다시 말해 이 속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분명하였다. 문제는 성의 분류이다. 매우 보수적인 집단에서는 철거민 분류 체계의 성, 속의 내용이 서로 뒤바뀐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이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주장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분류 체계의 성 부분의 내용은 분명한 결정 없이 모호하고 혼돈적인 양상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표로 나타내자면 아래와 같다.

 

일반 사회 집단의 분류 체계

철거민

경찰?

‘전철연’

검찰?

남경남

김석기?

‘범대위’

조합?

촛불집회

진압?

참여시민단체/참여 종교단체

시공사?/구청?/정부?/한나라당?

 

재개발?/생존권?/주거권?

용역

 

 

이상에서 보았듯이, 철거민과 동료 집단들의 이항 대립 분류 체계는 분명하고 확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분류 체계가 사회 내에서 일반화되지는 못하였다. 일반 사회 집단들은 철거민들과 완전 반대의 분류 체계는 아니더라도 철거민들과 다른 분류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두 집단 간의 인지적, 정서적 연대나 교류는 발생하기 어렵다. 이들은 용산 참사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와 성격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반 집단의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성이 위협 받고 있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성과 속의 대결과 싸움으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사건에 대해 도덕적으로, 정서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자연히 성에 대한 보호나 악에 대한 대항에 관심하거나 동참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 요구나 대안 추구에 있었어도 동일한 태도를 취하였다.

철거민들의 분류체계가 사회 내에서 일반화 되지 못한 원인에는 위에서 언급한 상징 생산수단과도 연관이 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상징의 구성 및 분배의 힘은 문화 권력에게 있었다. 이 상징 통제의 힘은 분류 체계에도 작용하여 성과 속의 분류 및 유포가 권력의 힘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이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철거민 집단은 자신들의 분류체계를 사회에서 전파하거나 확립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지할 수 없었다. 쇠고기 촛불집회 시 네티즌과 참여 시민들이 상징 통제 능력을 소지하면서 이항 대립적 분류 체계를 구성, 전파하였던 상황과는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4. 비극서사로서의 철거민의 삶

 

사회적 외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두 서사가 출현한다. 하나는 계몽론적 사고에 입각한 로망스 서사 혹은 진보서사로, 이 서사는 비록 발생한 사건이 놀랍고 고통스럽고 끔찍스럽지만 결국 사건의 원인들이 밝혀져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이로 인해 더욱 새롭고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서사는 희망, 구원, 자신감, 미래 등과 같은 색체가 스며들어 있는 서사이다. 사람들이 이런 서사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히 진보, 성장, 발전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며, 외상으로 인한 현재의 고통, 상처, 슬픔 등은 미래의 소망과 믿음으로 치환되어 극복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외상은 발전이나 진보를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 정도로 인식되며, 외상으로 인해 초래되는 갈등, 혼란, 분열은 사회 통합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용산 참사에 이러한 서사가 존재하였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일단 진보 서사는 피해자 집단 보다는 그 외의 사회 집단들에서 발생하기 용이한데 이 집단들에서 이와 같은 진보서사는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일부 집단에서 이러한 서사가 발견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진보 서사라 할 만한 뚜렷한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진보서사가 발생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이 사건이 사회적 외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건이 사회적 외상으로까지 나아갔다면 사람들은 이 사건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사건을 어떻게든-예를 들어, 진보 혹은 비극으로-인식해야하고 반응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이 사건의 의미와 성격을 이해할 서사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용산 참사가 사회적 외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기에 일반 사람들에게는 서사가 요청되지 않았고 따라서 형성되지도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혹은 이런 상태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 것은 철거민 집단의 비극 서사이다. 이들은 사건 자체의 비극적 요소로 인해 그리고 일반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번 사건을 비극 서사의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다시 말해 비극 서사를 자기 서사화 하여 사건의 의미와 성격을 인식하였다. 통합, 진보, 발전과는 거리가 먼 비극서사는 “‘어떤 개인이 속하기를 바라는 집단에서의 [......] 그 개인에 대한 축출’”이고, 따라서 “비극의 플롯은 무익함, 운명, 개인적 고립 등을 강조하게 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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