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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정의에 굶주린 사람들

▲본지 논설주간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지난 8월 우리 나라의 화두는 ‘정의, ‘공정’ ‘복수’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였습니다. 8월 8일 청와대가 발표한 총리 후보와 아홉 사람이나 되는 장관 등 새 내각의 후보자들에 대한 자격 검증과 국회에서의 인사청문회 등, 20일 동안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결국 총리 후보는 손을 들고 물러 나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변명을 하면서 아쉽고 억울한 모습을 보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잘 한 처사"라고 하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창피한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뒤엉켜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창피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의 상식이 있는 지도자감 밖에 없나 싶어서였습니다. 분노는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나라 어른들이 이 정도의 인물 밖에 길러 내지 못했던가 싶어서였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돈, 돈" 했으면 젊은 지도자들이 돈과 출세에 미쳐서 상식과 법과 도덕과 윤리와 염치를 모르고 권력만 잡으면 만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을까 싶어서 스스로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개각을 발표하자 며칠 후에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꺼냈습니다.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못되었는가? 왜 하필이면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고, 일제 100년을 되새기는 마당에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 것일까? 질의 응답이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사람들을 총리와 장관으로 발탁한 것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통령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라 일을 보겠다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우리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말을 공포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신문과 방송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론은 "대통령님, 당신부터 공정하세요"라는 목소리가 아우성처럼 들렸습니다.

이토록 온 나라가 새 내각으로 지명 받은 면면들이 국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죄송하다" "기억이 안 납니다" "마누라 탓입니다 "아이들 학교 탓입니다"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미국의 유명 대학의 철학 교수가 손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우리말 번역본으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저술한 셸든이라는 50대의 교수(하버드대)입니다. 이 교수의 강연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대중 공개 강연에는 5천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운집했고 신문사 마다 인터뷰 기사를 실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서 정의에 목마른 사람들처럼 이 미국 교수에게 배우려고 몰려들었을까요? 한국에는 정의를 강의하고 책을 쓰는 철학 교수들과 윤리학 교수들, 그리고 종교가들이 없어서 이토록 미국 교수의 ‘정의 강연’에 몰려 들었을까, 진지한 고민을 하게 했습니다. 사실 신문에 난 미국 교수와의 대담 기사를 읽어 봐도 특별하거나 대단한 이야기보다는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 사회 공동체의 건강을 위한 정의의 문제를 진솔하게 말한 것 뿐이었습니다.

‘정의’와 ‘공정한 사회’ 이야기가 국회에서 신문에서 영어로 하는 강연장에서 뜨겁게, 그러지 않아도 뜨겁고 무더운 짜증 나는 여름 날씨에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의 영화극장의 화두는 역시 ‘정의’와 ‘복수’였습니다. 관객의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화제가 된 영화만 해도, <이끼>니 <아저씨> 같은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 하고 함께 볼만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끔찍하게 사람을 죽이는 유혈이 낭자한, 정도를 넘어서는 참혹한 장면이 많은 영화들입니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참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하며 한숨을 쉬면서 "영화이기를 너무 다행이다"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 보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혹한 살인들이 ‘정의’라는 이름 ‘정당한 복수’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태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에 나오는 구절,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성구(구약성서 출애굽기 21장 24절)까지 등장시키면서 ‘정의로운 복수’는 ‘잔인한 복수’라고 강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잔인하게 복수하는 살인자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스스로의 ‘정의감’에 만족함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오게 됩니다. “속 시원하게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았네”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 정의에 “미쳐있는거 아닌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남과 북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관계가 나빠지고, 동해에서 미국 함대와 함께 전쟁 연습을 하고 이제 서해에서 핵 추진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대적인 해상 작전 연습을 감행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응해서 중국은 황해 앞바다에서 실탄 사격 연습을 해야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보복하고 우리 해군 용사들에게 죽음을 주었으니, 너희들도 사죄를 하던가, 당해 봐야 한다는 기초적인 정의를 확립해야겠다는 윤리적 논리가 나올 만합니다.

이토록 ‘정의’를 내 세우고 논쟁을 버리고 있는 동안, 경술 국치 100년을 참담한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일본 총리가 마지 못해 사죄한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의지에 반하여 침략한 것을 사죄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 구체적인 행동의 약속은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정의감’에는 너무 미흡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100년 동안 당한 것 만큼 보복하겠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정의감’의 만족을 위해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고 얼마나 더 오래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정의가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의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 만큼, 그리고 ‘정의’를 강연하는 미국 대학교수의 강연장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는 동안, 영화관의 ‘정의’와 ‘복수’의 영화, 매일 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복수에 찬 연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갈망은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모처럼 내어 놓은 총리 후보를 ‘정의’의 이름으로 물러나게 한 것 역시 우리 사회의 ‘정의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미흡하지만 그 당당한 일본 총리가 허리를 굽히고 우리를 향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일본의 양심적 역사학자들이 우리 학자들과 함께 ‘한일 병합’의 법적 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것 역시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원한 가을 바람과 함께, 넓은 들에 무르익은 곡식들을 둘러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석을 맞이하면서 조상들 앞에 무릎 꿇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없게 되도록,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높은 사람들이 낮은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죄송 청문회’를 만들지 않겠노라고 약속했으면 합니다. 국회의원부터, 장관 후보자들에게 던진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청문회에 섰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정의감’을 테스트해 보기를 바랍니다.

‘정의’에 목마른 여름이었습니다. 정의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올 가을 깨끗하고 맑은 추석달을 바라보며 우리의 ‘공정한 사회’ 만들기를 위해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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