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이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증거’를 대라”

칼 세이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리뷰

▲칼 세이건

세계적인 천문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칼 세이건(1934~1996)이 신의 존재를 논한 강연이 책으로 나왔다. 하버드대 천문학 조교수와 NASA의 자문위원을 역임한 세이건은 우주 탐사 계획에도 참여했다. 신학자가 신을 알기 위한 열망으로 몸부림 치듯, 세이건은 평생을 우주에 대한 연구에 바쳤다. 그는 ‘신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논증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그들의 논증에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신학자들로부터 나온 신에 관한 논증을 그는 6개로 정리하고 반박한다.

우선 ‘우주론적 논증’이다. ‘모든 사물은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데 원인의 연쇄를 따라 올라가면 제1원인이 있고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다’라는 논증으로서, 이에 대해 세이건은 “만약 하느님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하느님은 누가 만들었는데?’라고 물어봐야 마땅하다. 사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던지지만 부모들은 십중팔구 그런 창피한 질문은 하는 법이 아니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그 하느님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 이것이 그냥 우주가 항상 여기 있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만족스러운 논증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논박한다.

두 번째, ‘설계로부터의 논증’이다. 이 세상 한편에는 인간이 만든 사물이 있고 또 한편에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면서도 인간이 만들지 않은 뭔가가 있으니, 따라서 그 뭔가는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어떤 지적 존재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이 논증에 대해 세이건은 “우주에 수많은 질서가 있음이 분명하나, 그와 동시에 수많은 카오스(혼돈)도 존재한다. 은하나 퀘이사의 중심부는 주기적으로 폭발하는데 만약 생명체가 사는 세계나 문명이 거기 있다면 매번 은하 핵이나 퀘이사가 폭발할 때마다 수백만 개씩 파괴되었을 것이다”며 “이것만 놓고 보면 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어떤 ‘신 견습생’이 자기 능력을 벗어난 일을 하다 쩔쩔매는 것처럼 보인다’”며 여러 가지 원리가 혼재하는 우주임을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도덕적 논증’에도 반박한다. 우리가 도덕적 존재이므로 하느님은 존재한다는 이 논증에 대해 세이건은 “우리가 자녀를 잘 돌보려는 강력한 동기를 지녔다고 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자연선택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아니라면 의식이 것이 어떻게 존재 속에 생겨났느냐에 관한 ‘의식으로부터 논증’에 대해서는 신경학적인 논박을 내놓는데, “의식은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뉴런 결합의 수와 복잡성이 빚어낸 작용”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결국 1011개의 뉴런과 1014개의 시냅스 갖은 것을 지닐 때 생긴다. 만일 인간이 1020개, 또는 1030개의 시냅스를 지녔을 때 생기는 의식은 어떤 것일까? … 따라서 의식으로부터의 논증, 즉 동물계와 식물계 전체를 관통하는 의식의 연속체로부터의 논증이라는 것이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신간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

나아가 그는 종교적 경험이 특정한 분자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그 분자를 사용한 가상의 약에 ‘시오포린’이라는 이름까지 붙인다.

이 밖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비평을 내놓는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요악된다. ‘증거’가 없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증거가 무엇이냐?’라고 물어봐야 한다. ‘자기가 귀의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극도로 카리스마적인 사람이 여기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온갖 종류의 배타적인 귀의 경험을 지닌 카리스마적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고 그들 모두가 맞을 수는 없으며 어쩌면 그들 모두가 틀릴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근거할 수 없고 ‘증거’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며 ‘신이 없다’라고 완전히 단정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증거를 찾지 못햇다는 사실로부터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음을 제가 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지는 않는다”며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한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이 1985년에 글레스고대학교에서 행한 ‘자연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Gifford Lectures on Natural Theology)를 정리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법률가 애덤 기퍼드 경의 유언과 기부금으로 시작된 이 강연에는 신학자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위르겐 몰트만,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 과학자 닐스 보어, 리처드 도킨스 등 쟁쟁한 학자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종교의 종말>의 저자 샘 해리스는 “세이건이 20세기를 주름잡은 갖가지 대중적 망상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은 이성의, 공감의, 그리고 과학적 경외의 보물”이라며 추천했다.

바울의 말처럼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물음이 어떤 것인가, 또한 그들의 대답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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