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해석학’에 비춰 보는 ‘종교간 대화’의 당위성

종교간 대화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세계가 지구촌화 됨에 따라 종교간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에 있어서 ‘대화’는 당연한 실천덕목이며, 생태문제와 같은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종교들은 서로 대화하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이상의 이유를 종교간 대화를 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목사)가 새 논문 <동서종교사상의 화합과 회통>에서 밝혔다.

그가 말하는 ‘근본적인 이유’란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는 ‘해석학적 제약성’이다. 여기서 해석학은 정신과학에서의 해석학으로, 이는 예술·종교 등 인간 정신의 산물을 인간의 체험이 표현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산출한 인간의 체험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그는 “정신과학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해석학에서 말하는 인간존재의 해석학적 제약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종교적 측면에서 살핀 인간의 해석학적 제약성이란 구체적으로 뭔가. 이는 첫째,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문화-역사적 동굴’ 속에서 형성된 해석학적 패러다임에 의하여 자신과 세계 그리고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해석학적 패러다임은 진리를 어떻게 보고 이해할까를 결정할 뿐 아니라 무엇을 보고 이해할지도 결정짓는다. 셋째, 역사 속에 출현한 모든 가치체계와 상징체계는 일정한 삶의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그것 자체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따라서 인간의 진리체험 또한 상대적인 것을 통해 절대적인 것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이해다. 한마디로 어떤 종교에서건 인간의 종교적 체험은 어느 정도의 ‘상대성’을 띨 수 밖에 없다는 견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종교간 대화를 보다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해석학적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진리 이해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솔하게 만든다는 것이므로”, 이런 인간 이해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해석학적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 즉 타종교인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협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이러한 인간 이해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종교간 대화는 그 깊이를 한층 더하게 된다. 타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타종교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 그 종교의 표층이 아닌 심층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해석학적 인간 이해에 근거한 종교간 대화가 ‘종교혼합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성숙한 종교간의 대화는 설익은 ‘자기정체성 없는 ‘종교혼합주의’로 전락하지 않는다”며 “마치 무지개의 일곱 색상이 하나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 듯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진미를 맛보게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저한 상대주의’가 지닌 해체주의적 철학이념에 빛과 그림자가 있고 찬반양론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는 것들의 ‘차이’와 ‘다양성’을 지구 공동체가 공존해나가는 데 있어 위협이 아닌 축복과 기회로 볼 수 있도록 현대인들의 안목을 열어준 공로는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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