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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전쟁은 두렵지 않지만, 원하지 않는다”

▲서광선 고문(이화여대 명예교수)
6월 달력을 열어 본다. 5일이 “환경의 날”이다. 한국의 종교계가 우리 금수강산에 우리 역사와 함께 도도히 흘러 내려 온 4대강 살리기에 성명서를 내고 행진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면서 정부가 불도저의 굉음과 함께 밀어 붙이는 “4대강 죽이기”를 반대하고 나섰다. 2일의 지방선거 결과가 환경파괴 정부와 여당의 승리로 귀결이 되면, 정부는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거세게 “4대강 죽이기, 환경파괴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 눈에 보인다.

10일은 “민주항쟁기념일”이라고 적혀 있다. 1987년 신군부가 5공화국을 세우고 박정희 군사정권을 연장하는 반민주 반민중적 폭거에 저항하여 일어선 범국민적 민주항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이른바 유신헌법과 장충당 간접선거법을 고치고 군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헌법을 제정해서 30 여년 만에 우리 손으로 직접 “거룩한 한 표”를 던지는 감격을 맛 보게 된 날이기도 하다. 

6월 15일은 우리 달력에는 없지만, 10년 전, 우리 김대중 대통령이 북의 김정일 위원장을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날이다. 15일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1항)”는 말을 듣는 순간, 1972년 7.4. 공동성명에서 이념과 사상 그리고 제도를 초월한 자주적 평화 통일 원칙을 발표한 것을 들으면서 감격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6월 15일은 6월 25일, 60 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한 같은 달에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남과 북의 두 정상은 6.25 한국전쟁 반세기를 기억하면서 2000년 6월 15일에 화해와 협력과 평화를 향한 만남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을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시는 남과 북의 아들 딸 들과 형제자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총을 겨누고 싸우고 피를 흘리고 죽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과 다짐으로 만났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정부의 발표와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이로 인하여, 전쟁의 소문과 공포분위기는 지방선거 유세기간 동안 급격히 고조되었었다. 북의 목소리는 무섭게 높아만 가고, 우리 정부는 북을 우리의 “주적”으로 몰고 가고 거의 모든 남북교류를 중단하고 자위권을 동원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대통령의 심각한 모습과 음성을 들으면서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전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중국의 총리를 모셔 오고, 일본의 수상 까지 모셔다가 동 북아 3개국 정상회담을 열기 까지 하였다.  중국 수상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이 묘한 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두렵지 않지만, 원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을 3년 동안 겪은 나라의 대통령이 한 말이다.

아니 어떻게 전쟁이 무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인가? 직접 체험을 안했다고 해서 전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체험이 없었는가, 아니면 역사의식이 없는 것인가 묻고 싶다. 이글을 쓰는 필자는 6.25 전쟁이 일어나는 날 아침 평양에 있었다. 미국 비행기들이 매일 같이 날아와 폭격을 가할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 가는 아픔과 슬픔을 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반공 목사라고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이었다가 미군과 국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 대동강 하류에 시체로 떠 있는 것을 건져 장사지내고 나는 남하하여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하였다. 아버지는 비참하게 전신에 총을 맞고 총살당하신 것이다. 피난 내려오는 길에 더 많은 피난민들이 총에 맞아 죽고, 폭탄에 포탄에 병신이 되었다. 피난민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휴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니 공산당이니 용공분자니 하며 숙청에 휩싸여 죽어야 했던 친척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 그 숫자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도시의 기능을 다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는가?

전쟁은 무서운 것이고, 두려운 것이다. 솔직하게 우리는 전쟁을 싫어하고 전쟁을 무서워한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 집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과 싸워서 얼굴이 터져 왔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야, 이 바보야, 왜 맞고만 다녀? 응? 같이 싸워야지.” 위로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손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이 아빠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야, 누가 널 때리면 절대로 달려들면 안 돼. 싸움을 걸어오지 않게 해야지. 그리고 누가 싸우자고 하면 도망치든지 안 싸운다고 해, 알았어?”하는 것이었다. 한 개인 사이의 싸움 역시 무서운 것이다. 피해야 한다. 피하는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무서운 것이고 두려운 것이다. 피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서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유엔이 있고, 외교라는 것이 있고, 대화라는 것이 있다.

한국 전쟁과 화해의 달, 6월,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기도하자. 그리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 “평화를 사랑하는 군대,” 우리 군대가 한반도의 “평화유지군 (peace keeping force)"이 되고, 온 국민이 평화를 만드는 힘 (peace making force)을 기르는 연습을 하자. 예수는 일찍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마태5:9).“고 말씀하셨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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