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낸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문자 내용인 즉,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에 관해 대담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연락에 어리둥절 했지만, 반가운 소식에 혼쾌히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설레임 속에 약속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고, 지난 달 28일 을지로입구역 부근의 어느 커피집에서 그를 만났다.
CCA 전 총무(2001-2005) 안재웅 박사(전 함께일하는재단 상임이사). 안 박사와 같은 주제를 놓고 대담을 나눈지 벌써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짧지만 긴 시간일 수 있는 이 기간, 그에게 다른 할 말이 더 생긴걸까? 통상 대담은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 것을 뜻하는데, 이날 만큼 기자는 오감을 귀에 집중했다.
안 박사는 ‘4월’에 얽힌 이야기로 대담의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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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웅 박사 ⓒ베리타스 DB |
“4월은 퍽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달입니다. 1960년 4.19 때 내가 학생이었고, 그 당시에 학생 리더들이야..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단지 말미에서 돌이나 던지고 따라다니는...그렇지만 4.19를 겪은 세대야. 4.19가 올 때마다 내 마음에는 늘 되살아났고, 올해는 그것이 또 50주년이 되는 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운명을 달리한 사람, 신체 불구가 된 사람, 그 후 취직을 못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 또 일부는 4.19로 인해서 유명해진 사람이 있죠. 한 인간의 삶과 죽음과 어떻게 보면 인간을 판단하는 가치, 이런 것들을 4.19 때마다 되새겨 봐요”
또 하나가 1974년 4월 3일에 발발한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그는 주동자로 몰린 32명 중 한명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잡혀가서 취조를 받고, 2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기소를 당하고, 그 중에 나는 가장 중심이 되는 32명에 끼어서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군사재판에서 말하자면 아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값진 경험을 한게 4월이었다.”
안 박사의 ‘4월’에 얽힌 기구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1982년 4월 CCA 25주년 기념행사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있었다. 행사 중 큰형으로부터 전화 한통화가 걸려왔다. “야 벌써 아버님이 운명하시고 내일이 장례다. 너는 지금 CCA 회의를 하고 있으니까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그 회의를 잘하고 돌아오라” 중요한 모임 앞에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도 찾지 못했다고 안 박사는 고백했다.
안 박사에게 4월은 이렇듯 고난과 시련의 연속으로, 말하자면 ‘겨울’이었는데 그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달”이라며 ‘봄’을 말했다. 그에게 ‘겨울’은 단순히 ‘겨울’이 아니라, ‘봄’이 왔음을 알리는 가슴 설레는 소식이었던 것이다. 안 박사는 4.19, 민청학련 사건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고, 아버지를 떠나 보내면서까지 몰두한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리더십을 길러 CCA 총무에 발탁되기도 했다.
혹자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겨울’을 맞았다며 섣부르게 에큐메니컬 운동의 위기론, 쇠퇴론을 말하곤 한다. 안 박사는 이들을 향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게 마련이다"라는 단순 명쾌한 진리를 제시했다.
“너무 실망할 것이 없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한 움틀 때가 되면 움트고, 잎이 날 때가 되면 잎이 나는거고, 꽃이 필 때면 꽃이 피는거고, 열매 맺을 때면 열매를 맺는 것이고, 또 열매가 떨어져서 다시 재생산 되는 등 자연의 순리를 알면 우리가 실망해서는 안된다. 찰나의 현상만 보고, 에큐메니컬 운동이 위기요. 죽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참 경박스럽다. 다만, 계절처럼 아주 활짝 피는 성장기가 있고, 겨울 처럼 침체기가 있고, 심지어는 후퇴하는 하강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기복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은 살아서 지속되고, 꾸준히 재 생산하는 이 원리대로 가고 있으므로 에큐메니컬 운동이 위기라느니 죽었다느니 함부로 말하는 것은 참 사려 깊지 못한 것이라 본다.”
정원수도 있지만, 사방에 널린 크고, 작은 나무들로 지구는 숨쉰다. 안 박사는 이런 어울림과 조화 속에 에큐메니컬 운동의 진수(眞髓)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큰 나무만 보지, 작은 나무나 수풀이나 그 아름다운 이름 없는 것들은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정원수를 심어 놓고 즐거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원수가 자기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어 장식물에 불과하게 여기는 사람도 주변에 수두룩하다."
대형교회를 정원수에 빗대어 설명한 그는 정원수의 존재 유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민중교회, 특수선교, 여성모임, 환경모임 등등 크고, 작은 나무들로 교회와 사회 나아가 세상이 숨쉬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같은 의미에서 안 박사가 본 에큐메니컬 운동은 전혀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이어 그가 던진 또 다른 화두는 교회의 민주주의였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 세계 각국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당시 비 유럽 내지 비 서구권 사람은 옵저버로만 참석할 수 있었다. 피선교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선교국 사람으로서 대회시 강사로도 활동하고, 위원회에 들어가 활약하는 등 이례적인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었으니 인도 교회를 대표한 아즈라야(V.S Azariah)였다. 안 박사는 아즈라야가 강연에서 했던 말을 정리해 기자에게 알려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 하면 선교국이나 피 선교국에서 일하는 선교사와 협력 사역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선교사를 보내고, 돈을 보내고 값을 지불하면서 주인 노릇하는데 우리는 뼈 빠지게 일하며, 종노릇한다. 이런 기독교로는 안된다." 그의 강연은 당시 참석한 선교 지도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선교국과 피선국의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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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열린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제 13차 총회 사전모임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배로서 후배들 앞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는 안재웅 박사(사진 우). ⓒ베리타스 DB |
안 박사는 "에딘버러 100년을 맞이하는 2010년 우리가 친구로서의 자질과 사명 그리고 과제를 진심으로 나누고 있는가"라며 "특히 한국교회가 세계 여러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며 협력 선교 및 사업을 하고 있는데 과연 아즈라야가 1백년 전에 에딘버러 대회에서 했던 그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친구로서의 선교를 하고 있는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백년 전 에딘버러 대회에서 히트를 쳤던 용어 ‘동등한 참여’(Ecual prticipation)를 언급했다. 안 박사는 "보낸 자나, 협력 자나 하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일한다는 그런 의식 없이 선교를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선교국과 피선교국이 주종 관계를 넘어 서로 주인되는, 민주주의로 의식화 된 선진 선교를 펼칠 때라는 말이었다.
또 하나의 교회 민주주의 과제로 안 박사는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을 한다. 그러나 교회는 또 시민 사회에서는 시민으로서 사회 책임을 다하고, 국가에서는 국민의 일원이자 신앙인으로서 양심적으로 그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와 사회 그리고 국가에 속한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하도록 도와 조화로운 삶·평화로운 삶·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일이 에큐메니컬 운동이다."
한국교회가 울타리를 만들고, 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생리를 날카롭게 분석한 안 박사의 견해도 돋보였다. 그는 "울타리를 치는 대다수 교회는 그 속의 아방궁(교회 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당한 궁금증을 자극시키는, 그런 테크닉만 돌리고 있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안 박사는 "예수는 울타리 없이 이방인을 만나고, 병자들을 만났다"며 예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활동을 했음을 증언했다.
한편, 안재웅 박사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 방안도 제시해 기자의 이목을 끌었다. ‘전문화된 기구 간 컨센서스(Consensus) 형성’과 ‘타 종교를 향한 보다 깊은 배려심’ 등이었다. 요약해서 정리해 본다.
◈전문화된 기구 간 컨센서스(Consensus) 형성
"초기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IMC(국제선교협의회),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삶과 사업(Life and work) 등 세 덩어리가 일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 기구 간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해서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신앙과 직제>가 ‘평화‘를 얘기했고, <삶과 사업>이 ‘선교’를 말했다. 그러나 요즘 에큐메니컬 운동은 자기 분야 전문화를 넘어 기구 간 제대로 된 소통이 오가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선배들이 한 집안 식구라는 의식 안에서 위트니스 투게더(Witness together, 워크 투게더(Work together) 했던 것 처럼 칸막이를 걷어 내고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타 종교를 향한 보다 깊은 배려심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이것은 황금률이다. 복음의 황금률. 타종교도 자비를 얘기하고, 박애를 얘기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타종교의 고급스러운 신앙의 경지를 우리가 아주 가볍게 내지는 아주 무시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절대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어떻게 하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서로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일에 종교, 인종, 계급, 신분을 떠나 다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大)선배 안재웅 박사는 이날 대담에서 자신이 평소 갖고 있던 생각들을 페이퍼에 정리해 1시간 가량 쉴새 없이 쏟아냈다. 대담을 마치고도 "다음에 만날 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에요"라며 기자와 인사를 나눴다. 그 모습 속에 여전히 식지 않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열정(熱情)과 애정(愛情)이 묻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