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주, 국내 최초 장기기증 명소로 거듭나다

 ▲‘생명 나눔의 얼굴’ 조형물. 892명의 얼굴들이 모두 새겨진 것은 아니고, 이름을 새겼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에 위치한 제주 라파의 집에서는 제주도가 장기기증의 역사적 명소로 거듭나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만성신부전 환우과 생명을 나눈 신장기증인 892명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 ‘생명나눔의 얼굴’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 2008년 11월부터 6개월에 걸쳐 제작된 ‘생명나눔의 얼굴’은 우리나라 20여년의 장기기증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장기매매가 만연했던 1991년,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창립되고 그 후 장기매매가 순수한 사랑으로 생명을 나누자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으로 변화되었다. 그동안 900여명의 사람들이 생존시 신장기증으로 순수한 사랑을 고통 받는 이웃에게 전했고, 이 사랑이 토대가 되어 우리나라의 장기기증운동이 현재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생명나눔의 얼굴’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장기기증인을 예우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물이라는 점이다.

장기기증의 선진국의 경우, 장기기증을 한 사람이나 유가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대신 그들이 장기기증을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예우사업이 발달해 있다. 장기기증에 있어서는 타의 부러움을 사는 스페인의 경우 금전적인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대신 정신적인 지원이 꾸준하게 이루어진다. 장기기증인이나 유가족에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한다든지, 관련 책자나 편지를 발송함으로 그들이 장기기증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인구 100만명당 뇌사장기기증자의 수가 25명에 육박하는 미국의 경우도 매년 로즈퍼레이드를 통해 장기기증인을 추모한다. 매년 새해 첫날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서 열리는 로즈퍼레이드에는 장기기증인을 추모하는 꽃차 행렬이 있다. 꽃차는 장미와 장기기증인들의 사진들로 장식이 되어 있으며 그들에게 장기를 이식받고 새삶을 찾은 이식인들이 탑승해 퍼레이드를 펼친다.

우리나라 역시 장기기증 선진국처럼 안정적인 장기기증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금전적 보상이 아닌 예우 사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기기증인을 추모하거나 예우하는 사업이 전무하다. 대신 장례비를 지원하는 등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오히려 장기기증의 숭고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위험성이 있다. 일례로 1992년 뇌사로 장기를 기증한 양희찬 상병의 경우 당시 그가 복무하던 부대에서 성금을 모아 모친에게 전달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양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며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다. 물질적 보상에 가려 아들의 숭고한 사랑나눔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금전적 보상 대신 장기기증인들을 예우하고 자부심을 극대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처음 시도된 ‘생명나눔의 얼굴’ 제막식에는 신장과 간을 기증한 김주백씨와, 함께 기념물 건립을 후원한 한국수력원자력 김준수 전무와 만성신부전 환우 복지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로타리클럽 회원들, 제주농협 지역본부 고병기 부본부장 및 서귀포시청 양임숙 국장이 참석하였다. 또한 제주를 찾은 신장장애인들이 행사에 참석해 만성신부전 환우들을 위해 생명을 나눠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장기기증운동이 더욱 활성화 되도록 독려했다.

 ▲박진탁 본부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제막식을 열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기증인 김주백씨는 제주에 있는 서호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이다. 김씨는 지난 2005년 10월 신장기증을 해 본부 창립 후 800번째 신장기증인이 되었다. 신장기증을 하기 전부터 김씨와 장기기증의 인연은 남달랐다. 김씨는 아내가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어서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심이 많았다. 가족 중에는 조직형이 맞는 사람이 없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못했고, 현재는 약을 복용하며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김씨는 아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환우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아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지 못했다. 그는 조혈모세포 대신 주기적으로 헌혈에 동참하며 생명나눔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리고 작년 5월, 신장기증에 이어 간기증으로 두 번째 장기기증을 실천했다.

생존시 신장과 간을 기증한 김씨는 이번 ‘생명나눔의 얼굴’ 제막식에 두는 의미가 크다. 실제 장기기증을 한 사람들이 예우사업을 통해 자부심을 가지고 홍보를 하게 되면 일반인들이 더 신뢰감을 가지고 장기기증에 동참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신장기증을 한 교회의 청년을 보고 신장기증을 결심하게 됐고, 신장기증인 중에 간 기증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 기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만성신부전 환우들을 위한 쉼터인 제주 라파의 집이 2007년 준공된 것에 이어 ‘생명나눔의 얼굴’이 건립되며 국내 최초 장기기증 명소로 거듭난 제주도에는 김주백씨를 비롯하여 미혼여성으로는 흔치않게 신장기증을 한 사회복지사 조애영씨 등 10명의 신장기증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주 지역이 장기기증의 역사적인 장소로 거듭나게 돼서 제주도민으로서 매우 보람된다”며 “앞으로도 장기기증을 한 사람이나 가족들을 위한 예우사업이 많이 진행되어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국민들이 장기기증운동에 동참하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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