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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에큐메니칼 신학: 선교, 사회윤리를 중심으로

NCCK 신앙과 직제 위원회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대토론회 발제문


채수일(한신대학교/선교학)

1. ‘에큐메니칼 신학’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흔히 ‘에큐메니칼 신학’이라고 말하지만, ‘에큐메니칼 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교회일치 운동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역사, 특히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신학적 논의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의 신학적 전거, 특히 이른바 보수적인 복음주의진영과의 대결관계에서 형성된 진보적 신학을 에큐메니칼 신학이라고 하는가? 약방의 감초처럼 마치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진보, 보수 모든 진영에서 사용되고 있고, 말하는 사람마다 다 저마다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신학’이라는 개념에 처음 주목한 사람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였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교회들의 우호 증진을 위한 세계연맹’의 청년회 총무로서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언제나 자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신학을 창출하였습니다. 교회의 자기 이해의 전환은 신학의 창출을 통하여 증거 됩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계시 이해를 근거로 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자기인식이기 때문이며, 이런 교회의 자기인식은 그것이 새로운 전환기에 놓일 때마다 신학의 창출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리스도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기인한다면, 에큐메니칼 운동 역시 새로운 신학을 창출해야하고, 또 하리라고 보입니다. 에큐메니칼 신학이 형성되지 못한다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다만 새로운 시류에 영합하는 한낱 교회적인 목적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실 모든 신학적 구상은 그 시대의 세계 역사가 가지고 있던 문제에 대답하려고 시도했다. 신학은 ‘그들이 처한 역사적 시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적 상황을 조명하며, 대답을 모색한다. 그리고 역사적 현실이 제시하는 다양한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서,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에 대한 진술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도 그 신학을 탄생시킨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신학은 에큐메니칼 하다고 할 수 있다. 
신학이 본질적으로 에큐메니칼 하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창조’와 ‘성육신’에서 이미 선취되었다. 하나님은 왜 우주를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대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창조세계와 대화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에큐메니칼 신학의 전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본질적으로 에큐메니칼 하든지 아니면 그리스도교 신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상과 대화하지 않는 신학,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신학은 에큐메니칼 신학이 아니다.

2. 복음주의, 혹은 ‘에반젤리칼’이라고 불리는 운동과 신학은 의식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신학운동에 대한 대결에서 탄생했다. 두 진영, 곧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의 대립과 대결은 성서에 대한 비판적 해석의 수용여부(축자영감설 대 비판적 해석)와 같이 신학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당대의 사회적 상황(냉전체제, 인종주의, 제3세계의 빈곤과 인권침해, 개발독재, 가부장주의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의해서 한층 더 심화되기도 했다.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봉사, 재난구호,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는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립구도에서 에큐메니칼 선교와 사회윤리를 규명해가는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쟁점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양해하기 바란다.

이런 대립을 특히 ‘선교’와 ‘사회윤리’ 영역에서 검토하면서 에큐메니칼 선교와 사회윤리는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발제자의 과제다. 여기서 에큐메니칼 선교와 사회윤리라는 말이 꼭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적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발제자의 주관적인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2-1. ‘에큐메니칼 선교’라는 개념이 ‘에반젤리칼 선교’와 날카롭게 대립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두 진영 사이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세계교회협의회의 방콕 선교대회(1973년)가 ‘오늘의 구원’을 주제로 모인 후, 복음주의자들이 세계대회를 통해 맞불을 지필 때였다. 그러나 1974년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는 제3세계의 구조적 빈곤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인식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전도와 선교’ 문서를 통해 개인과 영혼구원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그 후 이른바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 사이에 더 이상 도식적인 형태의 ‘영혼구원 대 사회구원’, ‘복음화 대 인간화’라는 대립구도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복음주의 진영이 훨씬 큰 규모의 물적 기반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문제는 이웃종교에 대한 시각이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이웃종교를 인정하고, 이웃종교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권의 입장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종교를 보는 시각이 적대적이고 심지어는 개종을 지향하는 공격적인 선교양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보인다. 에큐메니칼 선교는 개종강요가 아니라 성령의 초대로서 선교를 이해한다. 갈수록 서로 다른 민족들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접촉이 활발해지는 세계에서 에큐메니칼 선교는 살아있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설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개종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성령의 역사에 맡기면서 대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에큐메니칼 선교는 직면해 있다. 내부적인 논쟁이 있지만 에큐메니칼 선교는 대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모든 사람의 그리스도라는 신념을 희생시키거나, 선교는 교회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 대화는 그리스도교 선교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교적 노력은 본질에 있어서 대화적이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선교는 주요 종교적 공동체들이 상대에 대한 승리주의보다 상호존중과 참된 상호이해의 정신으로 서로 관계 맺기를 희망한다.

2-2. ‘에큐메니칼 사회윤리’

에큐메니칼 사회윤리도 고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고, 진보적 입장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서 한 마디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공적 갈등 영역, 예를 들면 핵폐기물 처리, 새만금 개발,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태도에서의 분열은 에반젤리칼 대 에큐메니칼로 선명하게 양분하여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돈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약간의 차이는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력비판적’이냐 ‘권력순응적’이냐에 따라 두 입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보인다. 에반젤리칼은 정치적 보수성, 정치권력과의 유착, 신앙의 시장화(번영의 신학), 이적과 기사의 기술화 등을 연상시킨다. 특히 미국의 에반젤리칼 지도자들은 극우적인 애국주의자들이거나, 열광적인 종교권리의 주창자들, 다른 인종들에게 대단히 배타적이고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반면 에큐메니칼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폭력’ 등에서 ‘당파적 선택’을 취했다.

사회윤리와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도 중요한 기준이다. 한국교회 기복신앙의 확산에 한국전쟁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연구한 김흥수 교수는 오순절운동을 기도원 은사운동과 부흥회와 함께 기복적 신앙체제 형성의 주요 세력으로 지적한다. 한국교회 오순절운동에는 회개의 메시지보다는 기복적인 성격이 강하게 베어 있다는 것이다. 에반젤리칼 혹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비판은 윤리적 성화 없는 열광주의, 지나치게 자의적인 성서해석, 말씀보다 체험을 중시하는 주관주의적 태도,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이해된 구원론과 기복성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데, 그것은 은사운동을 통한 교회의 갱신과 복음화, 신앙의 확신과 열정의 부여, 교회의 양적 성장 등일 것이다. 복음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김명혁 박사도 신유와 이적 등의 성령의 외부적 은사들이 전도와 교회성장에 긍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신비적 체험이나 현재적 축복을 갈망하는 비윤리적, 기형적인 신앙운동을 초래하기도 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위에서 언급한 도식적인 분류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에큐메니칼 진영의 권력참여가 에반젤리칼의 권위주의정권의 정당화, 혹은 유착과는 다르게 평가되겠지만, 에큐메니칼 진영의 권력참여시기에 대하여 에큐메니칼 진영 내부로부터의 비판이 있었다는 것도 도식적 판단을 어렵게 한다.

에큐메니칼 사회윤리가 제도개혁을 지향한다면 에반젤리칼 윤리가 개인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도식적 차이도 더 이상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제도와 개인의 변화의 우선순위나 변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판단도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윤리를 중심으로 굳이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을 나눈다면 대형교회의 세습, 대형교회의 교세확장과 대규모 건축 등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교회의 공공성 문제를 중심으로 두 진영 사이의 차이가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에큐메니칼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은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열정으로부터 생성하며, 이 열정은 그리스도와의 친교에서 생성’하며, ‘이 열정 속에서 신학은 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세계에 대한 환상’(Phantasie)이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필연적으로 선교신학, ‘공적 신학’(Public Theology)이 된다고 지적했다. 몰트만에 따르면 ‘공적 신학’은 ‘이 시대의 고난에 참여하며, 동시대인들이 실존하는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나타내고...... 비판적으로 또 예언자적으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개입’하는 과제를 가지는데, 하나님 나라의 신학으로서의 공적 신학은 그러므로 ‘근본주의적으로 자신의 신앙공동체 속으로 퇴각하지도 않고, 현대주의적으로 사회의 경향에 편승하지도 않으며, 저항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다’. 몰트만에게 ‘공적 신학’이란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 다름 아니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시대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신학’, ‘비판적이고 예언자적으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개입하게 하는 신학’,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한국에서 공공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1987년 창립, 이하 기윤실)이 창립 20주년을 기해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정립하려는’ 의도에서 2007년부터 전문가 집담회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기윤실은 한국개신교 복음주의진영의 기독교시민운동의 하나로 출범했는데, 복음주의적 기독교 시민운동의 지도자의 한 사람인 손봉호 교수가 주창한 이른바 ‘선지자적 비관주의’로는 변화된 시대의 기독교시민운동을 끌고 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공공신학’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의 전문가 집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하면, 기윤실이 이해하는 ‘공공신학’은 아프카니스탄 한국인 단기 선교팀 피랍사건 후 더욱 분명해진 한국 개신교의 게토화를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신학적 담론으로 구상되는 것 같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담아내는 신학적 담론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굳이 새로운 담론을 모색하려는 것은 기독교 시민사회론과의 관계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교’나 ‘민중신학’ 보다는 ‘공공신학’이라는 담론이 시민사회 안에 있는 교회의 공공성을 이끌어내는데 덜 과격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윤리 영역에서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의 수렴 가능성은 ‘공공신학’ 혹은 ‘공적 신학’, ‘공공성 신학’이 두 진영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전된 논의를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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