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숨밭 김경재의 신학 아카이브 <바로가기 클릭>
자유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사는 힘(고전 9:19-23, 고후 6:1-10)
1. 기독교 신앙진리의 특징은 매우 ‘역설적’이라는 점에 있다. ‘역설’(逆說, paradox)은 일반상식이나 세상논리에서 보면 어리석고 이해가 않되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진리를 드러낼 때 쓰는 단어이다. 예들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는 성경구절이다. <오직 십자가에 달린 그분만이 나의 구주, 세상의 메시야이시다>라는 초대교회의 고백도 역설이다. 상식적으로 말 할 때, 십자가에서 정치범과 신성모독자의 죄명으로 처형당한 33세 청년을 구주요 메시야라 따름은 유대인에겐 ‘거리끼는 것’, 헬라인에게 ‘어리석은 것’ 이다(전1:23).
2. 복음의 역설적 진리성을 가장 뼈저리게, 뒤늦게 깨달은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다. 바울편지의 모든 페이지마다, 그가 깨달은 복음진리의 역설을 갈파하는데 지면을 할애하였다. 그가 거듭나기 전의 유대인중의 엘리뜨 유대인 ․ 로마시민권자 ․ 가마리엘 문하생의 율법전문가등등, 그에게 유익하던 것과 자랑스럽던 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뒤엔 하찮은 것이 되었다. 아니, 그리스도 십자가 생명을 경험하고 만나는데 도리어 해로운 것이 되고 방해물이 되었다(빌3:7-8). 바울은 십자가 안에 나타난 ‘역설적 진리’를 전하고 밝히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3. 그리스도인의 역설적 삶을 바울은 이렇게 열거하였다(고후 6:9-10):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자, 근심하는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자, 가난한자 같으나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자, 아무것도 없는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 라고 갈파한다. 역설적 진리를 거꾸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복음의 십자가 안에서 진정 자유인이 된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지만 마치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같이 소탈하게, 부자이지만 가난한 사람처럼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기쁨의 내면생활을 누리지만 주위 불행한 사람과 함께 늘 근심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4. 핵심을 말하면, 그리스도인으서 산다는 말은 참 자유인이 됨으로서 마치 그렇지 않는 것처럼 세상 안에서 사는 힘을 가진자를 말한다. 꾸밈이나 위선적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주위 사회에는 아직도 가난하고, 억울하고, 불행하고, 슬프고, 고난당하는 동료인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 「유마경」엔 이런 말이 있다: “衆生의 病은 無明에서 오고, 보디사트바(菩薩,보살)의 病은 大悲에서 온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 그 무엇에게도 메이지 않는 절대 자유인 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