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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신학 (1)

 

*발표 : 이형기 교수(장신대 명예, 공적신학연구소소장)
*일시 : 2010년 2월 19일
*행사명 : 한국기독교협의회 신앙과직제위원회 주최 '에큐메니칼 신학토론회 -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자료출처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or.kr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신학

 

 들어가는 말

2013년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를 앞두고 WCC와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WCC와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은 1951년 토론토 성명에 나타난 “무엇이 WCC이고, 무엇이 WCC가 아닌가?”를 소개한 다음에, ‘에큐메니칼’이란 말의 뜻을 밝히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적 이해에 기초하여 그것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과 발전에 대하여 논하고, 끝으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및 ‘삶과 봉사’(Life and Work)의 관계에 대하여만 논할 것이다. 전자는 신앙과 신학과 직제의 문제를, 후자는 세계교회의 인류사에의 참여 문제를 다루어 왔다.

 

1. 무엇이 WCC가 아니고, 무엇이 WCC인가?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좌경화된 사회참여 일변도로 나가며, 교회들을 하나로 묶어 ‘초대형교회’(a Super-Church)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일찍이 1951년에 토론토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WCC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것에 대한 참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The Church, the churches and WCC: the ecclesiological significance of WCC)라고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교회”(the Church)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과 같은 신약성경에 증언된 하나의 교회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교회들”은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 역사 속의 경험적 교회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WCC란 “교회들”의 협의체요 연합체로서 저 신약성경이 증언하고 고대 신조가 고백했던 하나의 교회(Una Sancta)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WCC는 애초부터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본성명서는 “무엇이 WCC가 아닌가?”라고 하는 부분에서 “WCC란 하나의 획일주의적인 초대형교회가 아니고 결코 그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라고 하는 내용을 첫 번째 항목에 놓았다.

이어서 본성명서는 “무엇이 WCC가 아닌가?”에 대하여 4가지 항목을 더 언급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첫째로 WCC는 교회들에게 연합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기구가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도록 하며, 교회들 상호 간에 생동적인 접촉을 도와주고 교회일치의 이슈들(the issues of Church unity)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도록 돕는다. 둘째로 WCC는 “교회”(the Church)에 대한 어느 하나의 특수한 개념”에 기초하지 않는다. 셋째로 그렇다고 WCC는 한 교파의 “교회”(the Church)에 대한 그 자신의 개념을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넷째로 WCC의 회원권은 “교회 일치(Church unity)의 본성에 대한 어떤 교파의 어떤 특정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성명서는 “무엇이 WCC인가?”에 대하여 8가지를 언급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첫째로 WCC의 회원교회들은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의 신적인 머리”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에 기초하여 대화와 협력과 공동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WCC의 회원교회들은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다.”(the Church of Christ is one)라고 믿는다. 셋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원권이란 자기 교파의 회원권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고백하는 모든 교파들 하고 살아있는 교제를 추구한다. 넷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상호 간에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추구하며 그것에 관계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WCC에 회원권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각 교파가 타 교파들을 완전하고 참된 의미에서 교회들(churches)로 간주하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다섯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 안에 있는 참 교회의 부분적인 요소들”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상호 인정이 없으면, 회원들 상호 간에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충만한 진리에 근거한 충만한 일치를 향하여 전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섯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배움을 함께 추구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WCC의 회원 교회들에게 이 세상을 향하여 어떠한 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는가를 기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일곱 번째로 WCC의 회원들은 “회원들 상호 간에 연대(solidarity)하여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형제애와 어긋나는 행동들을 삼간다.” 여덟 번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영적인 관계들을 바탕으로 상호 간에 배우고 상호 간에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고 교회들의 삶(the life of the churches)이 갱신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참고: 󰡔세계교회협의회의 기원과 형성󰡕. 비셔트 후프트 지음/이형기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교회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이 교회론이요, 이 교회론으로 말미암아 WCC에 가담할 수 없는 교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위의 “토론토 성명”은 이에 관하여 명쾌하게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세상 과격한 사회참여를 실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WCC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이 추구하는 ‘복음’, ‘삼위일체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 등을 근거로 “삶과 봉사”(Life and Work)운동으로 나가고, 하나님의 선교와 복음전도(‘세계선교와 복음전도 위원회’)를 함께 추구하기 때문에,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와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참고: 이형기.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흐름에 나타난 신학󰡕.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아래에서 이 글은 ‘신앙과 직제’ 운동과 ‘삶과 봉사’ 운동에 나타난 신학을 소개할 것이다.

 

2. 에큐메니칼이란 말의 뜻

에큐메니즘, 에큐메니시티(ecumenicity) 및 에큐메니칼이란 단어는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the whole inhabited world)이다. 희랍-로마 세계(the Greco-Roman World)에서 이 “오이쿠메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온 세상, 문명세계 혹은 희랍-로마 문화영역,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을 의미했다. 2-3세기에 이르면 이 용어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 속에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세계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4세기에서 5세기 동안에는 지중해 세계의 보편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처음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제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라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로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그것은 교회들의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 교회의 사회참여에 해당하는 “삶과 봉사”(Life and Work) 운동,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선교를 추구하는 “복음전도와 세계선교” 운동과, 이 세 운동의 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세 운동이 WCC의 세 기둥인 바, 이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도구로서 세계교회들의 공식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1975년 ‘나이로비 세계교회 협의회’의 JPSS(A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 하나의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 이후 오이쿠메네의 의미는 창조세계 보전 차원에서 온 우주를 아우르고 최근엔 타 종교들과의 대화도 포함하고 있다. 1983년 벤쿠버 WCC 총회 이래 오늘날 세계교회의 중심과제는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 정의, 평화, 창조세계 보전)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시장경제의 글로벌화와 정보통신의 세계화와 이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환경파괴, 그리고 다문화와 다종교가 지구적인 이슈들이 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공공신학에서는 오이코노미아의 3가지 어원적인 뜻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집안 살림살이’(oikonomia = managing of the household)요, 둘은 ‘생태학’(oikonomia = ecology), 즉 환경의 문제요, 셋은 다문화와 다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거주하는 세계의 구현이다.

 

3.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적인 의미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인류를 하나님께 화해시키시는 대제사장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한 코이노니아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 역시 다양성 속에서 코이노니아를 누리기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의 끝부분에 있는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는 그의 몸 된 교회에게 복음전파를 부탁하신 것이다. 즉, 교회일체를 위한 주님의 기도 목적은 교회의 복음전파이다. 그리고 골로새서 1:13-20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는 자들의 구속주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와 온 우주를 하나님께 화해시키셨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것은 대체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영역일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위의 성경말씀에서 13절과 14절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속량을 말씀하고, 15-17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사와 우주만물의 통치자이심을 증언하고 있으며, 끝으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3가지 뜻을 발견한다. 하나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속량이요, 둘은 우리 주님께서 인류보편사와 우주만물의 통치자요, 셋은 바로 이 교회의 머리로서 역사와 우주만물의 주님이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 사건에서 역사와 우주만물 까지도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 화해시키셨고, 마지막 때에 온전히 화해시키실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화해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에베소서 1:10절 역시 같은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의 역사는 교회들의 분열의 역사요 일치추구의 역사이다. 교파들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교리들과 직제들과 사회참여의 방법들이 다르다. 그러나 성경과 전통은 우리들에게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제시한다. 구약의 구속사를 배경으로 하는 신약의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는 성경의 통일성에 해당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메시지들이 있고, 이것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교파들의 다양한 전통들이 있으니, 우리는 성경과 전통들 차원에서 통일성과 다양성을 찾아서, 교파들과 교파들의 신학들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대로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이룸으로써, 역사와 창조세계를 하나님께 화해케 하는 과제(골 1:20절과 엡 1:10)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성경에 나타난 에큐메니즘은 아래에서 기술할 ‘신앙과 직제’, ‘삶과 봉사’, 그리고 ‘복음전도와 세계선교’의 성경적 근거이다.

 

4.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인류와 창조세계를 자신에게 화해시키셨으니, 이와 같은 화해의 복음사건 자체가 에큐메니칼 하다. 그리고 요한복음 17:21절에서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간과 창조세계를 자신과의 영원한 코이노니아에 초대하심 역시 에큐메니칼 하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이 지향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성격 역시 에큐메니칼 하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역사적 필연성에서 생기기 전에 성경 메시지 그 자체 내에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은 또한 역사적인 필연성에서 생긴 것도 사실(史實)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교회 시대에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교구가 에큐메니칼 공의회들을 통하여 이단들에 대처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단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지중해 세계의 보편교회가 분열될 위기들에 직면했을 때, 공의회들의 교리결정들이 그것을 해결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정통 삼위일체론과 정통 기독론 같은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운동의 좀 더 근대적인 기원은 19세기 복음주의 각성운동에 힘입은 세계 복음전도에 있었다. 즉,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여러 교파들은 상호 간의 협조를 필요로 하였고, 교파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라투렛(Scott Latourette) 교회사 교수는 1817-1914년까지의 유럽과 북미의 역사를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 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19세기에 개신교의 복음 선교가 절정에 도달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시기에 선교의 현장에서 교파들의 협력이 요청되었고, 교파를 초월하는 ‘복음’ 전파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1910년 세계선교 대회(WMC)의 폐막식에서 필리핀의 선교사로서 미국의 성공회 주교인 브렌트가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운동을 제안하여, 이 운동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신앙과 직제’ 운동이 등장하였고,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 직전에 스웨덴의 루터교 주교인 죄더불럼이 “평화에의 호소문”을 전쟁 당사국들의 교회를 포함하는 세계 교회에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삶과 봉사’(Life and Work) 운동이 출범하였다. 그리고 1910년 ‘세계선교 대회(WMC)’가 1921년엔 ‘국제선교 협의회’(IMC)로, 그리고 1960년대에는 WCC에 가담하면서 ‘세계선교와 복음전도 위원회’(CWME)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리하여 ‘신앙과 직제’, ‘삶과 봉사’, 그리고 ‘세계 선교와 복음전도 운동’이 향후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을 결정하였다. 그런즉, 결국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된 흐름은 셋인데, 이는 요한복음 17:21(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을 믿게 하옵소서)과 골로새서 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과 에베소서 1: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 나오는 성경구절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1920년엔 동방정교회가 “국제연합”(The League of Nations)에 맞먹는 “교회들의 코이노니아”(koinonia ton ecclesion)를 제안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죄더불럼과 올드헴 역시 교회들의 연합체 구성을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에 스톡홀름에서 제1차 삶과 봉사 운동 세계대회가, 그리고 1927년에 로잔에서 제1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 두 대회의 대표들이 결국 1937년 케버트(McCrea Cavert)가 제안한 WCC(세계교회협의회)란 용어를 받아들여,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에서 WCC헌장이 작성되었다. 그 교리헌장(the Basis)은 성육신 교리와 칼세돈의 정통 그리스도론을 배경으로 하였고, 1961년 뉴델리 WCC 때에는 성공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첨부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코이노니아이다.

 

세계교회협의회란 성경을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일체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회의 공동 소명을 함께 성취하려고 하는 교회들의 코이노니아이다.

 

그런즉, 대체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상과 같이 3흐름에 의하여 결정된다. 2006년 포르트 알레그로에서 열린 제9차 WCC 총회가 새로 정립한 21세기 WCC의 프로그램 역시 이 3가지 흐름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알레그로는 6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1. WCC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 2. 일치, 선교, 복음전도, 그리고 영성, 3. 공공의 증거: 권력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평화를 주장하기, 4. 정의, 섬김, 그리고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 5. 교육과 에큐메니칼 형성, 6. 종교 간 대회와 협력이 그것이다. 이들 중, 1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망에 대한 것이고, 2와 3과 4는 우리가 논한 3흐름에 해당하며, 5는 이 세 흐름과는 별도로 발전한 전통으로서 전자는 에큐메니칼 신학교육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종교 간 대화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중에 ‘신앙과 직제’, ‘삶과 봉사’, 그리고 ‘세계선교와 전도’ 운동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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