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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빈]대북정책과 남북 민간교류, 함의(含意)와 과제

발표 : 고경빈(전 통일부 정책홍보실장)(2010년 2월 23일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주최 '제1차 한국기독교의 통일 준비 심포지엄'에서 발표)
자료출처 :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1. 대북정책과 남북 민간교류 환경의 변화

  지난 100년의 역사를 회고하면 지금처럼 국운이 상승하고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갈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춘 적이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남의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나라로 국운을 역전시킨 세계 유일의 사례라고 한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지금이 가장 호의적이다.

  남북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역전된 지도 오래다. 그것도 매우 극적이다. 분단이후 상당기간 동안 우리는 수세적 입장에 있었다. 북한은 위협(Threat) 그 자체였고, 군사정부 시절에는 정통성 경쟁에서도 북에 밀려 있었다. 북한은 무장공비를 침투시키고 지하당 구축을 위한 간첩 남파는 물론 심리전 차원의 평화공세로 남쪽을 흔들어 왔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 교류 주장을 우리는 늘 의심하고 피해왔었다.

  북한은 혁명기지로서 북한의 역량, 보조세력으로 남한 내 동조세력의 역량, 지원세력으로 국제 공산주의 우호역량의 소위 “3대 혁명역량”으로 남한을 적화시키기기 위해 합법과 비합법 투쟁을 병행한다고 스스로 천명하였다. 당연히 이에 대한 남쪽의 대응은 방어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국방과 안보의 강화에 주력하면서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사실상 대북정책의 내용은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만성적 경제난으로 국력이 피폐되고, 국제 공산주의 블록의 와해로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남한의 민주화이후 남한내 동조세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소위 “3대 혁명역량”은 소진되었다. 오히려 자기 주민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급급하면서 체제유지에 주력해야 하는 판이다. 외부의 지원은 필요한데 소위 자본주의 사조의 유입은 극도로 경계하고 단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 권력승계의 불안도 안고 있어 그야말로 정권수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놓여 있다.

  북한의 대남 적화역량의 약화로 한반도의 불안정이 가셔진 것은 아니다. 지금은 북한이 너무 취약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위험(Danger)이 되고 있다. 압도적인 국력 열세로 인한 군사적 불균형을 북한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로 대응하고 있으며 갈수록 벌어지는 국력격차는 한반도 불안정과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통일을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南이나 北이나)만 크게 할 뿐이다. 분단초기 수세적 입장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바쁘던 우리가 그저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국운상승의 기운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우리가 더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하며, 이에 따라 대북정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대북정책이 소극적 입장에서 적극적 입장으로 바뀐지는 오래되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이 분수령이 된다. 7.7선언의 기본취지는 남북이 서로를 경쟁이나 대결의 상대로 보지 않고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해 협조하며, 분단의 원인이었던 냉전체제의 극복을 위해 남한은 중국과 소련 및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북한이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게 협조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북한에 대해 선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며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맏형정책”을 추구한다. 이것은 후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이어지고 6공화국 대북정책의 기본 틀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이로부터 비로써 그동안 금지되었던 남북 민간교류가 본격화 될 수 있었고, 이제 2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 이전에는 우리 대북정책에서 민간교류의 허용공간은 사실상 없었고, 7.7선언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6.15 공동선언이후에는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변수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혹자는 북한에 민간이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남북 민간교류가 가능한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에 당국과 구별되는, 당국으로부터 자율적인 민간부문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따라서 남북 민간교류라는 개념은 남과 북의 민간부문간 교류로 해석하기 보다는 남한의 민간부분에 의한 남북교류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남한의 민간부문에 의한 교류는 당국부문과 구별되는 중요한 의의와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 민간교류는 당국차원과 달리 정부교체에 따른 정책변화나 국내정치적 정쟁 소지와 상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될 수 있다.

  둘째, 당국간 정치군사적 대립으로 인한 아포리아(Aporia)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운신함으로써, 당국대화의 복원이나 최악의 상황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셋째, 당국이 돌보기 어려운 다양한 틈새 분야에서 민족공동유산을 계승하거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사업들을 발굴할 수 있다. 북관대첩비를 일본으로부터 반환받는 일이나,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구하는 일 등은 민간에서 발의되어 당국이 개입한 좋은 사례이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역시 당국차원에서 추진되었다면 지금정도의 진전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넷째, 무엇보다 민간은 남북당국 외에 제3의 당사자로 주체적 역량과 영향력을 남북관계에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한의 민주화에 있어서 민간의 역량과 역할을 인정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사실 남측의 당국과 민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일정거리를 유지해 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시절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7.7선언 이후에도 상당기간 민간은 당국을 불신하고 소위 “자주교류”의 입장에서  마찰을 빚었다. “6.15 공동선언”이후에도 민관이 항상 의견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2. 남북 민간교류 추진을 위한 법률의 발전

  민간교류가 대북정책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확대과정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우리 법제의 변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국내법 장치 내지는 제도적 틀은 지난 60여년 분단사를 통해 크게 두 번의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상당기간 동안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유일한 법률은 “국가보안법”이 이었다. 이 법은 북한을 불법정권이자 반국가단체로 보고 북한의 다양한 적화통일 전술에 대한 자위적 수단으로 내국인의 북한과의 모든 거래와 접촉을 금지하였다.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많은 법이긴 하지만 여전히 현행법으로 존재한다.   

  그러다 “7.7선언”으로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전환되면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1990)이 제정된다. 국제적 냉전해체의 배경과 국력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소위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접근이 시작되었다. 이 법은 남북 왕래와 접촉, 교역, 협력사업 등 교류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다른 법률(국가보안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에 의해 승인된 행위라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의 적용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추구하는 法益이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북한은 비록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라는 지역적 개념이지만 우리 법체제안에 들어오게 된다. 합법적인 남북 거래와 접촉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 법 제정이전의 남북관계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일반적으로 금지된 상태에서 당국회담 등 정부의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왕래와 접촉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했었다. 결국 ”통치행위“가 아닌 한, 일반국민들의 남북왕래와 접촉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법이 제정된 이후 약 20년간 누계로 인원 270만명, 차량 70만대, 선박 5만척, 비행기 800대가 남북을 왕래하였고 남북교역 누계는 110억불에 이른다. 법시행 초기에는 연간 남북왕래가 불과 수십 명이었고 교역액도 1억불 미만이었다. 비록 분단되어 있으면서 여전히 제약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합법적인 생활공간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 측면에서 남북관계의 두 번째 도약은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2005)의 시행이다. “7.7선언”이후 민간교류의 지속적 확대, 즉 실물분야의 남북관계가 형성되는 상황, 특히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 법의 핵심사항은 북한과의 합의에 대하여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절차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친 남북합의서에 대해서는 법률의 효력, 즉 국민의 권리의무 사항을 규율하는 효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을 합법적 실체는 아니지만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당국간 정치적 합의가 국회 동의를 거쳐 국민 개개인에게 효력을 발하는 법규범화 하는 것이다.

  이 법은 그간 남북 민간교류가 단순 왕래나 교역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지속되는 협력사업으로 발전하면서 이에 관계하는 국민들의 법률관계도 국내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에서 제정 된 것이다. 이로써 남북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은 국민들은 이론적으로 우리 법정에서 남북합의서(국회의 동의를 받은 합의서)를 근거로 법적 권리를 호소하고 구제받을 수 있다. 정부가 보상이나 배상을 하게 된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북한당국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의 동의를 받아 국내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남북합의서는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남북해운합의서” 등 13건이 된다.

  민간 남북교류 추진을 위한 우리 정부의 법률 제도는 여기까지 왔다.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같은 남북합의서들은 비중이 큰 고위선에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국내법적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법적으로 서명 당사자들인 양측 당국을 구속할 뿐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법률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이고 신사협정이라 하더라도 당국간 서로에 대한 구속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중요한 법규로 “정전협정”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이 협정을 국내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북한 주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 법규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당초 정전협정 체결후 3개월 이내에 정치협상을 통하여 보다 안정적인 체제(평화협정)가 마련될 것으로 예견되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비록 우리가 서명하지 않았고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은 협정이지만 (오히려 당시 국회는 “정전반대와 북진통일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분명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당사자입니다. 따라서 보다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함에 있어 주된 당사자로서 이처럼 중요한 남북관계의 규범을 명과 실이 부합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남북간에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고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된다.

  평화를 유지(Keeping)하고 만드는(Making) 일은 협정만으로 되지 않을 것이다.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 개막식에서 쿠베르탕(Pierre de Coubertin)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 문화교류 등이 조약이나 협정보다 평화유지에 더 공헌하였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도 조약이나 협정보다는 남북간 보다 많은 분야에서의 보다 많은 접촉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향후 민간교류의 과제를 통일의 실천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다시금 조명해보고자 한다.


3. 통일을 준비하는 남북 민간교류의 과제

  과거 유신체제(維新體制)나 5공시절처럼 당국과 민간 사이에 기본적인 모순관계가 있지 않는 한, 당국관계와 민간교류는 상보적(相補的)인 기능을 하면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데 힘이 될 수 있다. 당국대화가 중단된 상황에도 민간교류는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이어주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로써 남북관계 발전을 실물분야에서 받쳐 주는 것이며 적대 쌍방 간의 관계개선에 있어서 그 의의를 과소평가 할 수 없다.

  과거 적대국이었던 중국과 우리가 수교이후 20년 동안 선린관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적 기교가 아니라 한중간 민간교류의 실물적 토대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교역량은 한미, 한일간 교역량을 합한 것보다 많고 한중간 인적교류는 한미간 교류의 5배가 넘는다.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이러한 실물분야의 토대는 상호 친선관계를 추동하는 든든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이러한 실물분야의 토대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정부가 당초 “7.7선언”을 통해 남북교류협력의 문호를 일방적으로 개방한 것은 남북한의 공존과 평화통일을 위해 풀뿌리 차원에서의 교류협력으로 상호 적대감을 완화하고 “접촉을 통한 변화”(Change Through Rapprochement)를 추구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그동안의 민간교류를 통해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례와 동시에 아직은 북한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례들도 있어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감은 상당히 완화되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탈북자들이 매년 3천명 이상 남측에 귀순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물론 남북교류를 통해 북한의 체제가 이완될 것을 북한 당국은 무척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남북교류를 통해 북한도 이익을 얻는 것이 있어야 상호교류가 지속가능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통일에 대한 남측의 부담감이나 북측의 불안감이 계속되면서 서로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통일을 실천적으로 준비한다는 차원에서는 매우 위험한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당대 세대(南北 모두)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이라는 것이 대개의 견해다. 인내를 가지고 접촉(Rapprochement)을 지속하는 것이 최선의 옵션이다. 평화통일을 향한 상호 구심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민간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것이 그 첫 번째 과제이다.

  둘째, 그동안 민간교류의 상호 접점을 찾기 위해 민족동질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앞으로는 남북간 서로 달라진 점들에 대한 관심과 남북교류를 통해 이를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민간교류가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북한의 수세적 우려를 감안해서도 유용하지만 통일을 위한 남측의 실천적 준비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동질성 확인을 통해 통일로 가는 것 보다 다양성 인정을 통해 통일로 가는 전략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에도 부합한다.

  지난 60년간 남북의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 언어조차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 많다. 언어는 사회적 습관이며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용어의 내연과 외포가 변해가는 움직이는 생물이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가 남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5년은 걸린다고 한다. 단순한 사투리 문제가 아니라 분단으로 이질화된 문화의 현실이다. 그 동안 남북이 각기 걸어 온 길을 무시하고 분단 이전의 동질적 사회문화로 돌아가자는 것은 비현실적 생각이다. 세계의 최첨단 문화조류를 적극 수용해 온 남한의 사회가 더 먼 이질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동질성 회복의 길은 이질화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뜻일 것이다.  

  남북간 냉전이 치열했던 시기에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문화도 접할 수 없었다. 노태우 정부의 맏형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이어지면서 대중매체에서도 북한의 인민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 함의가 큰 작품을 남한에 소개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남한 문화를 북한에 소개하는 것은 더더욱 통제가 심해서 단속을 피해 남한 드라마나 가요가 유포되고 있다. 이런 제약들도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현실의 일부이다.

  그동안 남북이 민간교류를 통해 상당히 가까워졌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할 때, 서울과 비슷한 동경이나 북경의 고층빌딩이나 자동차 물결의 풍경을 보는 것로 만족하지 않고 일본적인 것이나 중국풍 문물을 접하고자하는 것처럼, 가장 남한 적인 것과 가장 북한적인 것이 소통해야 한다. ‘공산주의 정치선전’이라든지 ‘자본주의 퇴폐사조’로 서로 금기한 각각의 문화는 사실 상대방에게는 일상문화의 일부이며 서로 달라진 모습을 이해하는데 언젠가는 반드시 있는 그대로 알려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상호 신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서두를 일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꾸준히 시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일본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말의 일이다. 우리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성숙한 것이 배경이지만, 1980년대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일본문화 규제를 계속할 수 없게 된 사정도 있었다. 북한문화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 적성국이었고 현재도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이 우호선린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앞서 언급대로 민간교류의 힘이라고 본다.  우리는 중국의 공산당 문화를 중국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중국과 북한은 그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한중간 문화관습의 차이보다 남북간 문화관습의 차이는 훨씬 작다. 북한과 문화적 유대를 맺는데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남북이 서로 달리 살아 온 과거 60년을 인정 않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북정책이나 민간남북교류의 환경은 80년대 후반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북은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었고 우리는 수세에서 공세로 바뀌었다. 남북 민간교류에 우리는 보다 적극성을 띌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이 갖추어진 마당에 이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자각과 공감대가 마련되길 바란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대북정책을 넘어서 민족 전체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세와 시각으로 민간교류협력이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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