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윗의 회개(삼하 12: 13-15; 시 51:1-19)
발표 : 왕대일 교수(감신대, 구약학)(2010년 2월 12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I.
제게 주어진 주제는 다윗의 회개입니다. 다윗의 회개는 크게 둘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의 질책을 받고 나서 회개하였던 사건이고(삼하 13), 다른 하나는 다윗이 인구조사/병적조사를 벌인 일로 마음에 크게 자책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한 일입니다(삼하 24:10). 이 두 사건 가운데서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를 오늘 아침에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11장에 수록된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친숙합니다. 이 이야기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던 시대가 언제인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때는 온 나라가 전쟁할 때였습니다. 암몬 자손을 멸하고자 암몬 사람의 도성 랍바를 포위한 채 전쟁할 때였습니다(삼하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삼하 11:1).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왕들은 정례적으로 캠페인(campaign)을 벌렸습니다. 당시 캠페인은 왕의 책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국가적 부(富)를 확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동원되어 암몬 자손의 도성 랍바를 함락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다윗은 홀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였는데, 다윗이 저녁 때에(!)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시켜 그 여인을 불러다가 동침하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사무엘하 12:13-14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II.
사무엘하서 11장은 온통 다윗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 긴 묘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 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6-27).
사무엘하 12장은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에 이어 소개되는 나단의 책망입니다(삼하 12:1-12). 그 책망을 듣자마자 다윗이 소리친 말이 바로 사무엘하 12:13입니다. 우리말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a)
그러나 이 구절을 제대로 읽으려면, 아무래도 사무엘하 12:13을 이끄는 히브리어 접속사를 살려내야 합니다. 즉,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이거나 아니면,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정도로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무엘하 12:13은 다윗이 자기 과오를 질책하는 나단의 꾸짖음을 듣자마자 바로 다윗이 회개하였다는 소리입니다.
다윗이 언제 회개하였습니까?
나단의 질책이 끝나자마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즉시 대꾸하였습니다. 나단의 고발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단의 질책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면서 자기 공적을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이룬 치적을 고려해달라고 사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즉각 회개하였습니까?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다윗이 나단에게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기까지 대략 아홉 달이 걸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새바와 동침한 뒤 얼마가지 않아 밧새바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삼하 11:5). 그러자 다윗은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를 최전선으로 내보내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만듭니다. 밧세바는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남편의 장례를 치룹니다. 그 장례가 끝나자 다윗이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삼하 11:27).
여인이 임신한 것을 알기까지 대략 한 달 걸립니다.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대략 열 달 걸립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선지자 나단이 자기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엄한 말씀을 전하게 되었던 때까지, 대략 아홉 달 동안 밧세바와 저지른 일을 숨기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아홉 달 동안 다윗은 범죄자로 숨어(!)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완전 범죄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까요?
이 기간 동안 다윗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는 창문이 시편 51편입니다. 시편 51편에는 “다윗의 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시편 51편을 사무엘하 12장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회개와 연관시켜 읽었습니다. 그 시편 51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다윗이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는 말은 달리 번역하면 내 죄가 항상 나를 고발하고 있습니다가 됩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밧세바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니 선지자 나단이 그 일로 자기를 찾아와 꾸짖을 때까지, 무려 아홉 달 동안 죄의식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나단의 질책 앞에서 바로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하는 다윗의 뉘우침은 내 죄가 아홉 달 동안 나를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라는 소리가 됩니다.
다윗이 범죄자로 숨어 지내는 기간 동안 랍바 성을 점령하려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일이 떳떳하게 풀려지지를 않습니다. 다윗 당시의 시대적 과제가 암몬 자손의 도성 랍바를 정복하는 일이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다윗이 죄인으로 머물러 있던 아홉 달 동안에는 이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죄의 용서를 받고 나서야 다윗의 군사들이 비로소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점령하게 됩니다(삼하 12:26).
III.
다윗이 무엇을 회개하였습니까?
저가 은밀히 저질렀던 일을 회개하였습니다. 저가 합법적으로 위장하여 저질렀던 범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신명기법은 남자가 남편이 있는 여자와 동침하면 둘 다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신 22:22). 다윗은 그 법망을 피해가고자 여자(밧세바)의 남편(우리아)을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하 12:13-15가 있기까지에는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전한 고발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2:1-4는 일종의 비유입니다.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입니다. 양과 소가 심히 많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그 사람을 접대하고자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다가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윗이 노합니다. 이런 일을 저지른 자는 마땅히 죽을 지니라(삼하 12:5-6). 그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왕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은혜를 다 받았는데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킬 것입니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습니다(삼하 12:7-12).
서양 사람들은 대화 할 때 세 가지를 금기시 합니다. 하나는 정치 이야기입니다. 둘은 종교 이야기입니다. 셋은 사생활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가급적 서로 나누는 대화의 소재로 삼기를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지적하신 것은 바로 그 은밀한 사생활이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7-10).
다윗 시대 당시 사람들은 정결례라는 것을 행했습니다. 부정한 데서 나음 받고 정한 자리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례를 가졌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물로 몸을 씻는 의식입니다. 다윗은 겉모습만 씻어서는 안 된다고 파악했습니다. 겉만 정결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백합니다. 뼈도, 마음도, 영도 새로워지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의 영이 정직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퇴원시키는 여부를 놓고 다음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방에 있는 수도꼭지에 물을 조금 틀어놓고 방바닥에 괴여 있는 물을 대걸레로 훔치게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먼저 수도꼭지를 닫은 다음에 방바닥의 물을 훔쳐내지만,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냥 대걸레 하루 종일 방바닥의 물을 훔쳐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려면 문제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 그것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악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밧세바와 정을 통한 다윗의 실수는 그 마음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소리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IV.
다윗이 어떻게 회개하였습니까?
다윗은 선지자 나단이 자기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단이 찾아와서 당신이 바로 죄인입니다, 고발하였을 때에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 나단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서 당신은 왕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정직하게 지적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이력서를 보십시오. 그는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8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전임자이었던 사울에 비하면 다윗의 용모는 작고 초라했습니다. 한 때 사울 왕에게 쫓겨 외국에 나가 살아야 했던 나그네살이도 서럽게 하였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유다 지파의 지도자가 되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잘나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능력으로 자기가 한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고 자만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의 왕좌까지 올랐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사무엘하 12:7-9를 보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잘 나서 지도자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에게 지도자가 되도록 이스라엘과 유다족속을 맡겨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자기 신하의 아내를 자기 힘과 모략으로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악한 일을 통해 하나님을 업신여겼다고 나단이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나단의 말에 다윗은 자기 왕관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 위신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 체면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회개합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1-12, 17).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신, 자기 체면, 자기 이력을 내려놓을 때에 진정 삶의 내용이 달라지고 삶의 목표가 새로워집니다. 다윗의 회개에 하나님이 용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무엘하 12:13-15입니다. 회개는 용서로 가는 마중물입니다. 회개는 구원으로 가는 마중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