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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실패할 수 있는 용기

권두언(기장총회회보 2009.4월호, 10-12쪽)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키브 <바로가기 클릭>

....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군중도 떠나고 제자 가룟 유다마저 예수를 떠났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제자들도 머지않아 떠나고 말 것이다. 예수는 단 한사람의 진정한 제자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베드로마저도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떠나고 말 것이다.

그렇게 예수는 철저히 실패하였다. 하나님 외에는 그의 심정을 헤아릴 어떤 존재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듯 그는 하나님께 간청 한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 기도는 깊은 고뇌에서 솟구쳐 오른 절박한 절규이다. 그것은 진실한 신앙 위에서 드려지는 간청이다. 그러나 그것을 참된 신앙인의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간구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 ‘그러나’는 예수의 간구를 일반 종교적인 기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로 바꾸어 놓는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드리는 기도는 앞부분의 간청에 머물고 만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예수도 자신의 실패, 자신이 겪어야 할 수치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렸다는 점에서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 간청이 인간의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유혹을 극복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아버지의 뜻’에 맡긴다. 여기에서 예수는 ‘네 번째 시험’을 극복하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우리는 모두 성공을 추구한다. 축복받는 삶의 징표를 보이면서 살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하여 하나님마저 이용하려 한다.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것처럼 포장하고 간청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이용할 틈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전존재를 비운다.

십자가는 타협 없는, 하나님의 나라 혁명을 이루기 위한 투쟁의 결과였다. 십자가 처형은 철저히 정치적 사건이었으며, 로마제국과 그 제국에 기생하는 식민지 종교세력의 자기과시적인 과잉대응의 결과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태 27:46)” - 이것은 틀림없이 실패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이다. 그러나 이 절규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외쳐지고 있다.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도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이 비명을 지를 수 있다. 예수는 그의 실패에도 침묵하시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침묵하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분께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뜻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시킨다. 인간의 실패까지도 선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철저히 실패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승리하시도록 길을 예비하였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 보여준 역설이며 신비이다.

지배세력은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널리 홍보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3일’ 아침에, 처형된 사형수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준 것이다. 부활의 아침에, 바로 패배의 상징인 십자가에 이른 길이 실제로는 참된 승리의 길이었음이 확증된 것이다. 실패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지배자들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승리와 함께,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가 모방하여야 하는 절대적인 표본이 된 것이다.

패배자 예수는 기존의 지배질서와 경제질서 안에서 성공만을 추구하는 ‘영리한’ 우리에게 참된 삶의 길을 보여주시는 ‘바보 같은’ 메시아가 되었다. 우리는 ‘이’ 메시아를 증언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메시아를 따른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실행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것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믿음’은 부활의 영광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행진에 참여하는 것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서로 상충한다면, 인간은 실패하고 하나님이 승리하여야 한다! 인간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께서 패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실패할 수 있는 용기이다. 우리는 다만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도록 헌신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윤응진 목사(한신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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