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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얍복강의 밤과 브니엘의 아침

 

제목 : 얍복강의 밤과 브니엘의 아침
발표 : 김성영(한복협중앙위원 / 전 성결대 총장)(2010년 1월 8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얍복강의 밤과 브니엘의 아침

-칼빈이 통찰한 야곱의 밤과 아침-

 

김성영(한복협중앙위원/

전 성결대 총장)

 

 

1. 서 언 : 그리스도의 얼굴, 브니엘의 아침을 위하여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경험하듯이, 하루 중에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희망을 안고 기도하는 시간은 새벽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 년 중에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희망을 안고 기도하는 시간은 새해 아침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도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새해 아침을 연상하게 하고 새로운 소망의 영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기도의 사건은, 발표자의 관점으로 창세기 32장 22~31절에 기록되어 있는 ‘야곱이 맞이한 얍복강가의 밤기도와 브니엘의 아침(새벽)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다사다난했던 2009년을 보내고 소망의 2010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들도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한 야곱(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발표자는 이 주제를, 특히 교회개혁자이자 깊은 영성의 주석가인 존 칼빈 선생의 통찰에 힘입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같은 맥락에서 본문을 이해한 한국 주석가인 영암 김응조 목사의 설명을 부언합니다.

 

2. 본 언 : 야곱이 맞이한 브니엘의 아침

 

주지하듯이, 브누엘(Penuel)이라고도 표기하는 브니엘(לּ󰔞י󰖀󰘰 Peniel)은 얍복강 위쪽에 있는 숙곳 동편에 위치한 도시로,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던 야곱이 이곳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한 곳입니다. 이 지명의 원어 상 의미는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로 출생한(창25:21~26)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가로채고(25:29~34),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사서 하란으로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긴 세월 봉사하고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과 결혼, 두 아내와 그녀들의 여종인 실바와 빌하 사이에서 열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게 됩니다(창29장~31장). 이삭은 그곳에서 많은 재물의 축복을 받아 라반으로부터 도망쳐 귀환길에 오릅니다.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본문은 귀환길의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에 앞서 얍복강 나루에서 밤을 새며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32:24~31)”

 

1) 브니엘의 아침이 오기 전에 야곱에게는 얍복강의 밤이 있었습니다.(32:22~30)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흔히 야곱이라는 한 인간형이 보여주는 그의 행적과, 그의 이름이 시사하는 집요한 의미 등으로 그의 귀환의 밤의 정황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석 또한 대체로 인간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야곱이 형을 만나기 전에 사자를 먼저 에서에게 보내어 그의 의중과 분위기를 파악한 것이나(32:3~5), 사자들이 돌아와 형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당신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전갈에 자신의 재물(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 등)을 두 떼로 나누어 에서가 와서 한 Ep를 치면 다른 한 떼는 피하도록 방책을 간구하는 모습이나(7,8), 형이 두려워 하나님께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9~12) 등을 보면 얼마나 인간적으로 치밀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바로 형에게 가지 않고 자신은 멀리서 밤을 지새면서 종들을 통하여 형에게 예물(암소 2백, 수염소 2십, 암양 2백, 수양 2십, 젖 나는 약대와 그 새끼 3십, 암소 4십, 황소 1십, 암나귀 2십, 그 새끼 나귀 1십)을 먼저 보내면서 “이것은 동생 야곱이 형 에서에게 드리는 예물이며 우리 뒤에 야곱이 오고 있다”라고 말씀드리도록 했는데(13~18), 그것도 둘째 떼와 셋째 떼도 그렇게 만들어서 그것을 따라가는 종들로 하여금 형 에서에게 동일하게 말씀을 드리도록(19,20) 치밀하게 각본을 짜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야곱이 얼마나 지혜롭고 교활한 인간형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20)

 

그러나, 본문의 전말을 통해, 야곱의 기도는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9~12)에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의 해결을 위한 높은 단계의 기도(24~29)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브니엘의 아침을 만나기에 앞서 얍복강 나루에서의 밤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야곱은 예물과 함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그 의 소유와 함께 강을 건너게 한 다음, 그 밤에 홀로 얍복강 나루에 남아 본문이 보여주듯이 처절한 기도의 사투를 벌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결사의 기도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존 칼빈 선생의 견해는 보다 깊은 데가 있습니다. 특히 홀로 남아 기도하는 야곱에 주목하여 칼빈은 “앞서 간 종들이 (에서로부터) 화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야곱 혼자 달아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기에 알맞은 한적한 곳을 택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본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석가인 영암 김응조 목사도 같은 견해로, “야곱은 기도를 방해하는 처자식을 먼저 도강하게 한 후 온전히 기도에 몰입하기 위해 홀로 남았다”고 묘사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극도의 위기를 두려워 한 나머지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간구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신자들은 누구나 본문의 야곱과 같은 두려움과 위기를 맞이한다고 전제하면서, 중요한 것은 야곱이 단순히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이 ‘위기’를 계기로 첫째는 여호와께 전폭적으로 의지하게 되었으며, 둘째로 어떤 구조(구원)의 방법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그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세째로 기도로 무장하여 여호와께서 명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용감하게 나아가고자 결단하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역시 영암은 함축적으로 “이러한 야곱의 기도는 생명을 건 결사(決死)의 기도”라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즉,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야곱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얍복강 나루에서의 그 밤의 기도를 형과의 무사한 해후(邂逅)를 위한 현실적인 기도로 봐서는 야곱의 기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에서 모티브 때문에 강나루에 무릎을 꾼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청춘을 다 허비하고 천신만고 끝에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 밤의 기도는 결코 위기모면용의 유치한 기도가 아니라 귀환 이후의 새 역사를 위한 ‘구속사적인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그 밤에 하나님을 놓지 않고 사생결단 간구한 ’축복‘에서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야곱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 밤에 야곱은 칼빈의 통찰처럼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앞에 놓고 기도했음이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응답은 “오냐,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마”가 아니라 “오냐, 너의 옛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마”였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야곱(ב󰙑󰘥󰖸 Jacob)은 ’발굼치를 잡았다‘는 의미를 내포한 이름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는 이름인 반면, ’이스라엘(ל󰔞󰙜󰙺󰖹 Israel)‘은 원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라는 뜻으로 본문의 사건에서 유래하나,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소서’ 등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습니다. 얍복강의 기도를 통해, 출생 시부터 형의 발굼치를 잡고 나올 만큼 집요한 한 인간이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만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전적인 지배 아래 놓인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구속사적인 응답을 받아낸 기도였던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칼빈이 이 본문을 주석함에 있어, 이처럼 구속사적인 기도에 목숨을 건 야곱에게 ’성자(聖者) 야곱‘, ’거룩한 인물(the holy man)‘이라는 표현(이 본문 이전에는 쓰지 않은 칭호)를 쓰고 있는데 이러한 의도는 야곱의 믿음이 ’높은 성화(온전한 성화)‘에 이르렀음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말하자면 현실의 문제해결에 급급한 초보적인 구원(중생)의 믿음의 상태인 ’야곱‘이 이스라엘을 구하고 인류의 장래를 위하는 온전한 구원(성화)의 믿음에 이른 ’성 야곱‘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가 이스라엘의 기도가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밤 기도는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새해를 맞이하기까지 우리의 지난 밤(지난 해의 마지막 밤) 기도의 내용과 그 차원은 어떠했습니까??

고백하건대, 발표자의 지난 해 마지막 밤기도는 야곱의 밤기도와 같은 차원의 기도에는 소홀했으며, 내 자신이 희망하는 일을 새해에는 이루어 달라는 작은 스케일의 기도, 이기적인 기도에 더 치중했었습니다. 종의 사명과, 교회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기도가 더 절실하건만. 주님, 용서하소서.

우리는 얍복강 나루에서 성 야곱이 보여준 밤기도의 자세로 새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믿음의 격투장에 내려오신 하나님

유치한 문제 제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나님이 친히 인간과 겨룰 수 있으며, 인간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가 있었단 말이냐 하는 문제는 주석가들 사이에, 그리고 이 말씀에 초대 받는 신자들 사이에 여전히 논의가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특히 칼빈은 명쾌한 영해(靈解, Spiritual Interpretation)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이 사건은, 야곱의 앞날에 수많은 투쟁이 그를 기다린다는 것을 미리 그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야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투쟁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공통된 것으로 신앙의 싸움은 그들 앞에 항상 가로놓여 있으며 신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정복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이 사건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들은 ‘씨름하는 자’들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갖가지 종류의 투쟁으로 그들을 연단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치 아니하시나(약1:13),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는 시험하신다(창22:1;히11:17;신13:3;고후13:5)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친히 격투장에 내려 오신다”고 본문의 정황을 감동적이고도 충격적으로 해설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불합리한 것 같지만 우리는 신앙의 경험과 영적 깨달음으로 이것을 알 수 있다면서, “인간의 모든 번영(축복)이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오듯이 역경과 시련도 우리의 죄를 징계하시는 채찍이거나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시험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와(자기 백성과) 맞잡고 싸우러 오시는 것은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야곱에게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났던 이 사건은 지금도 교회의 가족들에게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다“고 우리를 경성시킵니다.

 

인간(신자)에게 져주시는 하나님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에 대해서 칼빈은, 믿음의 투쟁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위해) 도전하시며 이 싸움에 나오도록 촉구하시지만 동시에 겨룰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항해서 싸우는 동시에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것이다(He both fights against us and for us).” 하나님은 한 손으로는 우리를 공격하시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를 방어해 주신다고 주석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싸우실 때 사용하시는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주님은 좌측 손으로 우리를 상대하시고 우측 손으로는 우리를 도우신다(He fights against us with His left hand and for us with His right hand).” 그분은 가볍게 우리를 상대하시는 반면에 무적의 힘을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그 힘으로 우리가 승리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니이다(출15:6)“ 야곱의 승리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로 가능한 것이라는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자를 위해 져주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고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발표자는 이 대목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씨름할 때, 저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쓰고 아버지는 내가 다치지 않을 만큼 힘을 쓰시다가 나를 위해 쓰러지면서 ‘아이쿠, 내가 성영이한테 졌다!“고 너스레를 보이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이 야곱의 하나님이 또한 나의 하나님이라는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승리처럼 하나님은 우리가(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제나 승리하기를 원하신다고 칼빈은 눈물 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아(自我)의 환도뼈가 꺾어진 그 밤의 기도

야곱은 승리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환도뼈(대퇴부)를 쳐서 위골되게 하셨는데, 칼빈은 그 밤의 승리의 표적을 평생 따라다니게 계획하셨다고 지적합니다. 더욱이 이 표적은 모든 신자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는데, 그것은, 신자는 믿음의 투쟁에서 상처와 피해를 입어야만 그 시험에서 승리자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힘은 우리의 약한 데서 강하게 역사하신다(고후12:9,10)는 교훈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자신의 힘이 완전히 남아있다면(위골되지 않는다면) 육체는 다시 거만해져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다는 것을 망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해지면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은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의 자아가 부정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다는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역시 영암은 “야곱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자아를 꺾으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2) 얍복강의 밤이 가고 ‘하나님의 얼굴’, 브니엘의 아침이 밝았습니다.(32:32)

 

우리가 더욱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야곱의 밤기도는 새벽기도로, 그리고 아침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네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칼빈은, 야곱이 그 기도의 격투장을 브니엘이라 한 것(‘하나님과 대면’한 것,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과 그곳에서 맞이한 아침을 묵시적으로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야곱의 이러한 비전은 야곱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볼 수 있는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야곱이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0)”고 크게 놀란 것처럼,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으나 “하나님의 산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거울로 우리의 목전에 명백히 비취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가 (브니엘의 아침처럼) 밝은 태양 아래서 영광의 주님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눈을 밝히 뜨자”고 영성 깊은 주석을 가하고 있습니다.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한 야곱처럼 우리도 새해 아침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정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소망이요 교회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발표자는 이 아침에 다음과 같은 새해 소망의 기도를 드립니다.

 

3, 결 언 : 우리의 새해 소망의 기도

 

“오,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곳에 모인 주님의 자녀들이 야곱과 같은 기도의 성전(聖戰)으로 지난 밤(지난 해)를 보냈다면, 야곱이 맞이한 브니엘의 아침을 저희에게도 허락하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동터 오른 저 찬란한 태양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비취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그 영광을 위하여 이 한 해를 살아가게 하소서. 이 한 해, 한국교회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야곱의 기도에서 이스라엘의 기도로 성화(聖化)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하나’, ‘내 교회’에 집착하는 기도의 지경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위하여 크게 넓혀 주소서. 그것이 가장 가까이서 구원을 기다리는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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