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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새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제목 /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글 / 이재천(기장신학연구소 소장)
출처 / 기장신학연구소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전 1:9). 인간사의 근본 속성을 꿰뚫는 지혜자의 깨달음이다. 모름지기 사람이 하는 일이란 따져보면 이미 있었던 일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복음은 ‘새 것이 없다’는 역사의 지평에서 ‘새 것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경험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골 3장)고 고백한다. 부활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게 한다. 이전의 모습을 벗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새 것이 되고자 하는 희망의 싹이 트게 한다.

1. 과거와 현재

기장 교단의 역사적 발자취는 새로운 내일을 실현하려는 의지로 일관되어 왔다. 흔히 역사적으로 드러난 ‘기장다움’의 모습을 어둠의 장막을 뚫어 생명의 빛을 비추이게 하려는 화살촉의 몸짓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 속에서 ‘기장다운 몸짓’에 내재되어 있던 그림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사물의 운동 원리로 환원시켜 살펴보면, 기장이 처한 현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드러난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물체는 그 속도에 비례하는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물체의 이동 거리는 운동력에 비례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저항력보다 더 큰 운동력이 필요하다. 운동하는 물체가 저항을 극복하려면 표면 면적과 무게를 줄이거나, 더 큰 운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2. 부활 정신: 몸의 문제

과거에 대한 회고는 미래의 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지난 세월동안 부활신앙이 역사적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모판이 되었던 것처럼, 기장을 새롭게 변화시킬 힘 또한 부활신앙에 있다. 부활이 내일을 향한 희망의 근거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몸짓이 아니라 몸의 문제, 즉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과 주체에 대한 깨달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장단에 맞추어 힘들게 흔들던 몸짓을 잠시 쉬고, 숨을 고르며, 지치고 상처 난 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3:20). ‘내 안에 살아계신, 몸짓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 내 몸을 주관하는 ‘본래적인 몸’을 회복해야 하겠다. 몸에 기운이 살아나야 바람을 일으키는 힘찬 몸짓도 할 수 있다.

3. 부활의 현장: 희망이 싹트는 자리

에른스트 트뢸치의 분석틀을 사용하자면, 기장은 구조적으로는 교단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종파적인 성향을 띠는 종교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파적 성향의 집단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으며, 탁월한 개인(카리스마적 지도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하나의 지향점을 향한 결집에 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트뢸치에 의하면, 종파적 집단은 역사적으로 점차 교단적 집단으로 이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집단이 내부적인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멸하고 만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간 집단의 내적 갈등은 필연적 현상이다. 그런데 종파적 집단의 경우, 내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된 요인이 집단적인 목표의 상실에서 기인한다.

에밀 뒤르케임이 발전시킨 ‘아노미(anomie) 현상’이란 사회학적 개념이 있다.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이 동요하거나 붕괴됨으로써 발생하는 혼돈상태, 사회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가 규제되지 않는 상태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는 사회집단이 내적 갈등으로 인한 쇠퇴를 겪게 됨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회집단의 내적 갈등의 주된 원인이 공동의 과제, 지향해야 할 목적의식 상실에서 유래함이 밝혀졌다면, 그 집단이 갈등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안 또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부활신앙은 갈릴리에서 자라난 신앙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부활의 희망을 간절히 품고 있는 갈릴리는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목회현장에서 묻고, 찾아질 수 있다. 교회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생명 공동체이다. ‘생명력이 가득한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루어 내느냐, 병들어 시들고 마느냐’ 하는 긴박한 긴장감이 일상화된 일종의 전쟁터이다. 돌아보면 곳곳의 목회 현장으로부터 살아나려는 생명의 몸부림이 요동치고 있다. 기장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동의 비전이 이미 우리 안에 힘차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부활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목회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미세한 아우성에 귀 기울이게 한다.

4.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프러시아 출신 무관 카알 폰 클라우제비쯔의 『전쟁론 (Vom Kriege)』(1832)이 유명한 것은, 그가 당대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쟁 개념, 즉 국민전체의 역량이 집약된 결과물로서의 전쟁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자체가 전쟁의 목적일 수 없으며, 모든 전쟁의 목적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전쟁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회 집단 내의 총체적인 역량의 결집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각론에서 그는 전선 지휘관들의 상황 대처능력뿐만 아니라 전투지원체계의 중요성을, 전선에서의 전투행위뿐만 아니라 정보의 수집과 판단능력의 중요성을 함께 논한다.

기장의 목회 현실은 한 마디로 각개약진의 현국을 보이고 있다. 일전 목회자들은 저마다 힘들여 개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지원체계와의 연락망은 원활하게 가동되지 않고 있다. 전문적인 인력들이 보조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대응기구도 빈곤하다. 그러나 동시에 목회 현장으로부터 이러한 상황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는 희망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부활신앙이 있기에 목회전선의 생명력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빌 2:16) 교회의 터 위에서 우리를 향한 부활하신 주님의 메시지를 듣는다.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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