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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연경]왕대일의 글 “성서로 본 문화, 성경의 눈으로 읽는 문화 - 구약을 중심으로” 에 대한 논찬

왕대일의 글 “성서로 본 문화, 성경의 눈으로 읽는 문화 - 구약을 중심으로” 에 대한 논찬(2009.10.16-17 한국기독교학회 제 38차 정기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에 대한 논찬)


-권 연 경 (안양대학교, 신약학)-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성서는 믿어야 할 교리 혹은 신학 사상을 추출하기 위한 원재료, 혹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한 계시의 원천으로 인식되어 왔다. 물론 이것이 교회의 정경으로서 성서가 가진 주요한 기능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계시로서의 성서에 대한 신념이 때로 인간적 문서로서의 성서를 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성서를 그 기록들이 배태되어 나온 포괄적인 문화의 그물 속에서 읽어가려는 시도, 또한 거기서부터 오늘의 “문화”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함의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성서의 계시적 차원을 상대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성서가 신적 계시로서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를 의식하며 성서를 보는, 혹은 역으로 성서의 관점에서 문화를 생각하려는 왕대일 박사의 시도는 문화, 곧 실질적 삶의 문맥에서 성서의 의미를 생각하려는 신학적 노력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귀한 땀흘림이라 할 수 있다.


  문화라는 틀을 설정하며 전개되는 왕대일 박사의 논문은 여러 가지 인상적인 관찰과 통찰에 의해 뒷받침된다. 창세기의 문화명령이 “정복” 아닌 “경작”과 돌봄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경작(colere) 개념에서부터 도출된 문화(cultura)와 연결함으로써 성서적 관점의 문화 개념을 제시하는 움직임은 매우 신선하다. 또한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성서에 관해 논하면서, 성서의 텍스트가 그저 정보를 “나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읽고 듣는 것을 “대담하게 심화시키도록” 돕는 것임을 지적하고, 이런 성서적 소통 개념을 바탕으로 이를 전달자 아닌 중재자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개념과 연결하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역으로 이런 중재적 소통 개념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소통과 중재의 기능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성서해석학을 향해 기존의 폐쇄적 문법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열려진 책”이 되라는 회개의 외침으로 되돌아온다.
  또한 왕대일박사는 창세기의 원역사(primeval history)를 읽으면서 성서의 구속사가 도시적 삶을 원초적으로 거부한다는 사실을 관찰한 후, 이를 죽음으로 요약되는 도시적 문화/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가며 (Jacque Ellul은 The Meaning of the City에서 이런 식의 성서적 관점이 창세기가 다루는 그 시대 당시에는 분명하기 인식되기 어려운 것이라 말한다. 성서의 비판적 관점은 도시문화가 충분히 발달한 후에야 충분히 드러나는, 일종의 예언자적 통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비전이 부정적 의미의 도시적 삶을 극복하려는 문화 비판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문화변혁에 관한 마지막 단락은 문화의 종교적 측면, 특히 그 종교적 차원을 담아내는 제의들의 형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는 유사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대의 “문화행사”들을 언급한 후, 이들이 “거룩해진 우주에서의 삶” 대신 “거룩한 옷을 벗긴 우주에서의 삶”이며, 피상적 엔터테인먼트 속에 감추어진 죽음의 문화임을 지적한다. 여기서 기독교신앙은 “하나님 없이 조성되고 건설된 이스라엘 문화의 무생명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숨결에 의해 살아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날숨을 들숨으로 마심으로써”(!) 반생명의 문화를 인간적 문화로 돌이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웅변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삼는다.


  논의를 진척시키는 의미에서, 평자로서 아쉽게 느끼는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해 보기로 하자. 우선, 논문의 핵심 용어인 “문화”가 너무 느슨하게 사용되는 인상을 준다. 우선 문화에 대한 정의의 다양성이 언급된 뒤(1쪽), 포괄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가 저자가 의도한 문화 개념으로 제시된다(2쪽). 이어 “문화명령”과 관련하여 “경작” 개념으로서의 문화가 언급되고(3-5쪽),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성서 텍스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5-7쪽). 그 다음 “자연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도시) 문화가 언급되면서 “구원받아야” 할 문화(8-11쪽) 및 “변혁되어야” 할 문화(11-13쪽)에 관한 논의가 전개된다. 여기서는 “문화는 문명과 동의어”라는 진술(8쪽) 혹은 “문화는 문명과 함께 간다”(10쪽) 등의 진술도 나타난다. 또한 “문화는 제의다”(11쪽) 혹은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한 형태”와 같은 진술이 보이고, “정경적 문화/통속문화”와 같은 이항대립이 소개되기도 한다. 물론 이들 진술이나 표현들은 각각의 문맥에서 나름의 구체적 의미를 갖는 것들이며, 따라서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화를 화두로 삼는 글에서 문화 개념 자체가 자주 모양을 바꾸는 것은 논문 자체의 논점들이 상식적 수준의 담론으로 화할 우려가 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긴 생각을 짧은 글로 옮겨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의 산물일 테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그 때 그 때 저자의 논점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문화 개념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카바쉬(שׂבכ)를 정복보다는 돌봄으로 본 통찰은 주석적 근거가 확실치 않다. 히브리서 성경에서 이 단어는 대부분 “정복” 혹은 “(종으로) 부림”의 의미로 사용된다. 왕대일 박사가 “왕으로서의 통치” 개념의 근거로 인용한 사례들에서도 이 통치는 자유를 빼앗는다는 부정적 의미로 묘사된다(삼하 8:11; 렘 34:11, 16). 또한 경작과 문화의 어원적 연관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증거라기보다는 실질적 관찰을 통해 확인되어야 할 사안에 속한다. 이 부분에서 보다 상세한 논증이 뒷받침된다면 좋을 것이다.
  소통수단으로서의 문화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비판의 화살이 세상의 문화보다는 성서 쪽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성서적 관점에서 문화/문명을 비판한다는 전체적 흐름을 흐리는 일종의 논리적 역류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두 단락의 제목은 문화의 구원과 문화의 변혁이지만, 실제 내용은 각각 도시적 죽음의 문화 비판과 문화의 세속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실제 논점에 맞게 제목을 설정하는 것이 글의 이해를 더 선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의 “구원”과 문화의 “변혁” 사이에 어떤 실질적 차이를 설정하고 논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평자로서는 그 논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왕대일 박사는 문화 변혁의 원동력으로 하나님의 날숨을 들숨으로 마시자고 제안한다. 절묘한 표현이 감동적인 만큼, 또한 궁금하기도 하다. 어떻게? 글 전체의 화두에 맞게, 하나님의 루아흐에 대한 호소 또한 보다 구체적인 문화적 개념 혹은 상징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아쉬움과 관련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에 대한 종말론적 비전 이야기를 성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신약 쪽으로 좀 더 진행해 나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Jaque Ellul의 경우, 도시에 대한 논의를 신약적 관점으로 밀고 나간다). 구약에서의 물음이 신약을 향하면서 답에 근접한다거나, 구약의 비판이 신약적 비전으로 발전한다거나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신약학자로서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 정경으로서의 성경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어느 부분에서 출발하더라도 기본적인 관점은 “성경신학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이 기록해 놓은 생각을 두고 평가를 내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글을 창조해 내는 어려움에 비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평자는 여기 적은 소소한 아쉬움의 표현들은 제시된 연구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쉽지 않는 작업을 해 주신 노고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다. 평자의 짧은 변이 왕대일 박사님의 연구, 그리고 우리 신학의 성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기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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