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의 땅’ 아프리카에도 ‘용서’가 유효한가

<신간> 용서 없이 미래 없다

 ▲데즈먼드 투투 ⓒNobel Foundation

피의 땅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용서’가 유효한가? 이 질문에 제 3자가 답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17세기 중엽 백인 이주와 더불어 시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우월주의는 1994년 4월 27일 남아공 최초의 민주 선거가 치러지고, 그 해 5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아공에서 백인들은 인종 차별 체제인 ‘아파르헤이트’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희생자의 목에다 타이어를 끼우고 석유를 가득 부은 뒤 불을 지르고 노인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때려 살해했으며, 사람을 죽인 뒤 증거 인멸을 위해 시체를 태우면서 옆에서 바비큐를 즐기기도 했다.

또 아파르헤이트는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금했으며, 백인, 컬러드인(흑백 혼혈), 인도인, 흑인으로 나눠 인구등록 하게 했으며, 강제이주 시키면서까지 인종을 분리했다.

그 가운데 남아공 성공회의 데즈먼드 투투(Desmond M. Tutu, 79) 대주교는 ‘제 3자’가 아니었다. 피해자들과 똑같은 피부색을 한 그는, 그러나 신간 <용서 없이 미래 없다>(홍성사)에서 백인들을 향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용기 있게 선포한다.

남아공을 빛낸 10인에 공공연히 꼽히는 투투 대주교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의장을 지낸 국제적인 인사로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남아공의 역사 치유를 위해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으로 1995년부터 일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추구했던 화해의 철학과 신앙,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피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투투 대주교는 용서가 ‘피해자’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용서가 그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회복할 힘을 얻고,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려는 모든 것을 이겨내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또한 용서는 ‘가해자들’을 포용한다. 여기서 투투 대주교의 관대함이 발휘된다. 피해자를 위로하면 됐지, 왜 가해자까지 포용해야 하냐는 질문에 성경의 가장 큰 가르침이 ‘용서’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응보의 정의’가 아닌 ‘회복의 정의’를 그는 말하며, 그것의 주된 관심사는 징벌이나 처벌이 아니라 불화의 치유, 깨어진 관계의 회복, 희생자와 범죄자 모두의 복권 추구라고 보았다.

투투 대주교는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자리를 열기도 하고, 과거에 아파르헤이트를 주도했던 자들로부터 공식사과를 받아내기도 한다. 그런 걸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 그게 말로 용서가 되냐는 비난도 받지만, 그는 “참된 용서는 과거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며 미래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확신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화해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파르헤이트를 옹호했던 네덜란드 개혁교회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뒤 투투 대주교는 “화해의 중개자로서 큰 잠재력이 있는 교회들이 서로 화해하지 못한다면, 정치가와 국민들은 교회도 못 하는 화해를 어떻게 사회에 기대할 수 있겠냐고 생각할 터였다”고 회고했다.

또 교회가 과거의 괴로운 기억들을 이겨내고 공개적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한다면 “사회의 평화로운 체제 이행에 엄청난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교회에 ‘희망’이 있음을 역설했다. 


원제 No Future Without Forgiveness. 홍종락 옮김. 339쪽. 1만4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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