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규범적 일신교와 토라 준수 이전의 유다 종교"

연세대 연신원 BK21팀, 베를린 훔볼트대 쉬퍼 교수 초청 강연 개최

yonsei
(Photo :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대 제공)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 교육연구팀(팀장 임성욱 교수)은 지난 26일,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의 베른트 U. 쉬퍼(Bernd U. Schipper)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 교육연구팀(팀장 임성욱 교수)은 지난 26일,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의 베른트 U. 쉬퍼(Bernd U. Schipper)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와 이집트· 이스라엘 간 교류, 히브리 성서 분야의 석학인 쉬퍼 교수는 이날 「페르시아 시대 이집트의 유다인: 엘레판티네 파피루스에 나타난 새로운 증거(Judeans in Egypt During the Persian Period: New Evidence from the Elephantine Papyri)」를 주제로 강연하며, 고대 이집트 유다인 공동체의 사회적 삶과 종교를 새롭게 조명했다. 강연 사회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홍국평 교수가, 논평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유성환 박사가 맡았다.

이번 강연은 1906년 독일 고고학자 오토 루벤존(Otto Rubensohn)이 나일강의 엘레판티네 섬에서 발견한 파피루스 자료에 주목했다. 이 자료들은 이집트 민중문자(Demotic)와 신관문자(Hieratic)로 기록된 것으로, 발견 당시에는 '쓸모없다'고 여겨졌다. 쉬퍼 교수는 엘레판티네 섬과 그곳의 이집트 신전을 개관한 뒤, 파피루스 자료를 분석해 기원전 5세기 이 섬에 거주했던 유다인 공동체의 삶과 종교를 재구성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간 사회, 유다인 공동체의 새로운 모습

쉬퍼 교수에 따르면 엘레판티네는 나일강 제1급류 지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크눔(Khnum) 신전을 중심으로 방대한 행정·경제 조직이 운영되던 거점이었다. 신전 인근 주거 지역에는 유다인과 아람인뿐 아니라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카리아인 등 다양한 민족 집단이 함께 거주했다. 이들은 서로 분리된 채 살아가기보다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를 공유하며 긴밀하게 교류했다.

유다인 여성 미브타히야가 왕실 건축가였던 이집트인 에스호르와 혼인한 사례와 유다인 므술람의 집에서 이집트인 노예 타메트가 일한 사례는 당시의 복합적인 사회·법적 관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이러한 사례는 엘레판티네의 유다인 공동체가 이집트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도 하층민에 국한된 집단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야후와 다른 신들을 함께 섬긴 종교적 실천

종교적 측면에서도 엘레판티네의 유다인 공동체는 후대의 규범적 유다교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람어 파피루스에는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신 야후(Yahu, 히브리 성서의 신명 YHWH를 가리키는 명칭)뿐 아니라 이집트 신 크눔의 축복도 구한 정황이 나타난다. 또한 아심-베델과 아낫-베델 등 다른 신들을 야후와 함께 섬겼던 흔적도 확인된다. 쉬퍼 교수는 이들 신의 관계를 이집트 종교의 삼신조(三神組) 구조와 비교해 해석했다. 아낫-베델과 아심-베델을 각각 여성 배우신과 신적 자녀에 해당하는 존재로 이해할 경우, 남신인 야후를 중심으로 한 신들의 관계가 이집트 종교의 신적 가족 구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는 엘레판티네의 유다인들이 야후만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는 엄격한 일신교적 형태의 종교를 실천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쉬퍼 교수는 이를 규범적 일신교와 토라 준수가 정착하기 이전의 유다 종교를 보여 주는 사례로 설명했다. 당시 유다인들의 종교는 이웃 민족 집단과의 개방적인 사회적·종교적 교류와 통합 속에서 형성되고 실천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쉬퍼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적·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기원전 419년경 무교절 준수와 관련한 규정이 시행되는 등 공동체의 종교적 경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유다인들의 소·양·염소 번제 역시 크눔 신전의 제의와 충돌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410/409년에는 크눔 사제들이 관여한 가운데 야후 신전이 파괴되었다. 이후 신전 재건 과정에서 유다인들은 번제를 행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는 크눔 신전이 지역의 종교·정치적 질서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가운데, 야후 신전이 유다인 공동체의 종교적 필요를 담당하는 별도의 성소로 기능했음을 보여 준다.

문헌과 서기 교육: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이념과 행정 질서

쉬퍼 교수는 엘레판티네 크눔 신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어 문헌들도 새롭게 해석했다. 장례와 의례, 의학, 지혜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이 문헌들은 당시 신전이 수행했던 교육적·행정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브루클린 도서관 소장 파피루스에 수록된 지혜 교훈은 당시 서기 교육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여기에는 주인이나 상관에 대한 충성과 농업의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아람어 문학 작품인 『아히카르의 지혜』와 베히스툰(Bisitun) 비문의 아람어 판본도 중요한 자료로 거론된다. 쉬퍼 교수는 이집트어와 아람어 문헌이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면서 통치자에 대한 충성과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이념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엘레판티네 파피루스가 보여 주는 고대 유다 종교의 역동성

쉬퍼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엘레판티네 유다인 공동체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이 공동체는 다양한 민족과의 사회적 통합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높은 문해력을 갖춘 사회적 엘리트 집단이었다. 둘째, 야후를 다른 신들과 함께 섬기고 타민족과 혼인하는 등 후대의 규범적 유다교와는 다른 종교적·사회적 실천을 보였다. 셋째, 서기 교육과 관련된 이집트어와 아람어 문헌은 이 공동체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이념을 접하고 제국의 행정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쉬퍼 교수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지배 아래 이집트의 유다인들을 "다문화적 환경에 깊이 자리 잡고, 이집트 이웃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이집트의 페르시아 제국 행정에 적극 복무한, 고도로 통합되고 문해력 높은" 공동체로 재조명했다.

논평을 맡은 이집트학자 유성환 박사는 이번 강연이 아람어 문서와 이집트어 문헌을 하나의 역사적 틀에서 다루며 엘레판티네를 다언어 공동체로 조명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야후 신전 파괴의 동기, 야후·아심-베델·아낫-베델의 관계, 이집트어 문헌과 서기 교육, 충성의 문학과 페르시아 제국 이념 등을 언급하며, 문헌에서 직접 확인되는 내용과 그 사회적 배경에 대한 추론을 더욱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엘레판티네의 문헌은 일상적 통합과 실제적 협력을 보여 주는 한편, 기원전 410/409 년에 발생한 위기는 그러한 통합이 제의와 정치적 권위를 둘러싼 갈등과 공존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쉬퍼 교수는 증거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설적 해석의 가치를 강조했다. 고대 근동과 히브리 성서 연구는 본래 제한된 자료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는 작업인 만큼, 가설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증거에 근거한 논증을 지나치게 꺼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야후·아심-베델·아낫-베델이 신적 가족을 이룬다는 해석에 대해, 파피루스에 그러한 관계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제한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연을 기획한 임성욱 교수는 "엘레판티네 파피루스는 종교가 고립된 체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종교와 문화의 경계가 더욱 복잡하게 교차하는 초연결 시대에 종교를 이해하고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며 "이번 강연이 종교와 사회, 문화 간 연결을 새롭게 성찰하고 미래 종교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쉬퍼 교수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국제구약학회(IOSOT) 회장을 지냈으며, 이집트 민중문자 파피루스와 히브리 성서의 형성을 연구하는 'DEMBIB'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Geschichte Israels in der Antike, 2018)와 T. J. 샌도벌과 공동 편집한 『게르하르트 폰 라트와 지혜문학 연구』(Gerhard von Rad and the Study of Wisdom Literature, SBL Press, 2022) 등이 있다.

이지수 기자 libertas@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장신대, 이종성 통전적 신학 재조명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박경수)가 고(故)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을 오늘의 신학적 현실 속에서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관련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구미정 교수, 니체의 '초인'을 룻기의 '헤세드'에 잇대다

기독교윤리학자 구미정 교수(협성대 객원)가 《기독교사상》에 최근까지 연재해 온 '룻과 함께 아모르 파티'를 마무리했다. 얼마 전 발행한 8월호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아담"은 결국 "아다마"에서 왔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신학계에서도 인간과 자연, 창조와 구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다시 묻는 작업이 이어지고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의 단일성 통해 현대 조직신학 재조명"

현대 조직신학의 핵심 흐름으로 자리해 온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재검토하며, '하나님의 단일성(divine oneness)'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재구성하려는 미국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성전론적 전쟁관에 치우쳐져 있는 한국 개신교인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등 바야흐로 전쟁의 시대다. 이러한 전쟁의 흐름이나 양상을 보고 향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 나라의 정치색은 좌도 우도 아니다"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설교와 정치의 관계를 성찰하는 글을 공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 목사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