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왕상 19:9-14, 롬 16:1-7, 요 21:9-13)
설교문
[선천댁의 한 마디]
하늘뜻펴기 제목을 보시고, 오늘 한 목사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나 생각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어쩌면 언뜻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겠지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쉬운 건 없다!" 이 말은 지난 안병무 선생님 서거 30주기를 기억하며 마련한 연극 「선천댁」에서 주인공 선천댁이 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읊조린 대사입니다.
이틀 공연을 보신 분이 연인원 4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희곡을 쓰시고 연출을 하시고, 함께 배우로, 스텝으로 모두들 수고하셨고, 정말 뜻깊은 일이 되었습니다. 보신 분마다 전부 감동의 지점은 달랐겠지만, 저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11월 첫째 주일 하늘뜻펴기 제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향린에 부임한 지 2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느 하늘뜻펴기와는 조금 다르게, 지금 우리 교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우리 각자의 신앙은 괜찮은지 함께 돌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목회를 맡은 한 사람으로서 지난 2년 동안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거나, 고개를 갸웃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의 한쪽 귀퉁이를 들어 보이는 일입니다. 나머지 세 귀퉁이는 여러분이 함께 들어 주십시오. 평신도 교회라는 향린의 전통에서, 교회 전체를 보는 눈은 언제나 여러분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늘 제 말씀을 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향린과 나: 저를 키워준 교회]
저는 2002년 향린교회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때 저는 만학도로 신과대 4년의 신학 공부를 마치고, 지곡서당에서 1년 동안 사서(四書)를 읽고 난 뒤, 지방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사역을 하다가 평신도로 향린에 찾아왔습니다. 가장 진보적인 도시교회를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홍근수 목사님을 비롯해 훌륭한 목회자들, 좋은 동기들과 진지한 신앙의 선후배들 속에서 신나고 뜻깊은 1년을 보내고, 곧바로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입학해 교육전도사로 청소년부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파트타임 교역자, 전임 전도사, 부목사, 모두 12년을 향린교회에서 보냈고, 그동안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그 12년 동안 저는 향린교회가 정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 새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과정, 50주년과, 60주년을 치러내고, 분가를 결단하여 실행하는 과정을 곁에서 배웠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대회에서 멋지게 우리가락 예배를 소개하며 세계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독일 '교회의 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 행사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교회 운동으로 펼쳐가면서 평신도들의 자발적 선교와 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녘교회 식구들하고는 또 얼마나 끈끈한지, 에큐메니칼 연대 속에서 향린교회가 어떤 몫을 하는지도 그때 알았습니다. 미군에 의한 효순·미선이의 죽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투쟁, 이라크 파병 반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FTA 문제, 용산 참사, 주한미군 문제, 금강산 관광,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죽음에 응답하기까지, 시대의 아픔마다 책임 있게 나서는 교회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저에게 큰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신앙도 삶도 성숙한 교우들이 만들어 가는 목회와 선교 속에서, 한참 미숙했던 저는 계속 단련되었습니다. 동대문 양꼬치 집에 데려가 밥을 사 주시던 고(故) 홍대극 집사님, 제가 연 성서배움마당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시던 고(故) 이양우 장로님과 지난달 우리 곁을 떠나신 노경선 집사님, 지친 후배의 등을 두드려 주던 선배 교우들. 그분들이 저를 목사로 길러주셨습니다. 당시 향린교회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정말 풍요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 한분 한분이 자신의 인생을 정말 진지하게 살아 오셨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중고등학생이던 친구들이 이제 엄마 아빠가 되었고, 팔팔하시던 어르신들은 점점 노쇠해지셨습니다. 저는 말라깽이 전도사에서 뚱보 한문덕이 되었고, 교회는 명동에서 광화문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와 기후 재앙, 인공지능이 몰고 오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고, 한국 개신교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지난 2년의 목회]
그래도 저는 참 좋은 신앙공동체인 생명사랑교회를 만나 신나게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향린교회 청빙위원회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종교체험을 한 뒤로 예수를 깊이 사모해 온 저는, 청년 예수가 세상을 떠난 서른 즈음을 지나면서부터 그 이후에 제게 주어진 삶은 모두 덤이라고 여기며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글 가운데 『노자』 4장에 왕필이 붙인 주석이 있습니다. "무릇 한 집안을 다스릴 능력이 되는 사람은 그 집안을 온전케 할 수 없고, 한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되는 사람도 그 나라를 완성할 수 없다. 있는 힘을 다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어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夫執一家之量者, 不能全家; 執一國之量者, 不能成國. 窮力擧重, 不能爲用.) 저는 스물다섯에 이 구절을 읽은 뒤로, 무슨 일이든 제힘으로 감당하고도 여백이 남는 일을 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런데 향린의 담임목사는 제 역량보다 훨씬 큰 자리였습니다. 다 감당하려다가는 제 명(命)에 못 살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2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고 염려하시는 대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부임 한 달 만에 계엄이 선포되었고, 우리는 시국기도회와 광장에서 그 겨울을 함께 건넜습니다. 담임목사가 없던 시간 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들도 하나씩 풀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헌당 예배를 드렸고, 장로와 권사를 세웠고, 세 분의 목사를 세웠고, 살림이 빌딩의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국악선교회 예향 30주년, 들녘교회와 함께 걸어온 참 좋은 길 30년도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셔서 2년 사이 100여 명이 넘는 새 교우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큰일을 치르고 나면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허탈감입니다. 오늘 읽은 열왕기상의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 앞에 홀로 서서, 하늘의 불로 응답받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에서 엘리야는 호렙 산 동굴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이나 물으십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의 대답은 두 번 다 같습니다. 주님의 일에 열심을 다했는데, 이제 자기만 홀로 남았다는 것이고, 게다가 원수들이 엘리야의 목숨마저 노린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쪼개고, 지진이 일고, 불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갈멜 산에서는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는 불 속에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야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도 엘리야의 호소는 바뀌지 않습니다. 성서는 정직합니다. 큰 승리 뒤의 허탈은 한 번의 체험으로 씻기지 않습니다.
그 조용한 소리를 들으려면 고요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향린에 와서 아쉬운 건 없지만, 꼭 필요한데 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 고요의 시간입니다. 아침 묵상글을 쓰는 한두 시간과 짬을 내어 드리는 기도를 빼면, 거의 모든 시간이 일이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제대로 쉰 것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 전체가 키로 까불리듯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는 그 키질 앞에, 향린도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요청되는 일이 많고, 그 일들이 자연스레 목회실로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엘리야처럼 동굴에서 다시 듣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고요를 되찾고, 일을 나누고, 여러분과 함께 짐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는 아니다]
엘리야는 저만 홀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저는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6장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긴 편지를 마치며 동역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많은 사람을 돕고 바울도 신세를 진 뵈뵈, 바울을 위해 목숨을 내걸어 모든 이방 교회가 감사하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 낯선 땅에서 복음의 첫 열매가 된 에배네도, 로마 교회를 위해 많이 수고한 마리아, 바울과 함께 갇혔고 사도들 사이에서도 존경받으며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이 명단에 여성 동역자들이 많다는 것도 눈여겨볼 일입니다. 바울의 복음은 이 사람들의 손으로 이어졌습니다. 향린의 지난 2년도 그랬습니다. 너무너무 많지만 저는 오늘 몇 장면만 떠올려 보려 합니다.
- 계엄의 겨울, 추운 광장과 시국기도회에 함께 섰던 교우들
-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 곁의 기도회, 팔레스타인과 명동재개발 대책위원회 함께한 기도, 수요평화거리기도회
- 두만강 접경지역을 걸으며 분단의 벽을 몸으로 느낀 여름
- 8.15 자주평화대행진과 경동교회와 함께한 평화기행
- 안병무 선생님 30주기 추모예배와 문화제
- 들꽃향린, 섬돌향린, 들녘교회와 나눈 강단, 청년이 선 강단
- 새교우강좌와 성서배움마당에서 함께 묻고 배운 시간
- 미래선교위원회가 꾸려온 여러 사역들
그리고 이 2년 사이 우리 곁을 먼저 떠나신 교우들이 있습니다. 부활증언예배에서 우리는 그분들의 삶이 하나님 나라와 이 교회를 위해 어떻게 쓰였는지 함께 증언했습니다. 그분들의 이름도 바울의 명단처럼 우리 공동체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함께 일한 목회실의 동역자들도 있습니다.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 그리고 교회 살림을 묵묵히 지켜 온 직원들입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지난 2년은 불가능했습니다.
바울이 이 이름들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냥 이름만 올린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바로 그런 향린의 기둥 같은 교우들 덕분에, 번 아웃의 문턱에서 넘어지지 않고 지난 2년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왜 향린이 잘 되어야 하는가]
지금 한국 개신교는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신학생은 구하기 어렵고, 교회와 교인과 목회자와 신학교가 함께 쇠락하는 악순환 속에 있습니다. 더 아픈 것은 개신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몇 해 전 한 조사는 신앙은 있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를 22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했습니다. 신앙은 남아 있는데 교회를 떠나는 시대, 개인의 믿음과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서로 멀어지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는 혐오와 배제, 극우 정치의 언어와 너무 자주 겹쳐 보입니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는 개신교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로 극우 성향의 문항에 모두 동의했고,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것을 크게 불편해한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교회의 이름으로 그런 목소리가 커질 때 세상은 교회 전체를 그렇게 기억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교회가 다르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향린교회는 73년 동안 그 일을 해 왔습니다. 평신도가 주인 되는 교회를 세웠고, 담임목사의 임기를 정관으로 두어 교회가 한 사람에게 매이지 않게 했습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재신임할 수 있듯이 목사도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자유가 있는 교회, 세습과 권위주의로 무너지는 교회들 앞에서 이것은 작지만 분명한 대안입니다.
우리 가락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를 일구었고, 안병무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의 민중신학을 강단과 거리에서 살아 내려 했습니다. 분단의 벽 앞에서 평화를 말했고, 성장보다 분가를 택해 여러 향린공동체를 낳았습니다. 규모가 작아졌을 때에도 사회선교의 깃발은 어김없이 올라갔고,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향린이 쇠락한다면 그것은 한 교회의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르게 믿으려는 교회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증거처럼 쓰일 것입니다. 진보적 신앙, 사회선교 지향의 교회는 부흥할 수 없다는 왜곡된 신념을 심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향린이 든든히 선다면, 교회를 떠난 이들과 신앙의 질문을 품은 이들에게 아직 돌아갈 교회가 있다는 소식이 될 것입니다. 신학생을 구하기 어려운 이때, 다음 세대의 목회자를 길러내는 교회도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작은 교회가 희망이라고 합니다. 저는 작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올바르게 목회하는 교회에 있습니다. 다만 올바른 교회도 그 선교 사명을 감당할 만한 힘이 있어야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선교 사명 때문입니다.
[바닷가의 아침에서 길어 올린 향린의 내일]
저는 지난 2년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아쉬운 건 없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넘어지기도 할 것이고, 무지와 오해에 휩싸이기도 할 것이고, 잘난 체하다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절대 배반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 제자들은 모든 희망을 잃고 디베랴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따라나섰지만, 스승을 지키지 못했고, 함께했던 사실마저 부인했습니다. 슬픔과 허무, 자책과 죄책감을 안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다시 그물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는 승리한 뒤에, 갈릴리의 제자들은 스승을 잃은 좌절 뒤에 같은 허탈감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동틀 무렵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말대로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가득 걸렸고, 제자들은 그가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누가복음서가 전하는 첫 부름의 장면에서도, 밤새 허탕 친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지요.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고, 주님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장면이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뭍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피워져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9절). 지친 제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주님이 먼저 밥상을 차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합니다. 서로 민망합니다. 믿음을 잃었고, 배반했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 가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져 있던 사람들 앞입니다. 이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겠으며, 또 제자들은 주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아침을 먹으라고 부르시고, 빵과 생선을 손수 나누어 주십니다(12-13절). 밥 먹고 힘내서 다시 일하자는 것입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 향린의 내일을 비추는 세 장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찢어지지 않은 그물입니다. 그물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았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11절). 하나님은 지난 2년 동안 100여 명의 새 교우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향린에 왔던 2002년 우리 예배에는 평균 259명이 모였고, 분가를 앞둔 2012년에는 300명이 넘었습니다. 2024년 평균은 143명이었고, 지금은 180명 정도가 함께 예배드립니다. 저는 우리가 감당해 온 목회와 선교를 안정적으로 이어 가려면 250명 정도가 든든히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를 늘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새로 오신 분들이 향린의 신앙 전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오래된 교우들과 새 교우들이 서로를 돌보아, 많은 고기를 담고도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밥상을 차리시고 와서 먹어라 하신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즉 든든한 신앙의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차려주신 말씀의 밥상에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야 합니다. 2, 30년 전 우리 사회에는 분단 체제의 모순, 민주화, 노동자의 권리처럼 분명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그때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생명, 평화, 정의라고 말해도, 저마다 생각하는 생명과 정의와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코로나19가 경고했듯이 우리는 언제나 흘러내리고 변하는 액체 현대의 복합 위기 한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기후 재앙이 가장 큰 위협인데도 그 폭풍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의 빠른 진화는 언제든 우리를 일터에서 밀어낼 수 있다는 불안을 줍니다.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분별하며 옳은 길을 고를 수 있게 하는 것,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고 함께 살아갈 지혜를 주는 것은 결국 참된 신앙입니다. 주님이 차려주신 아침상처럼, 말씀과 배움으로 서로를 먹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서를 함께 읽고 묻고 배우는 자리를 교회 안에서 더 넓혀가야 합니다.
셋째는 함께 차리는 밥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숯불 위에 생선을 이미 올려 두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고 하십니다(10절). 주님이 차리신 밥상에 제자들의 수고가 보태집니다. 은혜와 수고가 함께 차리는 밥상, 이것이 교회입니다.
지금의 시대를 함께 건너려면 진짜 민주적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각자의 이익을 지키려고 맺는 계약으로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자유에서만 가능합니다. 담임목사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잡은 생선을 들고 와 함께 밥상을 차리는 교회. 함께 짐을 나누고, 함께 현장에 가고, 함께 결정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생이 고생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 고생에 뜻이 있고 사랑이 녹아 있을 때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하지만 그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선천댁도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바로 그 사랑하는 힘, 하늘의 뜻을 지어내는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원래부터 있는 힘입니다. 민중의 근원적 힘입니다.
그 힘은 살림의 불길로 모일 때도 있지만, 자본에 휘둘리고 욕망에 무너지고 무지에 사로잡혀 파괴의 힘으로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문명은 발달한다는데 인간성은 제자리걸음이고, 모든 것을 쓸모와 효율로 재면서 존재에 대한 경이를 잃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진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는 신앙을 지녀야 합니다. 그 길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누리고, 때로 고생은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담쟁이처럼]
지난 2년간 함께 수고하신 향린 교우 여러분! 앞으로도 그렇게 합시다. 고생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 뜻과 사랑을 담아 아쉬운 건 없다고 함께 말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시 한 편을 낭송하고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누군가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굴 때, 우리 모두 담쟁이가 되어봅시다. 너와 내가 저마다 잎 하나가 되어 서로의 손을 잡고, 서두르지 않고 함께 그 벽을 넘어가는 교회가 됩시다. 그 길에 향린 교우 모두가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지친 날엔 주님이 차리신 밥상에서 힘을 얻으십시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벽을 넘으십시오.
그리고 끝내 이렇게 말하십시오.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쉬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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