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신을 매수하고 아부하는 방식으로 무속 샤머니즘 이길 수 없어"

김교신 이의제기에 비추어 한국 개신교를 사상사적으로 고찰한 이화여대 양현혜 교수 인터뷰 1부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많이 오용된 '신앙적 용어' 12개를 선정해 김교신의 이의제기에 비추어 분석하며 한국 개신교를 사상사적으로 고찰한 『신앙의 변증법』, 『공적 신앙의 윤리』, 『경계에 선 신앙』 등 총 세 권의 신간을 펴낸 이화여대 양현혜 교수를 이화여대 학관 8층 강의실에서 만나 저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양 교수는 인터뷰에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은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로 오래 전 김교신이 이의제기를 했던 문제, 즉 기독교를 유용성의 가치로 판단하고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가치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무속과 샤머니즘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도 양 교수는 세 권의 저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힌 용어들 중 신앙, 회심, 은혜와 복종, 신앙과 이성, 전도, 예언자, 종교개혁과 무교회주의, 기독교와 국가권력 등에 대해 올바른 신앙적 태도가 무엇인지 김교신의 이의제기에 비추어 성찰했다.

저자 양현혜 교수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카무라 하지메 종교연구상(1996)과 김교신학술상(2023), 이화학술상(2025)을 수상했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은퇴했다. 저서로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1994), 『근대 한일관계사 속의 기독교』(2009), 『김교신의 철학: 사랑과 여흥』(2013),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2017)이 있으며 『야스쿠니 신사』(2002),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2004),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2015), 『전도의 정신』(2024)외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길이상 2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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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이화여대 양현혜 교수를 19일 이화여대 학관 8층 강의실에서 만났다.

- 김교신의 신앙 이해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기독교 신앙을 유용성의 관점에서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교신은 기독교를 유용성이 아닌 영원성의 가치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했는데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삶에서의 필요는 언제나 우리의 능력을 초과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자신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 보는 한, 그가 섬기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신은 자신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신을 조종해 호의를 베풀도록 고안된 기술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술입니다. 특별한 의식과 주문을 이용해 신을 조종하려는 주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당의 세계가 있지 않습니까. 신을 조종하기 위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신을 매수하거나 아부하는 것입니다. 이 때 신과 인간의 관계는 탐욕이 지배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습관과 상식 안에서 그저 인간의 기대와 욕구를 채워주시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은 우리 존재를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존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유용성의 세계가 아니라 뜻의 세계, 곧 영원성의 세계라고 할 것입니다.

김교신은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명백한 '뜻'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욕망을 위해 거래할 대상이 이거나, 혹은 아부하거나 비위를 맞춤으로써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죄와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존재였습니다. 인간을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해방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에게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에 헌신하고, '나'를 죽이는 것, 내 뜻에 죽고 하나님의 뜻을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더 잘 살자'는 종교가 아니라 '더 잘 죽자'는 종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망하면 망하리라'라는 각오로 살면서도, 거기에서 오는 새로운 삶의 질서가 주는 기쁨으로 용약하는 '영원성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 국내 선교 초기 자기 욕망 실현을 위한 도구로 기독교에 접근함으로써 기독교가 힘의 종교로 이해되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선교 초기에는 기독교가 '영원성의 종교'여서라기보다 서구 자본주의적 문명화의 당위성의 차원에서 기독교를 수용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 그 신앙의 구조를 살펴본 윤치호와 박인덕의 경우가 전형적이지요. 이들은 농업문명에서 자본주의적 산업문명으로의 전환기에 서 있는 조선을 가난하고 힘없는 '기형적 불구의 사회'로 보았습니다. 당시의 생존경쟁적인 제국주의의 국제 질서 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다는 것은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을 그러한 '불구적 사회'를 만든 원흉은 유교라고 보았습니다. 무능한 유교에서 탈출하여 기독교의 세계로 편입하는 것이 문명화를 위한 절대적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기독교를 서구적인 '힘'의 세계로의 편입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본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종교의 우월성은 인간의 필요에 대한 충족 능력의 고하(高下)로 결정됩니다. 가난하고 낙후된 농업 문명을 주형한 유교는 인간의 필요에 부응할 능력이 없는 종교로, 폐기되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반면 개신교는 부국강병을 가능하게 하여 생존경쟁에서 우월한 존재가 되게 하기 때문에 가장 우월한 종교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세계관의 내용보다는 현실 세계에서의 '힘의 입증'이 진리를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근대시민국가를 향한 마지막 발버둥인 동학혁명과 독립협회가 좌절되고 식민지로 전락하던 시대 상황 속에서 개신교는 지배국 일본을 능가하는 힘있는 국가인 미국의 종교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개신교인은 기독교와 미국의 문명이나 문화적 형식을 동일시하기 쉬웠던 것이지요. 물론 기독교 국가가 된다는 것과 근대 산업문명 국가가 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임은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서구 근대문명에로의 전환을 강요받던 당시의 서구중심의 약육강식적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비서구의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의 본질과 형식을 준별(峻別)하는 문제는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선교 초기뿐만 아니라 이후의 한국 근현대사는 개신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개신교는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로 맞물려 있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의 개신교의 본격적인 역사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남한에서는 미국이 3년간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군정은 한국 통치에, 과거 식민지 시대에 조선과 인연을 맺었던 선교사들이나 그들의 2세의 자문을 받았고, 미국에 유학하여 영어에 능통한 개신교인들을 기용했습니다. 이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보내진 수많은 구호 물품의 배분 창구도 개신교회였습니다. 개신교인들에게 미국은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삶의 필요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준 '힘'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는 단순히 종교의 영역을 넘어 미국과 가장 가까운 집단으로서 정치적인 힘을 행사하는 강력한 '힘의 종교'로 왜곡되기 쉬웠던 것입니다.

만일 한국의 개신교가 미국이 아닌 영국이나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다른 개신교 국가에 의해 선교되었다면, 혹은 해방 이후 남한의 점령국이 영국이나 프랑스었다면... 등등, 한 번이라도 한국 개신교가 미국과 단절된 경험이 있었다면, 한국 개신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힘'을 비움으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자는 기독교가 '힘의 종교'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아이러니라고 할 것입니다.

-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유용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 형태의 부작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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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홍성사)
▲이화여대 양현혜 교수의 신간 『신앙의 변증법』, 『공적 신앙의 윤리』, 『경계에 선 신앙』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은, 가장 커다란 문제는 그러한 신앙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존재할 자리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나의 필요, 나의 욕망만이 문제가 되고 그것의 충족을 위해 신이 호출되는 신앙 체계 안에서 아부나 비위를 맞추어 주기를 원하는 신은 '뜻이 없는 신'이고, 그러한 신을 섬기는 '나' 역시 삶의 길이나 뜻을 물을 필요가 없는, 즉 욕구만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웃도 나를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 나만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갈 인격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나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인 유용성의 종교의 신앙 체계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타자에 대한 공감과 윤리적 책임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나 혼자 잘 사면 그만인 사람들과 그러한 세계를 양산하는 종교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세상을 각자도생의 정글로,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의 지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한다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기독교인의 '복종'의 의무와 유리되고, 기독교인의 '자유'는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한다는 '책임'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입신양명을 도와주는 부적과 같은 '값싸디 값싼 은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성서 해석이나 기독교의 신학적 개념이 왜곡되면 신과 인간의 괴리가 깊어지게 되고 종교가 인간 억압적 성격을 띠게 된다고도 갈파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부연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오늘날의 상황에서 특별히 문제시되는 국가권력과 기독교의 관계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치 신학적으로 이 관계를 결정짓는 두 가지 핵심은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과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서에서 국가권력과 기독교의 관계를 논할 때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울의 로마서 13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식민지 시대와 군부 독재를 거친 한국 개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 개신교사에서 로마서 13장의 영향력이 최초로 보여지는 것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 투쟁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의병 투쟁에 합류하려는 평양의 개신교인들에게 길선주 목사는 로마서 13장 1-2절을 인용하며,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설득하고 신자들의 의병 투쟁을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후일 길선주 목사는, "나는 성경이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삭여 속으로는 불평이 있으나 형식으로라도 복종하지 아니치 못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형식으로라도 복종을 하게 되면 표리부동한 거짓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부득이 내심으로도 복종치 아니하면 안 될 것이라 하여" 신자들을 설득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렇게 로마서 13장을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 추인과 무한 복종의 성서적 근거로서 인용하는 성서적 오용은 3.1 독립운동 때에도 나타났고, 해방 이후 군부 독재 시절에도 반복되어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최초로 이의제기를 한 것이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개신교인들 66명이 1974년 발표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일 것입니다. 이 성명서는 국가권력은 인권의 보존과 향유를 위한 '나라 살림을 위임받은 공복'이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로마서 13장은 권력의 무제한적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논했습니다. 국가는 신성한 질서 또는 실체적인 가치 구현으로서 그 자체를 위해 긍정되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그것이 실제로 담당하는 구체적인 과제 때문에 긍정된다는 점을 명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5. 18 민주항쟁에 대해서나 신군부 독재에 대해서도 한국 개신교에서는 여전히 로마서 13장을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승인과 복종을 규정한 문장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지속되었습니다.

오늘날 성서학자들이 로마서 13장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로서 권고하는 내용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가권력은 신의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깨어있는 이성으로 권력의 자기 우상화에 매몰되지 말 것 2. 국가의 고유한 임무와 과제는 '시민적 정의'의 관점에서 '선한 일'에 대한 보호와 촉진에 있다는 점 3.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적 자유와 양심에 의거하여 정치적 일상을 신의 피조물로서 성실히 받아들이고, 그 풍요로움을 사실적으로 '관리'할 책임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바울이 호소하는 세속적 권위에 대한 충성은 어떠한 형태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이 말하는 '복종'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규칙을 올바르게 지키고 합의에 근거한 민주적 결정을 만들기 위해 봉사할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가 말하는 '선한 일'이라는 사회적 과제에 인도되어, 잘못된 정책 결정에 반대하는 시민적 불복종이나 비폭력의 직접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아가 '양심'을 비판적인 행동의 근거로 세운다면 부패한 국가권력에 대한 정치적 저항조차, 로마서 13장 1절 이하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 치하 독일 고백교회의 활동 전후 50년간의 로마서 13장 1절 이하 해석사를 분석한 케제만(E. käsemann)도, "그리스도인의 복종은 더 이상 봉사가 될 수 없는 곳에서는 늘 그리고 거기서만 끝나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 권력을 가진 자가 사회관계의 결합을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상호봉사를 할 수 없게 했을 때, 거기에서 개별적인 행동이 사회관계의 해체를 재촉할 때인 것입니다. 현대의 정치 상황 안에서 도취되지 않는 사실적인 정치적-사회적 공동 책임의 삶의 존재 방식에 대해 로마서 13장 1절 이하에서 도출할 수 있는 비판적인 거리는 결코 적지 않은 것입니다.

로마서 13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 정치 신학의 중요한 사상적 축을 형성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48년 7월 제정된 우리나라의 제헌 헌법은 제 20조에서 1)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명백한 정교분리의 국가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교분리 원칙이 의미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거나(국교 금지 조항),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막거나,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정치의 탈종교화(=세속화) 혹은 '종교적 중립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은 몇 가지 사상적 계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내면의 신앙, 신념의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그 배후에는 국가는 인간의 삶 전체에서 단지 일부분에 관여하는 것이 허락될 뿐이라는 근대 국가의 자기 이해가 있습니다. 즉 국가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인 선한 것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규정할 권리가 없다는 근대 국가의 자기 이해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 신념의 자유에 대한 귀중함을 자각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전제 조건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둘째, 정교분리의 원칙은 신앙을 선교하는 데 있어서 국가 권력 내지 정치적 강제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어떠한 종교에 대해서도 특별한 재정적, 법제적 지지를 제공하거나 또는 역으로 특별한 제한을 가하지 않는 것, 즉 국가가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분의 정교분리가 완전히 지켜졌을 때 비로소 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지켜져 인권의 기본이 확립될 수 있는 것이지요.

셋째,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에서 정치의 세계도 종교의 세계로부터 자율화하여 신비주의나 주술적 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성적 정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상대적이고 세속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치적 과제를 즉물적으로 처리한다는 국가의 세속성을 자각하는 것은 정치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권력이 근대적 국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권력의 존재 이유를 구할 때, 지배자는 정치적 이성과 책임 의식을 은폐하고 거기에서 권력의 무제약적인 확대가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정교분리는 '국가와 정치의 합리화'를 보장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같이 정치 종교와 국가가 일체화되어 한편으로는 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이성도 착란시켜 버리는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교분리가 정치의 탈종교화 혹은 종교적 중립화라면 종교는 정치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정교분리가 종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단순히 간접적인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든 본격적인 직접적 선거 운동이나 정당 활동이든,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종교의 정치적 개입이 헌법 위반이라고 취급된 판례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종교인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종교가 시민단체를 만들어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혹은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종교가 정치에 어떻게 관여하는 것이 이상적인가일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는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둘 다 인간의 삶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용해형, 분리형,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형, 이렇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는 종교적 상징이 현실 세계(=즉 국가)와 너무 밀접히 '용해'(fusion)되는 경우나 그 둘 사이가 지나치게 '분리'(disjunction)되는 경우는 종교가 사회의 진보를 저지하는 방해물이 된다면서, 종교의 초월적 이상과 경험적 현실이 '창조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종교가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종교의 초월적 이상(transcendent ideal)과 경험적 현실(empirical reality)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초월적 이상이 종교적 상징체계의 중심부를 차지하며, 경험적 현실은 적어도 종교적 행위가 수행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타당한 영역으로 인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종교의 초월적 유토피아적 비전에 의한 국가의 상대화와 탈신화화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종교는 정치에 대해 '비판적 충성 혹은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사상적 의미 내용을 가진 정교분리의 원칙이 오랫동안 정치적 종교적 이해관계 따라 다양하게 해석· 변질되어 왔습니다. 대체적으로 권력자들에게는 '종교 통제'라는 의미로, 이에 순응하는 개신교인들은 '정치 참여 금지=정치 불간섭=무한 복종'의 의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한편 권력의 자기 우상화에 저항하는 개신교인들은 '국가의 종교적 중립화와 관용'으로 이해하고, 종교는 정치가 그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하는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3장과 정교분리의 원칙의 본래적 의미 내용을 충실하게 구현하면서, 정치가 합리적 이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공공의 영역에서 공익을 실현해 가도록 견인하는 공적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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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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