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26년 4월 5일 부활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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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 21:15-17

설교문

요한복음 20장의 마지막 두 구절을 읽으면 복음서가 마치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0-31절)

참으로 완성된 결말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던 바로 그때, 한 가지 장면이 더 열립니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려오는데 배우 한 사람이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에게 무언가 더 전하려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요한복음 21장을 요한복음의 에필로그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이 에필로그의 작성자는 독자들이 요한이 전한 복음을 다 읽고도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까 봐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이야기를 더합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요한복음 전체가 전하려는 주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알아보는 일"이며, 동시에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디베랴(Tiberias)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디베랴는 갈릴리바다 서쪽 가에 있는 도시로,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곳입니다. 베드로와 도마, 나다나엘을 비롯해 모두 일곱 명의 제자가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자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두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어부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를 따라 다른 제자들도 바다로 나섭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고기를 좀 잡았습니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십시오. 그러면 얻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씀대로 하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사랑하던 제자가 결국 알아보고 외칩니다. "주님이시다!" 베드로는 벗고 있던 옷을 급히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주님께 달려갑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옵니다.

그들이 육지에 오르니 숯불 위에 이미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손수 차리신 식탁이었습니다. "지금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십시오." 그들이 그물을 열어보니 크고 튼실한 고기가 153마리나 들어 있었지만,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와서 아침을 먹읍시다."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고, 생선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방금 이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걸립니까?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제자 중 누구 하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런데 여기만이 아닙니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처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동산지기로 착각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요한 20:15). 우리가 "아, 그건 마리아의 문제일 거예요. 너무 슬퍼서 분간을 못 했을 겁니다"라고 급히 결론지으려 할 때, 요한복음 에필로그의 저자는 일곱 명의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도(요한 20:19-23), 또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나 '의심 많은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셨을 때도(요한 20:24-29) 제자들은 처음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요한만의 전승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에서 역시 그들은 주님이 동행하셨음에도 "눈이 가리어져 그분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누가 24:15-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왜 요한복음의 에필로그 저자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을까요? 아마 그 저자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 "어떻게 자기 주님도 몰라볼 수 있지? 나는 마리아나 제자들처럼 둔감하지 않아"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는 속삭입니다. "아니요, 그렇게 장담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을 정말 알아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제자들과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이 차리신 식탁, 그 식탁 위에서 제자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망자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두려움에 떨며 모두 달아났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하고, 멀리 숨어버렸습니다. 절망과 낙심 속에 낙향했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다시 "물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수제자라 일컫던 베드로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저하며 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한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들으니 서운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철저히 확인하려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세 번 같은 질문을 물으셨고 세 번 같은 당부를 하셨습니다.

나에게 돌보아야 할 양 떼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이들을 맡길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답은 단 하나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있다면 억지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돌볼 수 있습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베드로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사랑의 불씨가 남아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불씨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는 새로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돌보라."(Feed my sheep / Take care of my sheep)

주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라고 손수 지어 주신 새 이름 대신, 제자가 되기 전에 불렀던 옛 이름을 부르신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 그 이름 속에는 갈릴리에서 그물질하던 시절의 기억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날의 떨림, 그 첫사랑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물음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너는 나를 사랑했었느냐?"가 아니라 "지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현재형의 질문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주님은 물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베드로에게 지금, 새로운 소명을 주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설레고 순수하며 어리석을 만큼 진심이던 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작아도 여러분 안에 그 사랑의 불씨가 살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은 그 불씨 하나로도 세상을 다시 밝히실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속 작고 가냘픈 사랑의 불씨를 주님은 다시 붙잡아 복음의 거대한 역사로 이끄셨습니다. 그처럼 여러분 안에 있는 사랑의 불씨도 주님의 손에 들려 새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요한 자신이 아닌, 후대의 누군가가 덧붙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야기가 약해지지는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당부하신 장면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먼 옛날의 전설로 두지 말라는 힘 있는 외침입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막이 내려오는데, 배우 한 사람이 갑자기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관객에게 외칩니다. 요한복음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자기 주님도 알아보지 못하다니!"라고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우리에게 그는 말합니다. "아니요, 그렇게 장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서로 돌보라 명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있습니까?"

부활은 교회의 한 절기가 아닙니다. 단지 아름다운 음악 예배나 특별한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계속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보살핌의 체험입니다. 그것은 현실이며, 실재이며, 실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돌보심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고, 먹이시고, 능력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주님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 손수 식탁을 차리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자, 와서 아침을 먹읍시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절망 속에서도, 외로움의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십니다. 부활의 빛은 먼 과거의 신비가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덮고 있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이제 우리도 응답합시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가 전한 부활의 인사를 다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께서 정말로 다시 사셨습니다!" Happy E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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