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브렛 교수가 강연하고 있는 모습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교육 연구팀(팀장 임성욱 교수)이 최근 호주 휘틀리 칼리지(Whitley College)에서 히브리 성서와 윤리학을 가르치는 세계적 성서학자 마크 브렛(Mark Brett) 교수를 초청해 특별강연을 개최했다고 22일 밝혔다. 강연은 "이스라엘 족장 서사 속 토착성 및 '다민족' 모티프 Indigenous and 'International' Motifs in Israel's Ancestral Narratives"라는 주제로, 원두우 신학관 소리갤러리에서 진행됐다.
브렛 교수는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성장 경험과 호주 사회의 정착민-원주민 갈등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바탕으로, 성서 텍스트의 문화적·정치적 맥락을 분석해 온 학자다. 그는 정체성, 토지, 정치신학 간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며, 민족성과 탈식민 연구에 크게 기여해 왔을 뿐 아니라, 학문을 실제 정책 과정과 사회적 정의의 영역에 연결해 온 드문 연구자로도 평가된다. 2005-2008년에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원주민 토지권(Native Title) 협상팀의 정책 담당관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번 강연에서 브렛 교수는 창세기 족장 서사에 대한 고전적 논의를 식민성, 토착성, 국제법, 정치신학 등 현대적 맥락과 교차시켜, 성서를 단순한 종교문헌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살아 있는 텍스트로 조명했다. 그는 성서 안에 정복의 서사와 공존의 서사가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호수아·신명기 전통이 폭력적 정복을 토지 획득의 논리로 제시하는 반면, 창세기 족장 서사는 토지를 "언약, 친족 관계, 협상된 공존"을 통해 확보하는 공존의 신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브렛 교수는 "성서를 정복과 배타적 주권의 이야기로만 읽어 온 견해를 넘어, 핵심 족장 서사는 관계성과 상호 인정, 다민족성을 중심에 둔다"고 설명했다.
브렛 교수는 독일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하며, 족장 서사의 가장 초기 형태조차 '순수한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이웃 민족과의 정치적 관계를 반영한 경계 협상 기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야곱과 에서의 화해와 경계 설정(창세기 33장), 아브라함과 롯의 상호 합의에 따른 토지 분배(13장), 아브라함과 블레셋 사이의 상호불가침 조약(21장), 이삭과 블레셋의 평화적 협상(26장) 등을 주요 사례로 제시했다. 이들 사례는 토착 공동체 간 공존을 위한 경계 조율이 협상과 상호 합의, 조약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브렛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확인한 중요한 수용사(受容史)를 소개하며, 창세기 13장 아브라함-롯 토지분배 모델이 중세 교회법에서 근세·근대 국제법을 거쳐 현대 국제법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인용된 중요한 전범이 되었음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13세기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교령집(Decretals)』, 원주민 재산권에 대한 초기 문헌인 16세기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관하여」, 18세기 블랙스톤의 『영국법 주석』 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75년 국제사법재판소(ICJ) 서사하라(Western Sahara)사건 판결에서 아문 (Ammoun) 판사가 직접 인용한 데 이어, 이를 바탕으로1992년 호주 대법원 마보(Mabo) 판결에서 테라 널리우스(terra nullius) 원칙을 폐기하는 논거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테라 널리우스는 '주인이 없는 땅'이라는 허구적 법 원칙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브렛 교수는 "성서의 족장 서사가 근대와 현대 국제법의 윤리적 토대를 형성해 왔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분명하다"며, 이 문제를 학문적·사회적 대화의 장으로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마보 판결을 창세기 13장의 공존 기반 토지 질서를 현대적으로 회복한 사건으로 해석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교육 연구팀(팀장 임성욱 교수)이 최근 호주 휘틀리 칼리지(Whitley College)에서 히브리 성서와 윤리학을 가르치는 세계적 성서학자 마크 브렛(Mark Brett) 교수를 초청해 특별강연을 개최했다고 22일 밝혔다.
강연의 말미에서 브렛 교수는 한국, 호주, 미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례를 비교하며, 식민주의는 단일한 틀로 설명될 수 없으며,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성과 정치적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토착성과 정복을 둘러싼 경쟁적 내러티브가 충돌하고, 호주는 테라 널리우스 모델을 기반으로 식민 지배가 전개됐으며, 미국은 정복·조약·매입을 통한 영토확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라는 또 다른 유형의 식민 경험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며, "식민성에 대한 논의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며, 각 지역의 구체적 역사성을 드러내는 것이 학문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강연은 "정복과 배제"가 아닌 "협상, 상호인정, 공존"이라는 성서적 지혜를 회복하며, 초연결 시대의 종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윤리적 지성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창세기 전승이 보여주는 지역 간 상호성, 다층적 정체성, 토착적 지혜는 미래종교교육의 핵심 토대가 될 관계 기반의 세계관을 구체화한다. 또한 성서 텍스트와 국제법, 원주민 권리, 식민 경험, 정치적 상상력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며, 종교교육이 텍스트 해석을 넘어 세계해석과 실천적 대응을 위한 학제적 역량을 갖추어야 함을 환기했다.
강연을 기획한 임성욱 교수는 "이번 강연은 성서와 현대 사회-특히 식민성, 국제법, 정체성의 문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며, "연구자의 책임성과 현실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번 강연이 한국과 호주, 국제 학계 사이의 새로운 학술 교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브렛 교수의 최신 저서로는, 『하나님의 자리: 히브리 성서의 정치신학』(Locations of God: Political Theology in the Hebrew Bib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9)과 『원주민 권리와 성서의 유산: 모세에서 마보까지』(Indigenous Rights and the Legacies of the Bible: From Moses to Mabo, Oxford University Press, 2024)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