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최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핵심으로 한 제주평화인권헌장을 선포한 가운데, 이를 계기로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인권 존중의 상징적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행정적 기준으로 활용될 경우 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는 지난 10일 10장 40조로 구성된 제주평화인권헌장을 공식 선포했다. 헌장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4·3의 진실을 알 권리와 기억·회복의 권리,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권리 등이 담겼다. 이 가운데 제2조에는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출신 지역과 국가, 혼인 여부, 가족 형태, 성적지향, 임신 또는 출산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됐다.
제주도는 해당 헌장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도정 운영 과정에서 인권 존중의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선언적 성격의 헌장이 행정 전반에 적용될 경우,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제정 논의 과정에서 일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제기돼 왔다. 이들 단체는 차별금지 조항의 범위와 해석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해 왔다. 반면 인권·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차별 예방 차원에서 헌장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유사한 논의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어진 바 있다. 서울시는 2014년 시민 참여 방식으로 인권헌장 제정을 추진했으나,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둘러싼 의견 차이로 최종 선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라남도 역시 인권헌장 선포를 검토했지만, 지역 사회의 이견을 이유로 절차를 중단한 사례가 있다. 현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인권헌장을 운영 중인 지자체로는 광주광역시와 충청남도 등이 있다.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 이후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를 계기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인권헌장이 지역 차원에서 인권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며,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차별금지법이 처벌과 제재를 수반하는 법률인 만큼, 헌법상 기본권과의 관계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차별 방지와 기본권 보호라는 두 가치가 모두 중요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인권 보호의 취지와 함께 자유권 보장, 법적 명확성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평화인권헌장을 둘러싼 논의는 지역 정책을 넘어, 인권의 범위와 행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