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깨어남과 성장"

2025년 11월 9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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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미 6:6-8, 엡 3:14-21, 요 17:20-26)

[기도의 원칙]

9월 28일과 10월 5일 두 주일에 걸쳐서 기도를 주제로 하늘뜻펴기를 하였습니다. 첫째 설교에서는 빌립보서 말씀을 중심으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의 1절 가사 후반부는 이러합니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일을 아뢸 권리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아뢰지 않아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121편의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헛발을 디디고,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지 않으려면 주님께 아뢰고 상의해야 합니다.

두 번째 설교에서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성찰하고, 올바른 기도와 기도 훈련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잘못된 기도는 오래 할 수 없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데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의 몇 가지 원칙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그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이 해 달라는 것을 다 해 주는 부모가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자녀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가 훨씬 더 좋은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성숙한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됩니다. 바로 기도란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 때, 내 주변 환경이 매우 혼란할 때, 좀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막상 조용한 곳에 머무르면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라기보다 자기 마음속 즉 내면이 복잡하고 시끄럽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 관점과 안목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는 보지 않았던 것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이전과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며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셋째, 기도는 도피가 아니라 정복입니다. 어려운 문제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길에서 험난하고 높은 언덕을 치워달라는 것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국악찬송 213장 '주님 나의 길에서').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예수의 제자에게도 고난과 역경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은 그 고난과 역경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직면하고 넘어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듣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잘 듣는 것입니다. 잘 들을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기도의 요소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을 반성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계획한 대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몸은 행동하고 우리의 머리와 마음은 성찰합니다. 전쟁 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기려면 잘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군인 중에는 현장에서 적과 맞붙어 싸우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전략을 짜고, 상황을 살피는 장군이 있습니다. 장군의 전술이 실패하면 유능한 전투병들도 몰살하고, 장군의 전술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전투병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도 전쟁과 비슷합니다. 한편으로 열심히 일하고 도전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현장에서 땀 흘리는 것만큼 우리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우리의 삶을 되새겨 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바로 기도가 그런 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연주하시는 곡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처음에는 우리의 간구로 시작할지 모르지만, 기도를 마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에 '나의 오늘'이라는 조각을 맞춰야 '내 인생 전체'라는 그림이 올곧게 그려질 수 있습니다.

기도 시간을 따로 떼어 놓고 실제적인 방법들을 동원해서 잡념을 없애고 기도에 집중하며, 함께 기도하는 친구를 만들고, 좋은 기도의 모델을 찾아 배우고, 기도 제목들을 잘 정돈하고 관리하면서 성경과 성령에 의지해서 기도한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우리 존재가 변할 것입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예수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 했던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교인들 또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간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식을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몸소 체험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미가서 말씀이나 요한복음의 예수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 몸을 이루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한 몸이 될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를 사랑하시고,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듯 그래서 하나님 안에 예수께서 계시고, 예수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듯이, 모든 교인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모든 교인 안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 달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미가 예언자 또한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이제 기도의 목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기도의 길로 말하자면, 기도는 자기를 '정화'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어두운 밤들이 있지만, 그 모두를 견디고 이겨내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면, 하나님과 동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현장 학습 프로그램으로 키자니아라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키자니아라는 곳은 어린이들이 현실 세계의 직업을 체험하며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경험하게 하는 직업 체험형 테마파크입니다. 승무원, 소방관, TV 앵커, 패션모델, 연예인 등 90여 개의 실제 직업들을 체험할 수 있고, 일을 하면 키자니아의 자체 화폐인 키조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물건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그곳에 가게 되었고, 제 아내가 도우미로 함께 따라갔습니다. 대여섯명씩 조를 이루어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하는데, 아이들이 전부 돈을 버는 대만 관심이 있고, 돈을 쓰는 곳에는 거의 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돈을 꼭 쥐고 계속해서 돈을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는 모습에 제 아내가 살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가짜 돈이기에 키자니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에 돈을 쓸 수 있도록 백화점 비슷한 곳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곳에서 막상 물건을 사려고 하면 물건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대여섯명 모인 중에 한 아이가 돈을 전부 모아서 함께 물건을 구입하자고 제안했지만, 자기가 번 돈이기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선뜻 내놓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번 돈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그 실망감에 허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내가 매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업 체험을 시도했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이 경험한 것은 열심히 노동한 대가라는 것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허무하고 허탈한 결과를 낸 것이지요.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언론에서 한창 회자 되는 각종 사기 범죄들을 보면 그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돈이 주인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기에 속아 넘어가고, 또 속이면서 무력감과 불안, 허탈함에 빠져듭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섬긴 인간이 겪는 현실입니다. 인간미는 사라지고 서로 불신하고, 분노가 들끓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 대신 돈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미가 예언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더불어 공의를 실천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공의를 실천하고, 진짜 사람을 사랑하려면 역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돈이 주는 거짓 환상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돈이 없어 생긴다고 생각하는 괴로움, 돈이 있어도 느끼는 허탈함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향린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삶을 잘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어떤 생각에 물들어 갑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마저 상품처럼 취급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참된 삶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거기에 속아 넘어갑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이런 모든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함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속사람이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인격의 중심, 인간의 '마음'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 감정이 모두 여기로부터 나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속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거룩한 영으로 강건해지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깊은 신앙을 가진 선배들의 공통된 증언은 하나님이 우리의 호흡보다, 감정보다, 의식보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안과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남과 성장, 한국 개신교의 성숙을 위하여]

그리스도교를 포함하여 모든 위대한 종교 전통에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 바탕"에 직접 가닿는 '깨어남'의 체험이 있습니다. 심지어 샤먼 전통에도 신이 들리면 일상의 자기를 넘어서는, 제한적이고 옹졸한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합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과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하는 합일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이들도 첫 시작은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끊임없는 잡생각과 수다에 시달리지만, 깊은 기도 속에서 존재 그 자체를 만나고, 개체인 내가 전체이자 원래 그 전체와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우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깨어남"이라고 부르는데, 깨어남의 상태가 되면 순간에서 무한을 느끼고, 시간이 사라지는 영원의 자리, 순수한 현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이들은 죽음을 넘어선 절대 생명을 일순간에 마주치게 됩니다. 불가에서 흔히 던지는 선문답에 "태어나기 전, 너는 누구였느냐?"(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是甚麼?)라는 질문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지를 체험한 자의 언어입니다. 이런 종교체험을 그리스도교적 언어로 표현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시듯, 우리 또한 없던 적이 없고, 앞으로 없어질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체험은 실로 엄청난 체험이고, 이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이 체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에 이 체험은 영향을 끼칩니다. 궁극적 실재와의 만남과 합일의 체험은 자신이 이전에 보던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궁극의 하나님 체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성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천 년 전에도 이런 깨어남과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땅은 평평하고, 해가 떠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돈다고 생각 못 하지요.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치를 경험했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세포나 원자,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몰랐고, 노예를 해방하거나, 여성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구원과 열반을 얻었다고 고백할 수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매우 낮은 지적 단계나 자기중심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궁극의 체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배움을 통한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성장과 성숙이 없다면 하나님 체험도 조악하고 편협한 의식의 단계에서 작동하고, 좀 더 보편적이고 포용적이고 열려 있는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발달된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그러한 단계에 발을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궁극의 체험은 우리의 삶 안에서 보다 높은 차원을 통합하면서 고매한 인격과 전문적인 지식과도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한국 개신교의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이런 면에 관심을 두고 우리가 먼저 길을 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우리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인해 염려와 불안, 자기 연민, 자격지심, 열등감, 두려움, 섭섭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지니신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너비와 길이를 알아 가는 데 온 힘을 다합시다. 참된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이 짧은 인생의 시간이 우리의 욕망이나 분노, 허영심을 성취하려고 발버둥 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가는 시간으로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주기도문 노래나, 향린 신앙고백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인 우리 교회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들,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온 세상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몸짓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당신의 나라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 향기로운 이웃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만드실 때 소를 만드시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60년을 살아라. 수명을 길게 주었으니, 그 60년 동안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60년은 너무 깁니다. 30년만 살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개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길, "네게는 30년의 수명을 주겠다. 그 30년 동안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켜야 한다." 그러자 개도 "30년은 너무 깁니다. 15년만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원숭이를 만든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네게도 30년의 생명을 주겠다. 그 30년 동안 사람들을 위해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러자 원숭이도 반기를 들었습니다. "30년은 너무 깁니다. 저도 15년만 살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시고는 "너는 25년만 살아라. 단, 너의 수명이 짧으니 너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하나님께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저에게 다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8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5년 동안은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고,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살부터 55살까지 소같이 일만하고, 퇴직을 한 뒤에는 개가 버린 15년으로 '집을 지키며' 살고 원숭이가 버린 마지막 15년 동안은 손자 손녀 앞에서 원숭이처럼 재롱을 떨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건강해서 100세를 바라본다고 하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이래저래 시간을 다 보내고 나면 정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참되고 뜻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주님과 동행하시며, 삶이 기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영원한 신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에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주님만이 소망이시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참 자유인만이 사랑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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