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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교의학 말미의 부속 항이 아니다"

숨밭 김경재 교수 추모 공동학술대회 열려...전철 박사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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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숨밭 김경재 교수 추모 공동 학술대회가 지난 31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소재 경동교회 장공기념홀에서 열렸다.

숨밭 김경재 교수 추모 공동 학술대회가 지난 31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소재 경동교회 장공기념홀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전철 박사(한신대 교수, 조직신학)는 특히 숨밭 김경재 교수의 성령론을 그의 강의록을 중심으로 살피며 숨밭의 문화신학에서 성령론이 지니고 있는 위상을 "교의학 말미의 부속 항이 아니라 경험(해석과 초월의 이중 구조), 삼위일체(상호내주), 종말론적 생명(미래의 현재화)을 매개하는 구조적 관문으로 기능한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전철 박사에 따르면 숨밭 성령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첫째로 성령은 교회 제도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자유로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점이다. 전철 박사는 "이는 성령이 특정한 제도적 울타리나 성례전의 틀 안에 가두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며 "숨밭은 교회가 상령의 통로일 수는 있으나 성령을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성령론의 공적 성격과 보편성을 회복하려 하였다"고 밝혔다.

둘째 성령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넘어 해석을 초월하는 사건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전철 박사는 "이는 경험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나 심리적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인간의 언어와 해석의 지평을 넘어 돌파하는 사건임을 뜻한다"며 "종교적 경험은 단순히 내면적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초월의 차원에서 하나님과 조우하는 사건이다"라고 했다.

셋째 성령의 종말론적 희망의 차원을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전철 박사는 숨밭에게서 "성령은 억압된 공동체를 해방시키고 교회의 권위주의를 심판하며 파괴된 자연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영으로 작용한다"며 "따라서 성령론은 개인의 구원과 영적 체험을 넘어 역사적, 우주적, 공간적 차원에서의 변혁과 희망을 선포하는 신학적 토대가 된다"고 했다.

이어 숨밭이 경험과 사건, 삼위일체와 상호내주, 창조와 창발, 종말과 해방이라는 주제들을 서로 연결하며 성령을 "경험-삼위-종말의 축을 따라 재구성한다"고 평가한 전철 박사는 "(숨밭의 신학에서)경험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상태가 아니라 공동체적, 우주적 사건이며 삼위일체는 성령의 고유성과 자유를 보중하는 틀이며 종말은 성령을 통해 현재화되는 하나님의 미래가 된다"고 분석했다.

현대 신학의 주요 흐름에 대한 대화와 비판 속에서 숨밭의 성령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음도 주목했다. 숨밭은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슐라이어마허에서 출발해 바르트, 틸리히, 몰트만에 이르는 신학 논쟁의 지평을 깊이 인식했고 이를 토대로 자기의 나아갈 길을 분명히 했다는 게 전철 박사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숨밭은 슐라이어마허는 경험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주관주의의 위험을 낳았고 바르트는 경험을 배격하며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를 강조했으나 성령의 자유와 우주적 사역을 축소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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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전철 박사(한신대, 조직신학)가 발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전철 박사는 "숨밭은 자신의 성령론의 관점에서 바르트의 장단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며 "그는 바르트의 업적을 존중하면서도 성령을 지나치게 그리스도 중심의 틀에 가두어버린 것을 비판한다. 바르트에게 성령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증하는 기능적 역할로 축소되었으며 그 결과 성령의 독자적 위격성과 우주적 사역은 가려졌다. 숨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령론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보았다"고 했다.

숨밭은 특히 종교 체험과 관련히 틸리히이 해석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틸리히는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을 단순한 감정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존재 자체와의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파악했다. 이른바 절대의존감정이 인간 존재의 구조적 조건이라는 입장이었다. 전철 박사는 "이러한 해석은 슐라이어마허의 주관주의를 교정하면서 경험의 존재론적 깊이를 드러내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전철 박사는 그러나 "숨밭은 틸리히의 해석을 긍정하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며 "그는 경험을 단순히 존재론적 구조로만 규정할 경우 경험의 사건성이 축소될 위험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자유로운 현존 속에서 경험이 사건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전철 박사에 따르면 숨밭의 신학적 관심은 경험과 계시를 대립시키지 않고 성령의 사건 속에서 통합하는 것이었다. 전철 박사는 "(숨밭은)경험을 단순히 인간 내면의 자료로 삼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 경험 속에서 사건으로 일어난다고 본다"며 "이렇게 해서 그는 슐라이어마허의 주관주의와 바르트의 객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고 했다.

경험은 계시를 대체하지 않으며 계시는 경험과 무관한 추상이 되지 않는 제3의 길은 "성령의 사건 속에서 계시는 경험을 통해 현재화되고 경험은 계시의 사건으로 심화되는" 길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문제제기는 몰트만의 신학적 관점과 연결된다고 전철 박사는 분석했다.

'화해와 창조의 영'으로 성령을 강조하는 몰트만은 교회와 세계를 넘어선 우주적 차언에서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전철 박사는 "숨밭은 몰트만처럼 성령의 우주적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경험의 사건성을 더욱 깊이 부각시킨다"며 숨밭이 경험의 현재화를 강조한 측면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전철 박사는 "(숨밭은)슐라이어마허의 경험 강조를 받아들이되 주관주의를 넘어서고자 했고 바르트의 계시의 중심성을 존중하되 계시로 인한 경험 지평의 축소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했으며 "틸리히의 존재론적 통찰을 수용하되 사건성을 더하였고 몰트만의 우주적 성령론을 이어받되 경험의 현재화를 강조했다. 그 결과 그의 성령론은 경험과 계시, 주관과 객관, 내재와 초월을 통합하는 성령 이해를 지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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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박일준 박사(원광대)가 논평하고 있다.

이어 논평을 밭은 박일준 박사(원광대)는 숨밭 성령론의 남겨진 과제에 대해 논했다. 그는 특히 "'비인간에로의 전회'(the Nonhuman turn) 시대에 숨밭의 성령은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요소들을 담지하고 있다"며 "몰트만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피조세계의 비인간들을 향한 해방의 영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령경험은 여전히 인간의 성령경험이라는 기본 사실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어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로 불거진 비인간들의 행위주체성은 성령과 어떤 신학적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라며 "특별히 생물체를 넘어 무기물적 과정들과의 얽힘을 통해 구성되는 가이아의 기후체계 같은-생물도 아니고 무기물질도 아닌 시스템적인-비인간 객체들에 대해서 숨밭의 성령론은 어떤 해석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그는 '비인간적 전회'를 겪고 있는 오늘 시대의 현실에서 인간 경험에 대해 재서술했다. 박 박사는 "이제 '인간 경험'은 인간 유기체의 개인적, 문화적, 전통적, 집단적 경험만을 포괄하지는 않는다. 모든 존재는 '얽힘'(entanglement)의 작용 안에서 '내적-작용'(intra-action)하며 행위자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이는 곧 인간 경험이 비인간 존재들의 경험들과 끊임없이 얽혀 함께 '내적-작용'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철은 숨밭의 성령론이 계량화되고 관측가능한 자연철학적 관찰 경험 너머의 사건적 혹은 실존적 경험의 지평에서 초월의 난입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며 "이러한 성령경험에 대한 서술은 우리의 철학과 인문학이 '비인간적 전회'를 겪기 이전에는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정치적 행위자로서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고 비인간 행위주체들이 가이아의 근본적 작용에 함께하여 '삼포이에시스'의 작용을 일구어 가고 있는 시대에 숨밭의 경험 개념은 재정의를 요구받을 듯하다"라고 전했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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