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교회의 사명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데 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오월 광주, 기억과 무등(無等)의 신학> 컨퍼런스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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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대 제공)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오월 광주, 기억과 무등(無等)의 신학> 컨퍼런스 개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4단계 BK21 어깨동무사업(팀장 임성욱 교수)이 주최하는 <오월 광주, 기억과 무등(無等)의 신학> 컨퍼런스가 최근 연세대 원두우 신학관에서 열렸다고 주최측이 28일 밝혔다. "종교, 역사와 지역사회를 다시 잇다: 폭력, 트라우마,(초)연결"을 주제로 진행되는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컨퍼런스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교회의 증언과 연대를 새롭게 성찰하고,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살리며,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오늘의 신학적 과제를 모색했다.

전 호남신학대학교 교수이자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무총장인 최상도 목사(신학), 호남대학교 박용범 교수(신학), 박신향 교수(사회복지상담)가 각각 "1980 오월 광주: 폭력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과 연대", "트라우마와 죄의식의 기억을 넘어, 무등(無等)세상을 향해," "트라우마에서 회복과 평화의 영성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최상도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개신교가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복원하며, 침묵과 용기 사이에서 작동한 '신앙의 양심'을 조명했다. 전국 1,642개 교회의 설교문·주보·당회록을 조사한 그는, 당시 1980년에 존재한 113개 교회 중 64곳이 "자료 없음", 22곳이 "열람 불가"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기억이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교회의 침묵과 증언의 역사를 함께 복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어 광주의 교회들이 점차 침묵을 깨고 신앙적 연대 속에서 고통에 동참하며 증언한 과정을 설명했고, 나아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초국적 교회 네트워크가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WCC는 1980년 8월 제네바 중앙위원회에서 한국 문제를 공식 안건으로 상정하며, "한국 기독교인의 정의와 인권 수호에 대한 헌신에 감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또한 5·18 희생자 193기(基) 중 129기의 묘비에 개신교 신앙이 표기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5·18은 정치적 사건임과 동시에 신앙 공동체의 희생사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단지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역사적 증언의 현장"이었음을 강조하며, 교회의 자료와 증언을 통합한 '5·18 신앙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박용범 교수는 '무등(無等)신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신학적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5·18의 시민들이 보여준 저항을 "군부 독재에 대한 정치적 반응이라기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몸을 내어놓은 그리스도교 공적 신앙의 실천"으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광주가 보여준 신앙의 정신을 "위계가 없는 세상, 곧 무등(無等)의 세상"으로 표현하며, 차별과 억압을 넘어선 평등의 영성을 강조했다.

또 무등의 영성이 호남 기독교 전통 속에서 이어져 왔음을 설명하며, 이를 '케노틱 디아코니아 프락시스(Kenotic Diaconial Praxis)', 즉 "자기 비움을 통한 섬김의 실천신학"으로 명명했다. 그는 "하나님은 억눌린 자와 함께하시는 분이며, 교회의 사명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데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신학이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흐름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교수는 오직 진실만이 치유와 화해를 가능케 한다며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5·18의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상흔이 아니라 오늘의 신학과 교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박신향 교수의 강연은 5.18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에 초점을 맞춘다. 5·18 민주화운동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이 파괴된 사건"으로 규정하며, 개인이 겪은 고통과 상처의 치유를 신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특히 "트라우마가 가져오는 이중의 침묵," 즉 외부적으로 강요된 침묵과 내면의 고통으로 인한 침묵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회는 피해자들에게 충고나 해석을 서두르기보다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고 경청을 통해 그들의 기억과 언어가 회복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끌어안고 치유하며, 성장의 길로 안내해줄 깊은 기독교 영성 전통을 소개했다. 그는 "신앙은 고통을 부정하는 힘이 아니라, 고통을 품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라며, 오월 광주의 상처를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컨퍼런스를 기획한 임성욱 교수는 "5·18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신학과 교회가 함께 응답해야 할 신앙의 과제"라며 "당시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은 신학의 사명이자 교회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신학과 교회가 지역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연대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이지수 기자 libertas@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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