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전철 교수 "숨밭의 성령은 미래를 여는 종말론적 사건"

2025 「신학사상」 가을호에 숨밭 김경재의 성령 이해에 대한 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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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국신학아카데미 제공)
▲전철 한신대학교 신학부 교수(조직신학)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숨밭 김경재(1940-2025)의 미출간 강의 『성령론』(1997)을 분석하며, "성령은 더 이상 조직신학의 부속 항목이 아니라, 교회와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중심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근대 신학이 잃어버린 '경험'의 가치를 회복하고, 성령을 교회 제도의 틀을 넘어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전철 한신대학교 신학부 교수(조직신학)는 최근 「신학사상」(2025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숨밭 김경재(1940-2025)의 미출간 강의 『성령론』(1997)을 분석하며, "성령은 더 이상 조직신학의 부속 항목이 아니라, 교회와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중심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전 교수는 근대 이후 신학이 자연과학적 인식론의 영향 아래 '경험'을 재현과 검증 가능성으로 한정하면서 성령의 역할을 내면적 위로로 축소했다고 지적한다. 성령은 교회의 제도 속에서 성자의 보조자나 윤리적 각성의 근거로만 이해되었고, 종교적 체험은 '비합리적'이라 배제됐다.

숨밭 김경재는 이러한 흐름에 맞서 경험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복권시켰다. 그에게 경험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해석과 초월이 교차하는 사건이다. 인간은 세계를 해석을 통해 경험하지만, 그 경험의 순간에는 인간의 언어가 붙잡을 수 없는 초월의 차원이 함께 작동한다. 숨밭은 바로 이 초월의 현장에서 성령의 사건적 현존을 본다.

숨밭은 성령을 단순히 '내면의 위로자'로 보지 않는다. 그는 구원 경험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사건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는 과거의 교리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자유로운 현존 속에서 구원이 '지금' 발생하도록 매개하는 행위다. 교육 또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은혜가 현재화되어 학습자가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에게 종교적 체험의 진정성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 정의, 생명 확장의 열매로 검증된다. 성령의 체험은 사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공적이며 공동체적 사건이다.

숨밭의 성령론에서 성령은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회는 성령의 통로일 수는 있어도 소유자는 될 수 없다. 성령은 민중의 삶과 해방 운동 속에서, 자연의 회복과 생명의 질서 안에서 역사한다. 또한 성령은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종말론적 힘이다. 종말은 내세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리 도래하는 사건이며, 성령은 억압된 공동체를 해방시키고 세계를 새롭게 하는 변혁의 영이다.

전 교수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는 개혁교회의 기도가 곧 하나님의 현존 사건을 고백하는 언어라고 해석한다. 성령은 공간적이며, 인간의 삶과 피조 세계 전체 속에서 자유롭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숨밭은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이 신앙 경험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주관주의의 위험을 지적한다. 바르트의 계시 중심 신학이 인간 중심주의를 극복했지만 성령의 자유를 협소화했다고 보고, 틸리히의 존재론적 해석과 몰트만의 우주적 성령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 결과 숨밭은 경험과 계시, 주관과 객관, 내재와 초월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성령 이해를 제시한다. 성령은 그리스도나 교회의 부속 기능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상호내주 속에서 세계를 갱신케 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영이다.

전 교수는 숨밭을 토착화 신학과 민중신학, 그리고 문화신학을 잇는 사상가로 본다. 그는 역사와 해방의 문제의식을 잃지 않으면서 종교 경험, 상징, 자연을 포괄하는 문화신학의 지평을 확장했다. 숨밭의 성령론은 경험(해석과 초월), 삼위일체(상호내주), 종말(미래의 현재화)을 매개하며, 한국 신학이 역사적 현실성과 보편 교회 전통을 조화시키도록 만드는 중심 축으로 작용한다.

숨밭의 성령론은 결국 송영(Doxology)으로 귀결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은 인간을 낮추는 금욕적 구호가 아니라, 인간이 우상으로부터 해방되고 참된 인간다움을 회복할 때 드러나는 영광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풍성하게 살아가도록 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전 교수는 이를 "성령의 송영은 인간의 자기비하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충만한 구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요약한다. 숨밭에게 성령은 인간과 세계를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로 회복시키는 자유와 해방의 영이며, 그리스도교 신학의 마지막 지점은 결국 찬미와 송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번 연구는 숨밭의 강의를 통해 성령을 단순한 교리의 요소가 아닌, 교회와 세계를 변혁하는 사건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험을 성령의 사건으로 복원하고, 교회 중심의 신학을 세계와 역사,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한 시도는 한국 문화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박현준 기자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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