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2025년 8월 31일 주일예배 설교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에스겔 18:30-32, 베드로후서 3:8-13, 사도행전 1:8 -

설교문

이번 여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극심한 폭염과 열대야로 잠 못 이룬 밤이 많았습니다. 폭염 직후에는 또 극심한 호우로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가 났습니다. 교우님들의 가족이나 친지 중에 피해를 당하신 분들은 없으신지요. 사실 사람만 힘들었던 건 아닙니다. 이번 여름 폭염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가축이었습니다. 가축 약 140만 마리가 죽었는데, 이 가운데 90%는 닭입니다. 좁은 실내에 몰아넣고 키우는 밀집 사육 때문에 닭이 2025년 한국 여름의 최대 폭염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폭염 직후의 폭우라는 '원투 펀치' 식의 복합 재난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바뀌었습니다. 기후 위기가 아니라 기후 붕괴의 시대입니다. 재앙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런 시대에 고훈 목사님의 시 한 구절이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오늘의 공동 기도문으로 함께 읽은 기도 시입니다. 평생 신실한 목회자로 사신 고훈 목사님은 생전에, "시는 나의 신앙일 뿐만 아니라 나의 노래이며 나의 목숨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다수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가난이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었음을 그의 시 <이제야 알았습니다>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할 수 있으면 / 많이 걷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 반나절 한나절을 걸어 다녔던 / 내 유년의 가난이 은총이었음을 / 이제야 알았습니다. // 될 수 있으면 / 섬유질 음식으로 식단을 개선하는 것이 / 좋다는 말을 듣고 / 고구마 서너 개 / 무 잎 물김치로 겨울 점심 대신했던 / 내 유년의 배고픔이 은총이었음을 / 이제야 알았습니다. // 언제나 나누고 살아야 /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 눈깔사탕 나눠 물고 / 차마 깨물지 못한 / 눈물 같은 세월이 은총이었음을 /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풍요의 시대를 산다'라고 말합니다. 차가 있고, 음식이 넘쳐나고, 혼자 먹을 만큼만 챙겨도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그게 꼭 은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엔 가난해서 차가 없으니 무조건 걸어 다녔습니다. 반나절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걷기가 우리 몸을 지켜준 은총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차만 타고 다니니 몸은 점점 불어나고, 비만과 병이 더 많아졌습니다.

또,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고구마 몇 개, 무잎 물김치로 겨울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그때는 배고픔이 서럽게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가장 건강한 식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름진 가공식품, 인스턴트 음식이 넘쳐나서 건강은 오히려 나빠지고, 돈 들여가며 다시 '자연식'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전에는 가진 게 없으니까 눈깔사탕 하나도 나눠 먹어야 했습니다. 사탕 한 알 입안에서 돌려가며 차마 깨물지 못했던 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눔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서로를 이어주는 은총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모든 걸 혼자 다 가지려 하고,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려 하니 더 이기적이고 외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신명기 8장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12-14a)

하나님의 은총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삶, 소박한 밥상 앞에서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삶, 서로 나누며 손잡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삶,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삶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삶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삶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입니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위기입니다. 그래서 답도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다시 단순하고 따뜻한 삶으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차를 타는 대신 걷는 발걸음 하나가, 소박한 한 끼의 식탁이, 이웃과 나누는 작은 마음이 지구를 살리고 우리 자신을 살립니다. 이건 결코 불편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를 더 자유롭게,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하는 삶입니다. 은총의 삶입니다. 오늘의 이 재앙적인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는 다시 이 은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마지막 날에 세상은 불타 없어질 텐데, 우리가 환경을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인용합니다. 오늘의 신약 서신 본문인데, 다른 번역으로 읽어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천체는 불에 타서 녹아 버릴 것이며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새한글성경) 주님의 날, 곧 마지막 심판 날에 온 세상이 다 불타 없어지고 만다고 했는데 환경을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주장입니다. 잘못된 종말론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원문을 잘 읽어보면, 도둑같이 닥칠 '주님의 날'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멸절이 아니라 새 창조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9절) 했습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천체도 그 열로 녹아 버릴 것"(11절)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의만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12절)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깨끗한 생활을 하여[야]"(13절) 한다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불은 파멸의 불이 아니라 정결케 하는 불입니다. 끝장내는 불이 아니라, 섞여 있는 불순물을 모두 태워내고 본래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불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고 더러운 곳이어서 결국 완전히 폐기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오해이고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작품이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폐기 처분하지 않으시고 아름답게 완성하실 겁니다. 오늘의 교독문(이사야 65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아름답게 완성하실 겁니다. 이것이 성경의 요점입니다.

박형진 시인의 <사랑>이란 시를 읽었습니다. 시인의 공식적인 학력은 중학교 한 학기 중퇴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농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쓰는 그의 시에서는 구수한 흙냄새가 납니다. 사실 시인들은 설교자들에게 큰 영감과 통찰을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제가 토요일마다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설교문을 쓰고 있으면, 시인인 제 아내가 다가와 저를 불쌍히 쳐다보며 이렇게 놀립니다. '시인이면 한 줄로 끝낼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네!' 맞는 말입니다. 시인은 진실을 '칼날처럼' 한 줄로 말하지요. 그런데 목사들은 그 칼날이 위험할까 봐 여기에 또 저기에 천을 좀 덧대어 한참을 말합니다. 그러니 시인의 말은 가슴에 꽂히지만, 목사의 말은 교인들의 눈꺼풀만 무겁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전하는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꽂히기를 바랍니다.

박형진 시인의 <사랑>입니다. "풀 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 내 옷 앉아 함께 간다 /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 나는 /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 풀 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 여치 / 하늘은 맑고 /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 풀은 점점 작아져서 /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 비로소 나는 /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풀밭을 걸어보신 적 언제입니까? 언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풀 여치 한 마리가 날아와 옷에 앉았습니다. 화들짝 놀라기는커녕, 자신을 풀잎으로 생각하여 앉은 풀 여치 덕분에 시인이 자신이 풀잎이 되었다고 상상합니다. 그렇게 풀잎이 된 시인은 맑은 하늘과 햇살로 물결치는 들판의 바람 속을 걷고 또 걷습니다. 풀 여치가 앉은 풀잎이 되어 그렇게 걷다 보니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됩니다. 그때 그는 퍼뜩 '이 세상 속의 나'를 깨닫습니다. 세상 만물과 하나 된 자신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분 하나님 곧 만물의 아버지가 계시니,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하여 일하시며, 만물 안에 계신다."(에베소서 4:6, 헬라어 직역)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너무 멀리 계신 분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 저 멀리 계셔서 우리의 삶에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분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말씀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동시에 만물 안에 계셔서 우리의 숨결과 함께하시며, 지금도 만물을 통하여 일하시며 우리의 삶과 역사를 이끌어가신다고 선언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생태적 책임을 일깨워 줍니다. '이 세상 속의 나'가 '어떤 사랑'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만물 안에 계신다면,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는 것은 단순히 나무를 해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생명을 훼손하는 일이 됩니다. 오염된 공기, 더럽혀진 바다, 무너지는 생태계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Oikos)을 파괴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나 중심의 신앙, 인간 중심의 신앙을 넘어 만유 위에, 만유 안에, 만유를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여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제 인생 처음으로 밤새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여름이었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년 여름은 이번 여름보다 더 더울 것이고, 후년 여름은 내년 여름보다 더 더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 앞의 현실이 된 기후 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멈추지 않으면 영원히 못 멈추다'라는 사실입니다. 더는 '내일부터 잘하면 되겠지'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며 하루하루 세상이 나빠지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이제는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예언입니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 사람들은 알게 돌 것이다. /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나라는 법적으로는 사형제를 유지하지만, 1998년 이후 집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 집행이 실제로 이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에 사형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에 의하면, 사형수들의 태도는 최종심에서 사형이 확정되기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대법원 확정 이전에는 아직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니까 마구 악을 쓰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확정되면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기운이 다 빠져서 며칠 동안 꿈쩍도 안 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지나고 나면 사형수는 이전과 너무도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이제 살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게 확실해진 다음에는 자기 몫의 식사를 거의 자기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감방 안에 출몰하는 쥐들이나 벌레들의 먹이로 주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눈에 띄면 바로 죽이거나 쫓아버리던 것들인데 그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피하던 쥐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마침내는 밥을 주는 사형수의 무릎에 앉기도 하고 어깨에 올라타 앉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형수는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친 것입니다.

따뜻한 햇볕 아래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눈부신 빛 속에선 굳이 다른 빛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가운 어둠 속에선 다릅니다. 숨조차 얼어붙는 밤, 길이 보이지 않는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망은 작은 불씨처럼 눈에 띕니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가장 밝게 빛납니다. 살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게 확실해진 다음에 사형수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으로 인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변할 턱이 없습니다. 경고는 이미 여러 번 내려졌습니다. 작년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한 최초의 해로 기록되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미 '빨간 경고'(red alert)를 발령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이번 여름, 우리는 그 불길한 징조를 곳곳에서 보았습니다.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이 차가운 어둠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살길이 열릴 겁니다.

지금의 기후 재난은 탐욕과 죽음의 길에서 생명과 평화의 길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욕심과 폭력성이 오늘의 이 재앙을 낳았습니다.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성서가 말하는 회개(悔改)는 단순한 회심(悔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뉘우치고'[悔] 삶을 '고쳐야'[改] 회개입니다. 뉘우치기만 하고 삶을 고치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좌회전이나 우회전이 아닙니다. 완전한 유턴(U-Turn)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30-3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하나님의 은총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삶, 소박한 밥상 앞에서 진심 어린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삶, 서로의 손 잡아주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삶,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그 '은총의 삶'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입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미래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바로 그 은총이 삶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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