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거인의 나라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거인의 나라

                                                                                                                                           신경림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

큰 소리만 듣는다

큰 것만 보고 큰 것만이 보인다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는다

그리하여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

큰 소리가 땅을 뒤덮었다

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를 않는

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를 않는

그래서 작은 것 작은 소리는

싹 쓸어 없어져버린 아아

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

시인(1936- )은 평생 민중의 삶의 척박한 현실과 그들의 의지를 서정적인 어조로 읊었다. 민중이란 말에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의 심상이 어려 있다. 그의 시를 살펴보면, 소위 피지배층의 "작은 것 작은 소리"가 두드러진다. 농촌에서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농무>)를 짓는 현실, 도시 빈민의 삶의 현장("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 <원격지>), 버려야 할 것을 부여잡고 버둥거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떠메고/ 뻘뻘 땀 흘리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뗏목>), 비루한 현실("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그리고 당시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민요 등으로 일관되다. 관심을 끌기에 너무 작은 이러한 소리들이 무슨 저항이 될까 싶다. 그러나 큰 소리가 일상어인 상황에서는 작은 소리가 의도적인 저항일 수 있다. 이 시는 그 작은 소리 안에 절제되어 있는 진실의 소리를 들려준다.

시인이 살던 시절이나 현재도 달라진 것이 별반 없는 영역은 정치이다. 정치는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 큰 소리만 듣는" 영역이라 규정할 만하다. 그 영역에 들어서면,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기]" 때문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반공, 민주, 통일, 자유, 평등, 공정, 정의 등 큰 소리들만 외쳐댔고 지금도 그 진동이 여전하다. 정치는 그 진동을 먹고 산다. 그런데 그 진동은 정치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제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으로도 전달되었다. 온 나라가 "큰 소리"로 뒤덮였다. 결국, 사람들은 "큰 것만 보고 큰 것만이 보[이는]" 세상을 살게 됐다. "그리하여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 큰 소리가 땅을 뒤덮었다."

이런 상황은 어느 개인 때문이라기보다 권력 자체의 속성 때문에 초래되었다. 모든 사람이 권력에의 의지를 갖고 있으므로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를 않는/ 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를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에서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으므로 실체는 있으나 사실상 "작은 것 작은 소리는/ 싹 쓸어 없어져버[렸다]." 시인은 그 세상을 "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라고 칭한다. "거인의 나라"에서는 키 작은 자가 살 수 없고 작은 목소리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원인을 따져보자면, "우리들의 나라"는 큰 소리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큰 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잊혀져버렸다. 커다란 은행나무만 보일 뿐 그것이 작은 은행알 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그렇게 과장된 허우대가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 본질적 가치는 잊히게 되어있다. 이는 큰 소리를 지향하는 사고가 습관화된 결과이다. 그 습관이 집단무의식이 되어 사람들의 사고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종의 상황이 대인관계에 적용되면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가스라이팅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기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든다. 그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정신적 황폐를 초래하고 결국 그를 파멸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큰 소리만 들리므로 그 소리만 옳게 여기고 결국 자신이 작은 자인 것을 잊어버린 채 자기의 소리를 듣기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정치 등의 거시적 영역뿐만 아니라 가장 친밀한 관계, 가정, 그리고 종교계에서도 벌어진다. 어디든 권력이 피지배자를 대상으로 상황을 조종하게 되면 피지배자는 조종자의 의도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그 권력이 선한 의도를 지닌 때도 문제이지만 악한 의도를 갖고 있을 때는 피지배자가 겪게 될 상처나 후유증의 여파가 평생 지속할 수 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의 상황이 그러했다. 당시의 종교권력은 면죄부를 판매하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교황이 연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교리까지 만들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허락되는 것인데도 돈이나 선행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쳤으니 교황을 신의 자리에 올린 것이다. 이것이 당 시대의 "큰 소리"였고 이 "큰 소리"가 세상을 울릴 때, 복음의 "작은 소리"는 그 "큰 소리"의 합리화에 복무하도록 왜곡됐다. 그 "작은 소리"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이 실려 있는 사실이 "싹 쓸어 없[어져]"버린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복음을 왜곡하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이유는 교회 제도나 외형적인 조건들의 조종에 교인들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자유의지는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중 하나이다. 따라서 교회는 교인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자율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교회는 복음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비록 "큰 소리"가 압도하는 현실에서 그것이 "작은 소리"에 불과하더라도 본질과 정체성과 진리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교육은 자유의지가 선한 길을 선택하도록 '조종'하는 역할을 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그 교육은 교인들의 자유의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와 교인,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스라이팅의 문제는 지배 권력을 쥔 존재가 먼저 성찰해야 할 과제이다. 가스라이팅은 원하는 목적을 편리하게 얻게는 하겠지만, 조종당한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박탈되고 정체성 자체가 물리적으로 "작은 것 작은 소리"가 되어버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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