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누꼬?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누꼬?

                                                                                                                                              권선희

누가 왔나? 와 저래 문이 달캉거리노?

아부지요 태풍 아잉교 테레비에서 이따만한 기 온다꼬 하데요

뭐라꼬? 아고 그라믄 우야노 니 배 단도리 했나?

단디 잡아 맸니더 아부지는 걱정이나 붙잡아 매소

문디 지랄났다꼬 또 오나 지지한 기 오믄 마 안 오이만 몬한기라

기왕 올라카믄 대판 와가 속을 화딱 디비야 뭐시 오징어라도 와아아 몰리오재

글게 말이시더 이노무 종자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니더 이래 가꼬는 마캐 다 빚에 뒈질 판 아닝교

바닷속이라꼬 안 답답캤나 사램 소가지 맨키로 쌓이고 쌓이믄 고마 뱅이 드는 기라

그랄 때는 지랄 맞은 기 하나 와가 까꾸로 뒤비고 쑤시고 해야 시원해지는 기라

그래그래 다시 사는 기재

우짜든동 삼정골 나락은 비끼가야 할낀데......

시인(1965- )은 다가오는 태풍을 두고 한 촌로와 그의 아들이 나눈 대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 대화에서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불시에 위력적으로 닥칠 때 인간이 보이는 반응을 확인하게 된다. 시어가 사투리인 것은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 지역에서 시인이 직접 들은 대화를 옮겼기 때문일 수 있으나 현장감을 살리는 효과가 있다. 사투리의 지역성, 세련되지 못함이 현실의 척박함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인간의 본질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은 궁벽한 어촌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오징어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마캐 다 빚에 뒈질 판"이다. 그래서 "사램 소가지"에 "쌓이고 쌓[여] 고마 뱅이 든" 처지에 있다. 이같이 체념적인 현실 속에서 촌로는 태풍에다 감정을 이입하여 심정적으로나마 그 현실을 돌파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품고 있던 죽음의 소망(death wish)을 피력한다. "그랄 때는 지랄 맞은 기 하나 와가 까꾸로 뒤비고 쑤시고 해야 시원해지는 기라."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소망은 단순한 체념이나 절망의 표현이 아니다. 그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본심은 사실 살고자 하는 것(life wish)이다. "그래그래 다시 사는 기재." "그래그래"는 '그렇게 해야'라는 뜻이다. 태풍이 "속을 화딱 디비[면]" 오징어떼가 몰려와서 어부들도 "다시 사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태풍은 "뱅이 든" 바다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촌로는 죽고자 한 소망이 "다시 사는" 길을 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그의 인생행로에서 여러 번 맞닥뜨렸던 태풍들과 태풍과 같은 두려운 현실들을 통해 이 사실을 체득했다.

그러나 문을 달캉거리며 서서히 태풍이 다가오자, 촌로는 여지없이 "누꼬?"라고 묻는다.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서 존재 자체의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동하는 생존 본능이다. 그때는 거의 모두가 반사적으로 피난처를 찾는다. 죽어야 산다는 원리를 체득하고는 있지만, 그는 현실에서 살아남을 길을 즉각적으로 준비한다. "우짜든동" 살아남을 길이 안전하게 확보되기를 바란다. 태풍 앞에서야 그 어느 것도 버틸 수 없겠지만 배를 "단디 잡아 [매게]" 한 것처럼 삼정골 나락을 마음으로나마 "단디 잡아 맨"다. 그의 행동은 현실을 부여잡으려는 욕구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의 죽음의 소망은 현실에서 온존하려는 욕구 속에서 "지지한 [태풍처럼] ... 안 오이만 몬한기" 되어버렸다. 그 소망이 그만큼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우리는 그의 행동을 그렇게 쉽사리 재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재단하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조건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태풍 같은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태동하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현실을 붙들려고 한다. 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만 다시 살게 되는 것인지 그 운명이 얄궂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에서 죽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누꼬?"는 모든 인간이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명의 기회가 다가왔는데 그 기회에 몸을 맡기지 못하는 너는 "누꼬?"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화딱 디비[어]" "시원해지[게 될]" 기회 앞에서 "뱅이 든" 속마음을 오히려 "단디 매[려고]" 하는 너는 "누꼬?"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의 마지막 행에 찍힌 말줄임표 속에 들었다. 그 속에는 이와 같은 인생살이의 모순이 빚어내는 비애감이 숨겨져 있다.

성경에서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이러한 상황을 적절히 대변한다. 그는 미디안 족속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생존의 위협과 궁핍의 압박에 시달릴 때 사사(士師)로 선택되었다. 처음에는 하늘의 선택을 피하고 싶었으나 용기를 냈다. 결국, 그는 이방 족속을 격퇴하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그가 보인 행적은 생존욕구를 교묘하게 위장한 것이다. 그는 황금 에봇을 만들고 자식을 70명이나 낳았다. 이것은 생존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그 나름의 처방에 따른 일이다. 그리고 이 처방은 모두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합리성의 가면 아래 실행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폭풍처럼 경험했지만, 그 폭풍에 끝까지 몸을 맡기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역사적 상황을 "까꾸로 뒤비고 쑤시고 [했던]" 것처럼 자신의 삶도 그렇게 변화될 것이라고까지는 믿지 않았다. 그의 생존욕구가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현실적 방안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안타깝고 애처로운 인간형이다. 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죽음의 위기가 새로운 탄생의 기회인 것을 깨우쳐야 한다. 생존의 불안이 닥칠 때 그간의 사고방식의 습관을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 같은 일이 닥친 것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영혼을 살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회개하는 삶이 결국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이것이 "누꼬?"라는 자문(自問)에 대한 온당한 대답이다. 물론, 이 대답을 듣고서도 배를 "단디 매[고]" 삼정골 나락을 걱정하는 것이 인간이다. 말줄임표 속에 숨겨 놓은 촌로의 한숨을 누구든 쉴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면서도 그 대답을 실행할 때 생명의 힘이 새로워지는 것 또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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