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함께하는 실천 필요"

NCCK, 2024 사순절 메시지 발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총무 김종생 목사)가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 메시지를 발표했다. NCCK는 이 메시지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 노동자들의 탄식, 분단 상황에서의 적대행위, 기후위기 등 "소리 없는 몸부림과 절규로 가득 차 있다"며 "총체적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에 예수님처럼 끝까지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함께하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래는 메시지 전문.

2024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사순절 메시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활절맞이를 시작하며

위험하고 따뜻한, 사랑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5-6)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태복음 5:46-48)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에서 보듯이 인류를 향한 지구의 경고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산과 소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보복과 복수를 위해 오늘도 무수한 폭탄과 무기가 하늘과 땅으로 퍼부어져 뭇생명을 짓부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류의 행위는 단지 스스로에게만 해를 미치는 것을 넘어서 급기야 지구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 있습니다.

인류세, 바로 이러한 시대를 특징지어 구분하는 말일 것입니다. 어떤 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인간이 비인간 생명체들과 '물리적 살해'의 관계를 맺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참으로 참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플라스틱으로 장이 꽉 막힌 향유고래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과 권력과 자본의 우위를 위해 생명을 불사르는 이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올해도 우리는 사순절을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당시의 현실도 그리 평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차별과 그에 따른 생명의 경시, 권력의 비정함이 그 시대에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치·종교를 포함한 모든 권력의 무서운 폭력 앞에서도, 인간성을 잃어버린 선전선동의 왜곡과 위협 속에서도, 사람들의 미움과 오해의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선포하고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참혹하고 거친 나무 십자가 위에서 마침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때에도, 또한 지금에도 너무나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위험한 선택의 결과는 경계 밖에서 천대받는 이들, 배고프고 외로운 이들, 울며 탄식하는 이들, 외롭고 지친 이들이 눈물을 닦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생명 살림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그러나 따뜻하여 생명을 살려내는 사랑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 규명을 위해 차디찬 바닥에 오체투지로 몸을 던지며 울부짖던 부모의 외침, 불법해고와 부당한 대우로 한순간에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의 탄식, 폭력과 혐오로 점철된 갈등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절망과 슬픔, 분단 상황 속 전쟁을 부르는 적대행위, 기후위기로 고통당하는 동료 피조물들의 소리 없는 몸부림과 절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총체적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에 예수님처럼 끝까지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함께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2024년 사순절을 맞아 다시, 사랑의 길을 따르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 외의 생명을 탈생명화하는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죽음의 길을 참회하고, 작은 생명 하나를 위해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신 주님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두려워만 했던 그 길을 다시, 용기 내어 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선택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를 내려놓고 곁에 있는 이웃의 손을 잡읍시다. 다시, 우리는 사랑입니다.

2024년 2월 1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종생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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