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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혁의 통합의학 2] "의학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한재혁 목사(TLC 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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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한재혁 목사(TLC 클리닉 원장)

현대의학의 뿌리는 고대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시작된 서양의학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병원균을 이기는 항생제가 나오고, 혈액형을 분류해 수혈이 가능해졌으며, 마취제를 사용한 외과수술이 발전하면서 현대의학은 급성장을 하게 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결국 1850년에 영국의 의학잡지인 <란셋 Lancet>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신학에서 벗어난 의학"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 말 속에 사실상 '마침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떠한 학문도 신학이라는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서 신뢰성과 재현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현대의학은 과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는데, 과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한 이원론적 체계였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성장한 의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명실상부한 과학적 의학을 자부하며 상업과 자본주의가 결탁하여 세계의 주류 의학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첨단 이름으로 무장한 의학의 발전으로 병원은 대규모로 나날이 번창하고 첨단 검사장비와 신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해결 안 되는 만성 질환은 늘어만 가고 온갖 난치병이 난무하며 암환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서양 의학이 10명의 환자를 두고 고혈압이라는 같은 진단명을 내린다면, 한의학은 1명의 환자를 두고도 한의사마다 10가지 다른 진단을 내린다는 말이 있다. '병자'는 보지 않고 오로지 '병'에만 집중하는 현대의학은, 병으로 고통 받는 '인간' 중심의 의학이 아니라 '질병' 중심의 의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각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보지 않고 오직 질병과 증상에만 매달려 동일한 처방과 치료가 지속되다보니, 제약회사의 명성과 부만 나날이 높아져 간다.

항생제 남용의 결과 환자들의 간 기능은 저하되며 약제 내성을 가진 슈퍼 균이 등장하게 되었고, 진통제로 통증은 줄였지만 대신 위장병이 생기거나 면역력이 악화되게 되었다. 환경오염과 과잉 치료로 인한 의료비 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없는 병도 만들 만큼 의료 상업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현대의학이 쌓아 온 절대적인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것은 '첨단'의학이 아니라, 첨단과 진보에 대한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려다가 결국 정상세포와 환자의 면역력도 파괴하는 바람에, 암세포도 죽고 환자도 죽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은 모두 인체를 종합적으로 보지 못한 결과이다.

게다가 현대의학의 분과는 질병 중심으로 더욱 세분화되다 보니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대략 30개로 늘었고, 세부 분과는 수 백개에 이를 만큼 고도로 전문화되어 버렸다. 부분을 정밀하게 탐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생명의 전체성은 보지 못하고 있다. 인체를 분절화해서 보는 현대의학은 어떤 상황이든 수치화, 규격화해서 생물인 인간을 마치 무생물처럼 접근한다.

신학에서 벗어난 의학, 생명의 전체성을 보지 못하는 의학과 과학의 한계점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모든 부분을 합친 것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않았느냐(요한복음 10:34)"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 곧 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세기 1:27).

과대평가되고 있는 현대의학의 현실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고, 혹시 의사들이 그동안 놓친 것이 있지는 않은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기능의학이다. 어쩌면 기능의학은 신학에서 벗어난 의학에 대해, 우리 생명체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몸과 마음이라는 간절한 외침 속에서 나왔을 지도 모른다.

기능의학은 생명체의 전체성을 중요시 여기면서 현대의학을 재해석 한다. 질병이 없다고 모두 건강한 것은 아니며, 미병(未病) 상태에서도 세포들의 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영양요법과 생활요법을 강조한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이라는 한의학적 개념과 공통된 부분이 있으며, 질병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적인 진료를 추구한다. WHO의 건강의 정의, 즉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건강 상태를 모두 강조하는 의학인 것이다.

기능의학은 일반적인 현대의학 검사 외에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다양한 검사들을 사용한다. 유전자 검사(DNA genetic analysis), 자율신경기능검사(heart rate variability test), 소변 유기산 검사(urine organic acid profile), 모발 미네랄 검사(hair tissue mineral analysis)등이 대표적이지만, 이밖에도 음식 민감도 검사(food IgG sensitivity test), 대변 장내 미생물 검사, 장점막 투과도 검사, 지방산 분석 검사, 아미노산 분석 검사 등을 필요시 활용한다.

기능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식이요법의 개선이다. 환자의 검사 결과와 증상을 바탕으로 필요한 식이요법 교육(알레르기원 배제 식이, 항염증 식이 등), 부족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강하는 영양치료, 수면개선요법, 운동요법, 스트레스 관리요법, 해독요법, 명상, 도수치료, 침구요법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치료방법을 이용한다. 개인 맞춤형 영양치료를 위하여 경구 뿐 아니라 정맥 주사 영양요법(intravenous nutritional therapy)으로 비타민, 항산화제, 필수 지방산 등을 보강하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의 예를 들어 보겠다. 병원에서는 보통 정신안정제나 항우울제를 처방하는데 이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만의 질환이 아닌, 몸에 있는 뇌신경 세포의 기능이 떨어져서 발생한 신경세포 시스템 다운(down)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쇠약해진 신경세포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 생성이 저절로 촉진되면서 몸이 정상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반해 항우울제는 신경세포를 무리하게 움직여 억지로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키는 약이라 부담만 더욱 커진다. 기능의학에서는 병의 근본 원인이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여러 중금속 중독, 또는 음식과 물, 산소 등의 영양소 부족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또 다른 예로 8살 된 아이가 있었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 복통, 두통, 불면 등의 문제로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글씨도 잘 못 쓰고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었다. 음식은 패스트푸드와 단 것만 찾았는데, 피부 발진으로 몇 년째 고생 중이었다.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진통제 등을 먹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계속 재발만 반복 될 뿐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기능의학 의사가 이 아이의 소화기능과 면역기능, 영양소 부족과 에너지 대사 이상을 발견하고 해독과 수면 환경 개선 등의 치료 계획을 세웠다. 이로부터 3달 뒤 아이는 두뇌기능이 좋아져서 글씨도 잘 쓰게 되었을 뿐 아니라, 모호한 모든 증상들이 모두 좋아졌다. 이와 같이 기능의학은 이미 잘못 설계된 질환의 증상만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과 메커니즘을 찾아 돌려놓는다. 수도꼭지가 틀어져 물이 넘칠 때 바닥만 닦는 것이 아니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다.

의학은 항상 재해석 되어야 한다. 신학 역시 계속 재해석 되어 오고 있지 않았던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인 공관복음(共觀福音)과 요한복음의 관점은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다윗이 가졌던 신앙과,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가 가진 신앙,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바울이 가졌던 신앙도 모두 다 조금씩 달랐다. 바울의 로마서를 재해석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역시 구교의 신학과 달랐다. 칼빈의 신학과 칼바르트의 신학도 다르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다 다르지만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the church reformed, always reforming)는 말이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로 항상 개혁되어야 하고 재해석 되어야 한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말했듯이 과학 역시 시대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계속 이루어져 왔다. 각기 다른 심기혈정(心氣血精) 분야의 의학을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면서, 질병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의학을 펼칠 때, 비로소 전인치유가 가능한 통합의학이 가능해 질 것이다.(다음에는 기능의학과 식이요법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성경에는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언 17:22)"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마음(心)에서 시작된 근심이 기와 혈을 거쳐 물질(精)의 세계에서 뼈를 마르게 한다는 뜻이다. 글쓴이는 사람이 마음부터 몸까지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심기혈정 존재라는 인식으로 통합의학을 연구하고 있는 의사이자 목회자다. 30년 이상 진료실에서 현대의학을 펼쳐온 그는 현대의학의 장, 단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치유는 몸뿐 아니라 마음 치료가 병행될 때 비로소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글쓴이는 연세대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차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을 나왔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와 종교철학을 수학했고 현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의료고문/목사, 한국 NLP 최면교육협회 부회장, 한마음 자연치유 상담센터/ 연세바른의원/ TLC 클리닉 원장으로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통합의학에 관한 글 총 7편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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