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신앙인의 불신앙과 비신앙인의 신앙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요나서 3장 1절 - 4장 1절

[기후 재앙의 한복판에서]

태풍 카눈이 한반도 전역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오키나와와 큐슈 등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한반도에 상륙하여 큰 걱정을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큰 피해가 나지 않았고, 수도권에 진입하면서 세력이 다소 약화 되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 오전 6시 기준으로 공공시설 184건, 사유시설 177건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었지만,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큰 피해 없이 이번 태풍을 보냈습니다만, 이웃 나라들은 달랐습니다. 태풍 독수리는 중국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는 1년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고, 600년 동안 한 번도 침수된 적이 없던 자금성마저 침수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태풍 카눈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에는 또 다른 태풍 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편 지상 낙원이라 불리던 하와이에는 산불이 허리케인에 의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마우이섬 전체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북유럽 또한 역대급 폭우로 인해, 스웨덴에서는 철도 제방이 붕괴되면서 120명을 태운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있었고, 노르웨이의 가장 긴 강인 글롬마강은 50년 만에 최고 수위가 되면서 댐 일부가 파손되어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유럽 중부 슬로베니아는 한 달 치 강수가 하루 만에 쏟아져서 국토 면적 전체의 3분의 2가 산사태와 홍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국은 폭염과 토네이도로 쑥대밭이 되고 있고, 알래스카도 빙하가 녹아서 강물이 불어나고 나무와 집들이 불어난 강물에 함께 쓸려 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폭염, 산불과 홍수 등 극단적인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많은 전문가가 경고해 왔던 기후 재앙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내년과 후년 다가올 여름에 비하면 그래도 시원한 여름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류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참담하고 비극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정도가 아니라 지구 열대화가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노동환경, 도시 행정을 비롯하여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시에스타(Siesta)라고 하는 낮잠 시간을 보장하는 제도를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바로 기후 위기 때문입니다. 지난 코로나 3년 시간을 보내면서 국제질서가 크게 바뀐 것처럼 기후 위기의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생존과 직결되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회와 선교도 기후 위기에 따른 지구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2019년에 온라인 환경을 구축하고 새로운 선교 영역을 모색한 것이 지난 코로나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처럼, 당회와 목회운영위원회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머리를 모아서 기후 재앙 속 목회와 선교에 대해 다시 준비해야 합니다. 가령 혹서기를 피해서 성경학교를 한다든지, 기후 상황에 따른 유연근로제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8월이 지나고 하반기에 접어들면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서 전교인 공청회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못지 않은 사회 변화]

자연환경의 변화 외에 또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사회의 변화입니다. 3-4년 전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초거대 언어 모델이 인공지능 개발에 획기적인 기준점이 된 이후로 완전히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처럼 사유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동안 사람이 하던 많은 일들을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는 Chat GPT의 경우 번역과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 내어서, 문장 생성, 시나리오 작성, 기사 작성, 번역 등 다양한 창작 콘텐츠 분야에 활용되고, 교육과 금융, 계약서 작성, 법률 자문, 각종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개발 등에서 이미 사람을 앞서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부터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이 파업을 시작했고, 7월 14일부터는 미국 배우조합(SAG-AFTRA) 역시 파업에 동참하여서, 현재 100일 넘게 헐리웃의 모든 프로덕션은 전면 중단상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런 파업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의 확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AI가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인공지능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청년 하나를 만났는데,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이 취업 현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들었습니다. 예전 회사는 많이 알고 똑똑한 사람을 직원으로 뽑았다면,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이 상용화되면서부터는 검색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았고, 요즘에는 인공지능이 만든 다양한 앱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로 인기가 높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질은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또 우리가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환경 중 하나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올바른 지도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발달 못지않게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조절하고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자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듯이, 지금의 정부는 너무나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면서도 뻔뻔하기까지 합니다. 하계 동계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엑스포, 월드컵 등 매우 굵직한 세계적 행사를 거뜬히 치른 우리나라가 지금 잼버리 대회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고,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들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사회의 전반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기에 지금 국민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불안하고,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삶을 도모해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이 지금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교회들]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의 변화와 인공지능에 의한 사회의 변화, 정치와 경제의 난맥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고, 교회의 목회와 선교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세속화되는 사회(무종교인 63.4%)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점점 왜소화되고, 고령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는 한국교회의 생존과 유지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게 만들고, 교회에 대한 사회의 조롱과 혐오적 시선은 복음 선포와 하나님 나라 선교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단의 상황은 더 열악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교회 수는 변함없는데, 교인은 30% 이상 줄었고, 당회 없는 미조직 교회와 개척교회가 전체 교회의 40%를 차지합니다. 전임 부교역자를 두고 목회하는 기장 교회는 1,636개 교회 중 294개 교회에 불과합니다. 물론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서 매우 답답합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고 늘 도전하는 믿음 속에서만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기에, 오늘 저는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다시금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살펴보려 합니다.

제가 8월 29-30일에 충북노회 신도부가 주관하는 부흥성회에 강사로 다녀오는데, 저녁 집회는 부흥사로 사역하시는 다른 교단 목사님께서 진행하시고, 저는 오전 세미나를 담당합니다. 제가 정한 큰 주제는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고, 첫날은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무엇을 알고 깨닫게 되었나를 말씀드리려고 하고, 둘째날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한국 개신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는 이 세미나에서 나누게 될 여러 논의 중 한 부분을 다루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 요나서의 깨우침]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나서는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요나는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성경 이야기에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요나"하면 고래 뱃속에 들어간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요나서가 실제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기존의 습관으로 굳어진 우리의 신념과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우선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요나의 행동부터가 이상합니다. 예언자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전형적인 예언자의 사명을 받습니다.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이지요.(1:1-2).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1:3) 배를 타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반대 방향으로 향했고, 이내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오히려 이방인 뱃사람들이 유대인 예언자보다 더욱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깁니다(1:16). 하나님의 뜻에 따라 큰 물고기가 요나를 니느웨 땅에 뱉어 내고(2:10), 요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포를 합니다. 설교의 역사에서 가장 짧은 설교, 가장 짧은 선포입니다. 니느웨는 사흘길이나 되는 큰 성읍이었지만 요나는 하룻길을 다니면서 단 한 번 외칩니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3:4)

그런데 이 한 마디의 선포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3:5-9) 이처럼 즉각적이며 전체적이며 대규모적인 회개가 일어난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3:10)

원래 예언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과거의 사건을 소환하고 현재를 분석하여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해 경고합니다. 성서의 예언자는 보통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매우 열성적입니다. 이사야는 "누구를 보내면 좋을까?"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소서"(이사 6:8)라고 즉각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예언자라는 말은 둥근 사각형이라는 말처럼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나서에서 예언자 요나는 이런 전통을 뒤집고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고, 선포하라는 말씀도 전하지 않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죽을 경험을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왜일까요?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동쪽(오늘날 이라크의 모술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기원전 705년부터 681년까지 아시리아 제국을 통치했던 세나게립 왕의 멋진 수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르곤 2세는 722년부터 705년까지 통치하면서 721년에 북이스라엘을 약탈하여 완전히 황폐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세나게립 또한 701년 이스라엘의 남쪽 절반인 유다도 침공했던 왕이었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파괴되었으며, 그 주민들은 유배됩니다. 따라서 아시리아는 원수의 나라이고 성서에서는 아시리아를 가장 악한 곳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나서를 보면 니느웨가 악의 화신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놀랍게 요나서에서 니느웨는 하나님께 순종적입니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요나서의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믿었던 예언자는 불순종하지만, 비신앙인으로 보이던 니느웨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인가?"

[신앙인의 불신앙과 비신앙인의 신앙]

오늘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인들은 교회 출석을 근거로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나눠왔습니다. 요나가 혈연과 종족, 국적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과 이방인을 나눈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높고 깊은 뜻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대상에서 제외되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요나서에서 들리는 마지막 하나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4:10-11)

요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나누고 구별했던 모든 기준에 대해서 다시금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요나서는 놀랍게 신앙인의 불신앙과 비신앙인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신앙인이 아닌 비신앙인들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거룩한 영의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신앙인 듯 보이지만 실은 참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비신앙인이나 또는 다른 종교인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였기에 한국 개신교는 왕따가 되었습니다.

교회 출석을 신앙인의 기준을 삼으면서 교인들이 했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 또는 자신이 믿고 있는 교리나 신념 체계 안에 가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활약하시는 하나님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채, 교인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신념, 하나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공격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두가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극우적 신념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욕망의 성취를 정당화합니다. 각자가 가진 저마다의 신념에는 투철한데, 그들의 삶 속에서는 참된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태도와 자세와 행동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참 신앙이란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데, 그동안 한국 교인들은 교회의 활동에 충성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는 매우 미숙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에 충성 봉사하지만, 온유하고 겸손하며 약자들에 대한 공감 어린 마음을 키우지는 못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열심 있는 믿음으로 존경을 받지만, 회칠한 무덤처럼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하게 비판하셨던 바리새인들의 위선적 모습이 바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교인들의 삶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부활은 성숙한 교인들의 일상의 삶에서 드러나는 선한 행위, 그의 인격에서 풍기는 품위와 고결함, 고난과 고통, 억울함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인내의 모습 속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교회 교황 시릴 6세의 법률 고문이자, 평신도 지도자로 활약했던 아델 베스타프로스(Adel Bestavros)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참아 주는 것은 사랑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희망이며, 하나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다." 한국교회는 자신의 일상의 삶에서 다른 이들을 참아주고, 자신을 믿어 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참아내는 이들을 통해서만 갱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보다 크십니다. 그리스도교 밖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비신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자기 뜻을 펼치십니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가 불신앙적인 삶을 살아갈 때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반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예수가 보여주셨던 삶의 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 소외된 이웃에 대한 적극적 사랑의 행위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사람일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 밖에서도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배타적이었던 모든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존의 종교 제도가 제공하는 신앙생활을 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은 잘못일 수 있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생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로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왜일까요? 이들의 활동은 왕성했지만 그 모두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마 7:21-23.)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 만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듣기를 바랍니다. 교회 생활도 잘하면 좋지만 무엇보다 칭찬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창조의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맛보게 하소서. 우리의 좁은 시야 안에 주님을 가두는 일이 없도록, 늘 우리 마음을 열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소중하지만,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교회에 와서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거기에서 주님께서 택하신 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소서. 참 신앙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주님 뵙는 그날까지 당차게 전진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산적한 과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둘씩 풀어가게 하시고, 자신을 열어 향기를 품어내는 꽃처럼 우리 존재를 통해 주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기후재앙으로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코로나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로 시름이 깊어지고 한숨 또한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예배할 수 있는 것, 시시때때로 신앙 교육을 받고 우리들의 믿음을 성찰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고요히 집에 머물 때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올 날들을 준비하게 하시고, 교회에 나와 활동할 때는 서로 한 마음 한 몸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모든 존재가 주님의 것이며,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굳세어지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세상에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리스도인보다도 참된 사람이 되십시오.

*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주님 곁으로 데려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생명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주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 곁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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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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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