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성탄절 설교] 메시아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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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이사야 52:7-10, 히브리서 1:1-5, 누가복음 2:10-14

설교문

얼마 전 끝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36년 만에 이뤄낸 우승에 아르헨티나 전역이 환희와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4:2로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리오넬 메시가 이끈 이번 우승은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민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큰 기쁨을 누리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올해 50%로 시작해서 약 100%로 마감할 태세입니다. 대도시에선 지난 몇 년 사이 노숙자와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합니다. 우승팀이 도착하는 날 4백만 명이 넘는 시민이 쏟아져나온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고 도시는 마비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을 품에 안은 리오넬 메시는 지금 '리오넬 메시아'라고 불리며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메시아'(משיח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One)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기름 부음을 받아 세움을 받는 직분이 셋 있는데, 왕과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입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한 직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출애굽기 29:7, 사무엘상 10:1, 16:13, 열왕기상 19:16) 헬라어(그리스어)로 쓰인 신약성서는 이 메시아를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즉 '그리스도'로 번역합니다. 그리스도 역시 기름을 붓다라는 동사 '크리오'에서 나온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례 요한이다, 아니다 엘리야다, 아니다 예레미야다'라고 웅성거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대답했는데, 여기서 말한 '그리스도가'가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이며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여럿일 수 있으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리오넬 메시아'는 찌든 일상을 살아가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잠시나마 큰 위로와 기쁨을 주겠지요. 그러나 '예수 메시아(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주시는 세상의 구세주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며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Wonderful Counselor),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 '영존하시는 아버지'(Eternal Father), '평화의 왕'(Prince of Peace)이라고 불릴 것"(이사야 9:6, 개역개정 & 새번역 조합)이라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메시아)이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바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는 놀라운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나신 예수 그리스도(메시아)는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세움을 받은 한 특별한 직책을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로서 우리의 아픔을 위로하시는 '놀라우신 조언자'로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달리셨으나 사망 권세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메시아를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찬양한 노래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난 헨델의 <메시아>는 종교 음악의 역사에서 불후의 명작이며,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음악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놀라운 것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연주에도 2시간 20분 소요되는 이 대작을 헨델이 고작 3주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아>를 작곡하는 동안 헨델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에 꼬박 틀어박혀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작곡을 위해 두문불출하는 그를 방문했던 한 친구는 감격에 차서 눈물을 흘리며 작곡을 하는 헨델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훗날 헨델은 이때의 경험을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메시아를 쓸 때 나는 나 자신이 육신 안에 있었는지, 육신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던 것만 같았습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rich Händel, 1685-1759). 그는 독일 출신이지만 생애 대부분을 영국에서 활동했습니다. 한때 오페라 작곡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56세로 당시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큰 실의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섭리와 같은 두 개의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절친 찰스 젠넨스(Charles Jennens)가 성서에 기초하여 만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오라토리오 대본을 맡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자선단체에서 자선음악회를 위한 곡을 의뢰받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합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의 초연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80년 전인 1742년의 4월 13일이었습니다. 첫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헨델은 즉각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메시아가 연주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굶주리는 자의 배를 채우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고아들을 부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한 작가의 "헨델의 생애에 관한 스케치" 중에서.) 헨델은 죽기까지 30회 이상을 직접 지휘하여 <메시아>를 연주했는데, 연주회의 대부분은 병원 설립을 위한 자선음악회였습니다. 실로 헨델은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어려울 때도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보내곤 했습니다. 헨델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음악과 그의 삶은 이 땅의 가난하고, 슬프고, 아프고, 고난 받는 이들과 언제나 함께하시는 성서의 하나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종종 자신이 성경을 음악으로 만들 때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리는지 나눴으며, 특히 시편에 나오는 기도 시들을 명상할 때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합니다.

헨델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는 부활의 날에 자비로운 주님을 뵙고 싶어서 성 금요일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헨델은 1759년 4월 14일 성 토요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3천 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여했고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이 문구를 새겨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이 문구는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제44번 곡 '할렐루야' 바로 다음 곡인 "내 주는 살아계시고"(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와 같은 문구입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서 욥기 19:25의 말씀입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나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신을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세 친구 앞에서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자신의 슬픔을 이렇게 토해냅니다.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구나.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기 19:7-21)

그런데 이 극심한 고통의 와중에서 욥은 문득 하늘을 봅니다. 퍼뜩 거기서 희망의 끈을 발견합니다. 그가 갑자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5-26) 욥은 깨달았습니다. 나의 구원자가 살아계시니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반드시 희망이신 하나님을 뵐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보십시오. 헨델의 '메시아'는 바로 이 '살아계신 구원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구원을 주시는 세상의 구세주입니다. 우리는 헨델의 묘비에 적힌 이 구절을 찬송가 170장을 통해 잘 압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 목사가 헨델의 <메시아> 제45번 곡에 작사를 붙여 우리가 부르게 된 그 찬송가 말입니다. "내 주님은 살아계셔 날 지켜 주시니 그 큰 사랑 인하여서 나 자유 얻었네. 나의 구원 되신 주님 내 소망 되신 주 항상 나와 함께하셔 곧 다시 오시리."

헨델은 <메시아> 필사본 맨 마지막에 "SDG"라고 적었습니다. "Soli Deo Gloria",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단 24일 만에 작곡한 이 불후의 명작을 그는 자신의 영광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성서가 예언하고 성취한 이 놀라운 메시아의 이야기를 성령의 감화를 받아 단숨에 쓰면서 천상의 환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헨델이 경험한 이 천상의 환희를 이제 우리 찬양대가 <메시아>를 연주할 때 여러분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욥기 19:25) 우리는 이 차갑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탄생한 메시아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로서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놀라우신 조언자'이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입니다. 그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여 우리의 참 소망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메시아)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Soli Deo Gloria!" 오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곧 여러분]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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