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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익에 끼칠 영향부터 신중히 따져야
“논란이라뇨? 무슨 논란 말입니까? 전문가들이 모두 의견 일치를 보았는걸요.” 2008년 4월 프랑스 생명의학청의 의학·과학 부국장인 프랑수아 테포는 단호히 이렇게 말했다. 직장암에 걸릴 수 있는 유전자 소인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착상 전 진단이 스트라스부르와 몽펠리에에서 실시된 참이었다. 언론의 압박을 받던 생명의학청은 아이들이 40살이 되면 직장암 발병 가능성이 100%에 달할 것이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술 사실을 정당화하려 했다.(1) 아울러 이 보고서는 몇몇 기타 암 발병 소인에도 검사를 확대 실시할 것과, 증가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착상 전 진단 센터를 추가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처음에는 아이에게 질병을 물려주는 위험을 알면서도 이를 감수할 작정이었습니다. 병에 걸리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 싶었거든요. 아이가 29살에 직장을 절단하게 될지라도 말이에요.” 직장암 발병 소인을 이유로 착상 전 검사를 신청해 허가 결정을 받은 어느 부모의 설명이다. “그런데 저만 해도 주기적으로 병이 재발하고 있는데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의 향후 발병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잖아요.” 그는 덧붙인다. “착상 전 검사를 남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문제없으니 됐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겁니다.” 2004년에 처음 개정된 생명윤리법은 뒤늦게 드러나는 질병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기술인 착상 전 진단을 헌팅턴병(일반적으로 30~45살에 발병하는 퇴행성 신경 질환)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94년 생명윤리법은 8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이 방식을 합법화했는데 그 내용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 법은 ‘특별히 심각하며, 진단 시점에 치유가 불가능한’ 질환이라고만 언급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현재 프랑스에서 착상 전 진단이 실시되는 경우는 전체 출생 80만여 건 가운데 약 30 건으로 극히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진단법은 치료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암 발병 유전자 소인 40여 종이 확인됐다. 이들을 진단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내용의 법을 마련한 영국은 이 질문에 긍정으로 대답했다. 최근에는 돌연변이 유전자 BRCA1의 전달을 막기 위한 착상 전 진단이 처음으로 실시되기도 했다. 이 유전자는 70살에 유방암을 일으킬 확률이 50~70%에 달한다. 가장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는 아일랜드·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는 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 국가들에서 착상 전 진단은 금지돼 있는데 일부 국가는 가톨릭의 영향으로, 다른 일부는 우생학과 관련된 과거사 때문에 내린 방침이다. 프랑스의 경우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연구·보건 문제 자문에 아르놀 뮈니크를 임명했는데 그는 프랑스에서 착상 전 진단 실시가 허용된 시설 3곳 중 하나인 파리 네케르 병원의 유전학과 과장이다. 유전적 결정주의 앞에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온 그가 자문으로 임명되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유전자 진단에 대해 그는 “우리가 정확히 아는 게 대체 뭐가 있습니까?”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이야 알 수 있겠죠. 하지만 해당 질병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병까지 건네받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많은 경우에 필연적으로 발병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 뮈니크 자문은 배아 연구도 반대한다. “생명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전 배아를 장기 제조 공장으로 도구화해 어떤 프로젝트에 이용할 바에는 차라리 파괴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3) 이러한 보수적 태도에 대항해 진보주의자들은 생명의학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 생명의학청은 2004년 생명윤리법 개정과 함께 유전학·출산·장기이식 등과 관련된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다. 장프랑수아 마테이 전 보건부 장관은 생명의학청에 ‘과학적 파행’이 있었다고 말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마련됐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의료진 출신이 아닌 생명의학청 간부들을 설득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종용했습니다.” 프랑스 국립 보건의학연구소의 전 연구국장인 자크 테스타르는 “정자·난자 연구보존 센터와 의학 학술원 출신자들이 잠입 공작을 펼치는” 기관이라고 생명의학청을 평가했다. 또한 “이들은 가공할 만한 로비를 벌이고, 마치 수의사 같은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자는 주의”라고 말했다. 보건부 장관은 생명의학청 초대 청장을 유임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이로 인해 연구가 중단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생명의학청의 배아연구그룹 소속 연구원이며 스트라스부르 착상 전 검진 센터의 복제 생물학 과장인 스테판 비빌은 당시 이렇게 털어놓았다. 2008년 7월 임명된 프라다 보르드나브 신임 청장은 절충적 태도를 견지하는 듯 보인다. 보르드나브 청장은 2008년 11월 25·26일에 개최된 윤리의 날 연례행사에서 “암 진단의 경우, 이미 자녀가 질병으로 사망한 적이 있는 부모에게만 착상 전 진단을 실시하기로 관련 종사자들 간에 합의가 도출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스트라스부르 센터에서는 의학적 진보가 곧 사회적 진보로 이어진다. 의료진들은 법률을 자유롭게 해석할 권리를 내세우면서 아무런 신체적·정신적 병리 현상과 관련이 없는 왜소증에 따른 이상에 대해서도 착상 전 검진 신청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의 비빌 박사는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왜소증 환자들은 엄청난 사회적 압력에 대항해야 하거든요”라며 그 이유를 댄다. 그는 개인적으로 환자들의 심리적 요소와 의학적 요소에 중요성을 똑같이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사회적 차별을 예방하는 일이 도리어 그 차별에 명분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를 의학 본연의 구실로 볼 수 있을까? 외국의 사례들을 한번 살펴보자. 인도와 중국에서는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장애다. 따라서 착상 전 진단은 남아로 성장할 배아를 선별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성감별 관행은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미국에서도 착상 전 진단이 의학 영역의 차원을 이미 넘어섰는데 그 방향은 양분된다. 한편으로는 ‘디자이너 베이비’(완벽한 아기)에 대한 요구가 있다. “미국 내 수십 곳의 출산 센터는 아무런 질병도 없는 이들에게도 착상 전 검사를 제안합니다. 배아가 최소한의 위험성만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그 목적이죠.” 의학 학술원의 윤리법률위원회 위원인 자크 미예의 설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게도 왜소증, 난청증 등 자신들의 장애를 미래의 자녀가 공유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러한 장애를 지닌 배아를 선택하기 위해 착상 전 진단을 받는 부모들이 있다! 미국의 착상 전 진단 센터들 중 3%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다.(6) 이러한 상황은 기술에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착상 전 진단을 통해 여러 배아들에서 선택하려면 시험관 수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한 호르몬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발병 위험이 높은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른바 정자 직접 주입법이라는 인공수정 기술로 탄생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중대한 기형 발생 비율이 자연 임신 출생아에 비해 거의 2배나 높다(각각 5.9%, 3.6%).(7) 아울러 시험관 수정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그야말로 ‘투쟁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임신 가능성은 15~20% 선이며 프랑스 사회보장보험은 5회 시도까지 비용을 환불해준다. 한 번 실시하는 데 드는 비용은 4천~6천 유로 정도다. 이는 누군가에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비단 착상 전 진단뿐만 아니라 의학적 도움을 받는 출산 산업 전체의 연간 매출액은 2006년 미국의 경우 30억 달러에 달했다.(8) 프랑스에서도 매년 2만 명의 신생아가 다양한 의학적 출산 지원 기술에 힘입어 탄생한다. “초산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이러한 활동은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선택에 대해 하루속히 숙고해봐야 합니다. 과정 자체가 힘겨울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도 따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학청 신임 청장은 윤리의 날 행사를 기해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활동은 낙태 찬성을 비롯한 여성운동 투쟁을 통해 굳어진 ‘현대성’과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속화됐다. 여성단체 ‘선택’의 대표인 지젤 알리미는 이를 “지적 사기”라며 비난한다. “이러한 의미 왜곡은 결코 순수한 게 아닙니다. 출산에 대한 집착은 의사, 전문 변호사 그리고 중간 관계자들에게 짭짤한 돈벌이를 제공합니다. 현대성과 미화된 출산 욕구의 허울 아래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고 거듭 환기해주는 거죠.” 생명의학 연구계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 착상 전 진단을 통해 배제시킨 배아는 질병을 모델화하고 신약을 시험하는 데 사용한다. 인공수정 때 과다 형성된 배아들은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켜주었고, 덕분에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병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2009년 1월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 제론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으로 첫 인체 임상 실험을 했다. 2001년 치료 목적의 복제를 세계 최초로 합법화한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위한 배아 제조를 허용했으며, 불임 치료 외 목적의 과학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도록 여성들을 독려하고 있다. 물론 그 목적은 치료이지만, 무엇보다 특허 출원과도 관련이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지원으로 창설된 생명과학 혁신 지원 기금인 ‘ITI 라이프 사이언스’의 프로그램 책임자인 퍼거스 매켄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임무는 많은 지적재산권을 산출함으로써 유럽 지역에서 역량 있는 산업 및 연구 조직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는 대대적인 투자에 힘입어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유럽 제1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 특허는 또한 설명된 기술이 이미 알려진 것이라며 이의가 제기되자 미국에서도 재검토에 들어갔다. 프랑스는 “이러한 경쟁에서 빠져 있다. 예외적 허가제 실시로 인해 기업가도, 벤처회사도 막대한 투자를 실시할 때 요구되는 전망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의회 산하 과학기술정책평가청은 밝혔다.(10) 당국은 배아 연구의 경우 예외적으로라도 허용하고 있지만 치료 목적의 복제와 연구 목적의 배아 생산은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112억 유로 이상 규모로 추산되는 줄기세포 시장에 프랑스가 완전히 빠져 있는 건 또 아니다. 프랑스 연구자들은 제대혈이라는 제3의 길을 보여준 장본인이다. 제대혈을 통해 이미 몇몇 질병들은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11) 이제 남은 일은 이 경쟁이 환자들을 위해 펼쳐지길 기원하는 것이다. 과도한 특허출원 전략이 관례가 돼버릴 경우에는 과연 이렇게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난 2008년 11월 28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특허출원을 두고 과열된 양상을 보이는 제약산업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동일한 약품을 두고 1300개 특허가 출원된 경우도 있다).(12) 보고서는 이러한 관행이 “혁신의 쇠퇴”와 “일반 의약품 출시 지연”을 초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사 대상 의약품들을 토대로 한 추정을 보면, 2000∼2007년에 유럽연합 17개 회원국이 과다 특허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30억 유로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13) 하지만 이러한 사실 확인은 새로울 것도 없다. 2001년 유럽특허청은 미국의 생명공학업체 미리아드 제네틱스와 유타대학에 유방암과 난소암 소인을 유발하는 BRCA1 및 BRCA2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한 특허권을 승인했다. 이로 인해 각 연구소들은 관련 테스트를 미국에서 할 수밖에 없게 됐고, 프랑스에서는 진단 비용이 3.5배나 증가했다. 번역 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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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르몽드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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