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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민] 요한 칼빈과 디아코니아

글·홍주민 교수(한신대)
발표·2009년 6월 26-27일 '제2회 기독교 대북 NGO 대회'


1. 들어가면서

한국교회에서 장로교회는 역사적인 면이나 교세적인 면이나 단연코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장로교안의 교단 수는 세계교회역사 중 가히 기록적인 면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열의 역사를 말한다. 교리는 분열을 일으키고 디아코니아는 일치를 가져온다는 언구는 이런 면에서 한국장로교의 모습에 깊은 성찰을 요한다.

개혁교회의 디아코니아에 대한 권위자인 엘시 맥키는 오늘날 교회의 디아코니아에 대해 많은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북미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개인주의적인 교회이해라 지적한다. 공교롭게도 한국 개신교가 구한말 북미의 보수적 장로교로부터 유입된 신학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아 장로교의 창시자인 요한 칼빈의 사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칼빈의 디아코니아에 관한 성찰을 통하여 한국 장로교회가 분단 상황속에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를 소망해 본다. 

본 논문은 칼빈의 종교개혁을 통한 개신교 초기 형성단계에 개신교 신학과 신앙실천이 디아코니아 형성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한 신학적 단초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신교적 정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현금의 한국교회의 섬김실천에 이론적 틀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디아코니아 개념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정리해 보고 칼빈에게 있어 디아코니아적 단초들을 밝혀 보고자 한다. 또한 그의 디아코니아에 대한 신학적 명제와 더불어 실천적 귀결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하여 논함으로, 칼빈이 의도한 신앙실천이 디아코니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함의를 재구성해 본다.

2. 복음의 소통, 디아코니아

섬김이라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디아코니아(diakonia)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단어에 대한 개념이해에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최근 들어 활발하다. 이는 섬김현장의 요구와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디아코니아는 오늘날 더 이상 곤경에 빠진 이들을 위한 도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분화되는 사회복지체계속에서 깊은 연관이 있는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디아코니아에 대한 신약성서적 근거가 중요한 학문적 주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디아코니아는 도움이 필요로 한 이들에 대한 봉사이다. 즉 19세기 중반이래 디아코니아는 이웃에 대한 봉사, 즉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디아코니아에 대한 개념은 19세기 중반 이래 독일 디아코니아 운동의 실천현장으로부터 근거한 것이다. 그리스어인 diakonein(섬긴다)/ diakonia(섬김)/ diakonos(섬기는 사람)는 신약성서에서 섬기는 기능을 표시한다. 특히 식탁에서의 봉사(막1,31)를 의미한다. 물론 막10,45에서 이러한 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범을 보여줌으로 지배적이고 위계화된 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포한다. 이 단어의 쓰임새가 단지 주변부의 것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준다.

더 나아가 사도들이 복음 선포를 위임받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즉 이 단어는 신적인 계시의 전달, 말씀 선포 자체에도 사용된다.(diakonia logou, 행6,4)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신약 성서에 있어 선포(설교)와 디아코니아(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행위로서의 섬김실천)라는 고전적인 분리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fides ex auditu, 들음으로 신앙이 생긴다고 주장하며(Augustinus부터 Bultmann에 이르기까지) 말씀선포에 오직 일방적으로 강조(diakonia logou)함으로 이웃 사랑 실천이 ‘들음’의 결과로써 생긴다는 것은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요 생명의 표현이다. 디아코니아가 말씀선포의 실천적 결과로 여겼던 고전적인 패러다임에 의한 교회이해는 이들 간의 분리를 통하여 항상 말씀 선포 다음에 디아코니아가 온다고 주장함으로 디아코니아 실천의 결핍증세 아니면 늘 한 박자가  늦게 되는 우를 범하게 하였다.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선포임무에 속한다. 동시에 디아코니아 자체가 복음의 선포이다. 왜냐하면 디아코니아는 신약성서에서 선포임무이기 때문이다.(diakonia logou) 행6,4에서 우리는 음식을 베푸는 일/ 말씀을 섬기는 일이 모두 디아코니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선포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위계적 뉘앙스로 받아들이는데 복음의 전달은 소통의 개념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지 언어 뿐만 아니라 말하는 행위, 듣는 행위와 연결된다. 가령 소통은 교회음악이나 영적 미술품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정의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복음은 우리의 몸에서 포괄적인 의미로 소통가능한 것이다.

독일 디아코니아운동 150년을 기념하며 1998년에 독일개신교연합이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의 제목은 “가슴과 입과 행동 그리고 삶”이다. 이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제목(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muss von Christus Zeugnis geben)에서 가져온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온 몸, 즉 가슴과 입과 행동 그리고 삶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으로부터 그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기 위하여 무조건 듣거나, 보거나,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증의 장애를 지닌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얼굴을 닦아주고 팔을 안고 위로해 줌으로 돌보는 수발 간호사는 그 행위 자체로 하나님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고 그 아이안에서 존엄성을 감지한다. 디아코니아의 실천과정에서 복음의 소통은 말씀, 행동, 교육, 훈련, 수발 실천 혹은 상담속에서 일어난다. 디아코니아는 화해하고, 위로하고, 상담하고, 돕고 그리고 치유하는 행동이다. 예수의 디아코니아에 있어 선포와 치유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3. 부쳐의 제자, 칼빈

칼빈은 신학적인 면이나 실천적인 면에서 마틴 부쳐(1491-1551)의 영향을 받고 그의 사상을 이어나갔다. 부쳐는 두 단계의 교회이해의 틀 안에서 하나님 존재 자체에 정초한 디아코니아를 관철하고자 했다. 부쳐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사회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고백공동체로서 존재한다. 쉬트라스부르크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한 그는 디아코니아의 필요성을 두 영역에서 강조한다. 그는 1523년 행정당국을 통해 행해지는 빈자들을 위한 새로운 규정을 만든다. 이와 함께 디아코니아적인 관련성안에서 빈자구호요원들을 임명한다. 동시에 그는 “수발드는 이 - 디아콘”을 신앙고백 공동체안에 세운다. 부처는 먼저 교회의 4개의 직제를 구분한다(박사, 목사, 장로, 디아콘).

1538년 이래 부쳐는 두개의 직제 - 영혼 돌봄과 육신적 돌봄- 를 본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디아콘직제를 통해 교구내에 디아코니아적 인식을 깨운다. 이 직제는 초대교회의 모형에 따라 구상되었고 성만찬과 상호간의 섬김의 근원지로 역할을 한다. 부쳐는 행정당국과 교회안의 수발드는 이들(사회적 디아콘직)의 봉사에서 교회의 성직수여 의미를 갖게 하였다. 동시에 그들이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교회적 의미를 되찾을 것을 요구했다. 그의 전체적 구상은 좌초되었다. 특히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의 반향의 지반이 부족했다.

4. 사랑과 신앙의 관계

칼빈(1509-1564)은 개혁교회안에 각인되어 있다. 그는 부쳐의 초기의 4개의 교회직제 구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교회이해에 있어 부쳐의 모호함을 피하였다. 칼빈에게 있어 디아콘직은 -시민적 공동체 국가의 상황에서- 사회적이고 의식적인 면에 따라 개혁되어져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종교개혁의 후발주자로, 그의 종교개혁적 구상은 종교개혁적 자유를 위한 구체적인 투쟁보다는 오히려 이를 변형시켜 나가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선행을 통한 업적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신앙으로만”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하지만 신앙의 강화를 위해 행위실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업적주의적인 행위경건에 대해 생애 내내 반대하였던 루터의 모습이 칼빈에게서는 더 이상 발견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은 선행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주신 증거”로 간주한다. 즉 루터는 행하는 이웃사랑을 “즐거운 교환”이라는 그리스도 신비의 결과이자 사건으로 강조하는 반면, 칼빈은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쯔빙글리와 칼빈의 후예들을 개혁교회파라 한다. (요한 오코라우파드, 마틴 부처, 존 칼빈, 존 녹스) 이들은 말씀과 성례전에 봉사하는 그 이상의 것, 즉 교구에 대한 도덕적 감독에 있어 교회지도부가 책임이 있다고 보면서 교인을 올바로 이끌고 가난과 질병을 돕기 위해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세상 당국은 성령으로 이끌면서 많은 의무를 함께 나눈다. 교회는 훈련, 빈자보호, 교육을 필수로 해야 한다. 칼빈주의자들은 교회적 봉사에 더 많은 임무를 부여한다.

이들에게 만인사제직에 대한 사고는 적게 강조되고 오히려 교구를 주체로, 즉 교구에게 직분의 형성이 결합된 형태로 부여되어졌다. 모든 직제와 서로 다른 섬김직들은 모든 교구를 통하여 투입되었고 단순한 직분수행자들을 통하여 수행되지 않았다. 직분들은 서열화되어 규정되지 않았고 서로 대칭하여 규정되었다. 원래 개혁교회는 섬김직제가 독립적이고 교구 내에 결속된 직제로 있었는데 이러한 성격이 잊혀져간 비운을 겪어왔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개혁교회의 신학은 당시의 세계상이 종교적이었기에 성서의 권위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날 보다 덜 다원화되었던 시대 안에서 사회가 발전되어 나왔다. 이들에게 있어 율법은 죄인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억누르고 올바른 삶으로 신앙인들을 이끈다.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 첫째는 복음, 그 다음은 율법이라 한다. 왜냐하면 의인은 진실된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배와 윤리사이의 관계에 대한 불분명함은 오늘의 개혁교회의 성격으로 지배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위에 위치하여있다(untergeordnet). 하지만 그로부터 필연적인 결과가 파생된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경애는 먼저 강조된다. 하지만 분리된 것은 아니다. 즉 칼빈에게 있어 신앙과 사랑은 통일을 이룬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서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호세아서 6,6에 관한 설교에서 칼빈은 서술한다.

5. 섬김직의 확립

1538 - 1541년까지 칼빈은 쉬트라스부르크에서 머물면서 부쳐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빈자구호를 위해 교회내에 섬김직을 설치한다. 디아콘을 포함하는 칼빈의 4직제의 교육은 부쳐에 의해 고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541년 쉬트라스부르크에서 돌아온 후 도입하고 1561년 새로이 출간된 교회규정(Ordonnances Ecclesiastiques)에서 칼빈은 이러한 인식을 변용하여 디아콘 직제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가 말하는 디아콘직은 여기에서 빈자들을 위한 자산을 관리하는 모금함 관리인(Procureurs)과 병자간호와 빈자구호를 담당하는 구호담당자(Hospitaliers)이다. 칼빈은 규정에 나오는 모금함 관리인과 구호담당자를 성서적 의미의 섬김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칼빈은 제네바에서 빈자구호를 진정한 의미의 교회의 과제로 확립하지 않았다. 1554/55년에도 그는 디아콘이 본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바를 제네바에서 모르고 있다고 진술한다. 더 나아가 모금함 관리인과 구호 담당자의 봉사가 교회적인 봉사가 아니라 세상적인 행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공적으로도 직제의 결핍된 헌신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여기에 제네바 시의회와 칼빈 그리고 다른 개혁교회 목사들로부터 고양된 성서적 모범에 정향된 공동체 규정의 실현에 대한 요구로 인한 복잡한 관계가 반영되어있다. 즉 “제네바의 신정 정치”라는 개념은 단지 미분화된 상태로 서술되어 있다. 제네바에서도 다른 곳처럼 복지행위를 시 위원회가 담당하고자 했다. 칼빈이 1555년부터 시 의회의 다수석을 점유한 이후로는 디아코니아의 봉사도 좀 더 주의깊고 효과적으로 인식되어졌다. 그리고 “디아콘”이라는 표식도 일반화 되었다.

하지만 칼빈이 근본적으로 국가와 교회영역의 관계에 있어 포괄적인 하나님주권을 강하게 강조하며 세상의 구조에 반영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칼빈주의적인 종교개혁이후 국가로부터 교회가 독립되어 전개되어져 나간 것은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루터교는 루터가 아우구스틴으로부터 물려받은 두 영역에 대한 철저한 이원론적 경향을 띠게 되었고, 특히 지역적으로 자리잡은 “영주들의 종교개혁”에 점점 더 조정해 나가게 되었다. 반면에 쯔빙글리의 후예 불링거이래 취리히교회는 하나의 국가교회로 정향되어 나갔다.

1536년에 출간된 기독교 강요 첫판에서 섬김직은 사도행전 6장에 결부하여 이미 빈자구호와 관련되어 교회내에 세워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칼빈이 주장하는 섬김직의 주안점은 전래된 가톨릭의 예배의 보조적 봉사 기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있었다. 이러한 섬김직에 대한 이해를 칼빈은 거부한다: “디아콘은 무엇과 관련된 것인가? 디아콘의 과제는 향불을 피우고 성전을 청소하고 개를 쫓아내고 쥐를 잡는 것이다.”

이어 1559년에 펴낸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디아콘을 정의한다:
“빈자구호는 디아콘에게 위탁된다. 물론 로마서안에 두 종류의 디아콘이 등장한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비를 행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행하십시오“(롬12,8). 의심할 것 없이,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의 공적 직분에 관하여 말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개의 단계가 주어져야 한다. 나의 판단이 옳다면, 그는 먼저 자선을 관리하는 디아콘을 말한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빈자와 병자에 대한 수발을 담당하는 디아콘을 의미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가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 과부들이 언급되어 있다(딤전5,10). 왜냐하면 여성들은 빈자에 대해 봉사하는 공적 직무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종류의 디아콘이 주어진다: 그 하나는 교회에서 빈자들에 관한 일들을 관리함으로 섬긴다. 다른 하나는 그들 자신이 빈자들을 직접 돌봄으로 섬긴다. 비록 지금은 ‘디아코니아’라는 표현이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성서는 ‘디아콘’을 빈자들을 위한 구호와 자선에 대한 배분에 있어 책임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로 표현한다. 그리고 동시에 빈자들을 위한 공적 기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디아콘의 직분과제와 안수와 기원은 누가에 의해 사도행전에 서술되어있다(행 6,3). ...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시대에 디아콘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와 우리가 그러한 모범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1559년에 발행된 기독교 강요에서 우리는 칼빈의 신학적 구상에 대한 분명한 구조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섬김직에 대한 서술이 성서에 근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성서적으로 관련된 구절은 행 6,1-6; 딤전 3,8-13; 롬12,8; 롬 16,1 이하와 딤전 5,3-10이다. 특히 사도행전 6장에 관한 해석은 역사적으로 개혁교회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빈자구호의 교회직분인 섬김직에 관한 이해에 각인되어있다. 교회직제로서 섬김직의 근본적인 장치외에, 롬 12,8에 대한 해석은 디아코니아적 실천에 대한 이중적 기능이, 마틴 부처의 모형에 따라, 교회의 헌금을 분배하고 수발을 행하는 것으로 서술된다. 그가 1540년 기술한 로마서 주석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사도가 여기에서 생각하고 있는 헌물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 아니라 소위 ‘디아콘’ 혹은 빈자구호자들이 교회의 자산을 나누어 주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자비를 행하는 것, 즉 병자구호는 고대교회에 있어 그리스도교인 미망인들과 교회의 다른 봉사자들이 맡은 것이었다.”

칼빈에게 있어 섬김직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이들을 조력하는 항존직이다. 즉 인간의 육신적 곤경에 대한 협력체로서 교회의 봉사를 수행한다. 칼빈에게 있어 섬김직은 교회적 봉사의 네 번째 양식에 속하는 것으로 목사, 박사, 장로 다음에 위치한다. 하지만 디아콘은 교회의 대표자이지 장로의 대변자나 목사의 종이 아니다. 즉 섬김직은 교회의 부속물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다양한 직분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선포와 성례전을 맡은 목사,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디아콘, 운영을 맡은 장로, 성서를 해석하여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하는 박사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섬김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6. 여성 섬김직

칼빈에게 있어서 성서에 근거한 디아코니아의 틀 속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여성들의 디아코니아 실천이다. 이것은 롬 16,1이하; 딤전 3,11과 5,3-10에 근거한다. 롬 16에서는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디아코니세인 뵈뵈를 딤전 5,10에서 나타나는 디아코니아적 실천으로부터 해석한다.

1551년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러한 봉사를 딤전 5,9-12에서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은 교회재정으로만 보조를 받을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봉사를 통하여 병중에 간호를 받는다. 이를 위해 가정살림으로부터 자유하고 자녀들에 대한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망인들이 하나님 섬김과 경건의 의무에 헌신되어진다. ... 이러한 과부들의 유익하고 거룩한 봉사는 게으른 수녀들 연합체들의 붕괴의 시대에 진가를 드러냈다.”

칼빈은 제네바의 디아코니세직의 결핍된 기능을 문제시하며 신약성서안에 그리스도교 교회에 확고히 드러난 성서적 사회모델을 연결한다. 칼빈에게 있어 디아코니세직의 존재는 신적 질서와 연관된 교회의 순종을 위한 시험대였다. 하지만 칼빈은 이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또한 제네바의 칼빈 후계자들은 디아코니세들의 활동을 시대한계적인 것으로 상대화하고 교회의 비 본래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 후 베젤 개혁교회 총회만이 한번 더 디아코니세직을 세우기 위해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디아코니세직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제외하고, 칼빈이 계획한 일들은 실행에 있어 수많은 어려움에 처했다. 특히 칼빈은 종교개혁과정속에 시행정당국과 마찰로 인해 제네바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이로 인해 칼빈이 관철하고자 했던 신앙을 기반한 그리스도교적 시민적 지역사회를 향한 공동체 국가의 혁신적인 구상은 좌초되었다. 그리고 제네바도 시민적-지역적 개혁운동과 개신교적 종교개혁에 있어 기껏 부분적인 합의를 이루는 데에 그쳤다.

7. 칼빈과 디아코니아규정의 단초

1561년 설정된 제네바의 교회규정(Ordonnances Ecclesiastiques)에서 칼빈은 교회에 대한 사고를 좀 더 두드러지게 강조한다. 그리고 이 규정을 통해 영적인 권력과 세상적인 권력을 분명히 구분한다. 이 규정은 먼저 유럽, 그 다음에는 미국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진다. 또한 칼빈의 주저인 기독교 강요에 아주 폭넓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규정에 따르면, 교회의 형성을 위하여 4개의 직제가 필수적으로 설정된다: 목사, 박사, 장로 그리고 디아콘.  칼빈은 이러한 직제론을 이미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펼친 바 있다.

칼빈의 신학적 구상에 따르면, 교회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영적인 정부의 관할하에 있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것이며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이 네 개의 직무는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한 기능 수행자들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확실하게 드러나고 디아코니아도 자명하게 드러난다. 칼빈의 스승인 마틴 부처는 열네 개의 “법”중 1550년에 펴낸 그리스도의 완전한 지배(De Regno Christi)에서 교회규정을 위한 그의 신학적 성찰을 진술하는데, 여섯 번째 법에서 곤경을 당하는 이들을 위한 돌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잘 부양되어지고 경건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디아코니아가 없는 “거룩한 이들의 공동체는 진실하지 않을 수 있다.“ 칼빈은 그가 부쳐보다 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는 사상에 정향되어 있었고, 그러한 경험을 제네바로 가져왔다.

제네바로의 귀환한 이래, 디아코니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칼빈에게 있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시위원회는 디아코니아를 위한 재산을 신중하게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1545년 칼빈은 위원회의 무사려함에 대해 교회재산을 선한 목적에 합당하고 실제적으로 사용되도록 질책한다. 빈자들을 위한 기구는 칼빈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즉 1535년 이래 이전의 크라리센 수도원의 “큰 요양소”에 곤경에 처한 이들, 빈자들, 병자들,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 과부들 그리고 고아들을 이미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병자들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치료받게 되었다. 그 밖에도 나그네들을 위한 머무는 곳이 설치되었다. 또한 다른 도시들처럼 페스트 전염병환자같은 긴급한 경우에 처한 이들을 위한 비상구역도 생기게 되었다.

이를 위해 내부적인 구조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교회의 네 번째 직제인 디아콘은 전술한 바와 같이,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병자구호와 빈자구호를 담당(Procureurs)하게 되었다. 동시에 빈자들을 위한 공적 기금을 관리(Hospitaliers)하는 역할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장로처럼 선출되어 졌다. 이들은 구빈원에서의 과제 이외에도 도시안에 흩어져 있는 빈자들을 돌보고 부양하는 것을 조직화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임금을 받는 디아콘을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원회는 경리역할을 하는 디아콘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또한 시의 의사, 구빈원의 교사들, 특히 병자들과 빈자들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하는 이들은 임금을 받았다.

서유럽내의 교회규정의 영향은 충분히 만족할 만큼 평가되어질 수 없다. 하지만 요한네스 라스코가 디아코니아 규정과 관련하여 실천한 것은 강조되어져야한다. 네덜란드, 오스트후리스란트 그리고 니더라인에서 그의 영향은 감지되고 폴란드의 종교개혁교회에서도 약간의 현상들이 잔존한다. 라스코의 교회에서는 제네바보다도 견고하게 디아콘 협의체를 독립적으로 구성하고, 그들의 신학적 기초에는 칼빈의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제네바는 전 유럽에서 나그네를 환대하는 정신으로 유명하다. 거주민의 5퍼센트 이상이 매년 일시적으로 이곳에 머물기 위해 온다. 여기에 마찰이 있었고 때로는 외국인 적대현상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보호를 받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철저한 사회질서정책의 틀안에서만 해결되어질 수 있었다.      

8. 나가는 말

우리는 다시 한번 16세기 개신교 초기 형성과정에 깊이 관여한 개혁가 칼빈의 신학을 디아코니아적 실천과 연관하여 정리해 본다:

종교개혁의 후발주자인 칼빈은 개혁 초기의 구상들을 변형시켜 정착시키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래서 칼빈은 선행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주신 증거”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 칼빈은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를 강조하게 된다. 또한 칼빈은 성서에 근거하여 섬김직을 세운다. 즉 복지 수행의 교회직무자로 디아콘을 세운다. 또한 여성 섬김직인 디아코니세를 세워 지역내의 빈자들을 섬기는 일을 맡겼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나가지는 못한다. 그에게 있어 4직제 중 디아콘직은 빈자들을 위한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과 병자간호와 빈자구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칼빈의 신학적 명제는 제네바의 교회규정으로 이어진다. 이 규정에 나오는 4개의 직무, 즉 목사, 박사, 장로 그리고 디아콘은 하나님의 영적인 정부를 이루기 위한 기능 수행자들이다. 특히 칼빈은 디아코니아를 진실한 교회의 시금석으로 간주하는데. 이를 위해 내적인 구조가 구체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디아콘은 병자구호와 빈자구호 그리고 빈자들을 위한 공적 기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리해보면, 종교개혁의 신학적 명제 중 핵심인 칭의론에 대한 개혁가들의 원래 의도는 신앙만을 강조하려는 일면성에 있지 않고 신앙과 사랑의 통일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신학적 변혁은 신앙적 실천을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추동시켜 나아가게 했다. 즉 루터가 이미 초기 저작에서 표현한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단초들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신학적인 새로운 단초들은 이어서 빈자들에 대한 새로운 규정들로 이어졌다. 즉 종교개혁의 결과로 새로 조직화된 빈자구호는 새로이 넘겨받은 교회재산의 운용을 위해 지역적이고 지역교회적인 빈자구호기금(이른 바, 모금함규정, 금고규정 혹은 빈자규정에 근거한 공동기금함, 교회모금함)을 구성케 된다. 이에 대한 종교개혁 초기의 중요한 예를 루터의 구상하에 설치된 라이스니히 금고규정과 이 후 칼빈의 영향아래 제정된 제네바 교회규정을 들 수 있다. 이 규정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종교개혁에 의해 생겨난 개신교 교회는 사회복지 실천과 빈자구호없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종교개혁가들의 복지원칙과 영향은 16세기의 중앙화된 빈자구호를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즉 종교개혁은 복지사업의 세상적 구조와 사회정책의 새로운 발전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구체적으로 스위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즉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등에서 개혁가들의 사고를 종교개혁과 함께 받아들였다. 서로간의 역사의 다양성 때문에, 이들 각 나라에 관해 우리는  통일된 디아코니아적 모델을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복지국가를 형성해 나아왔다.

개혁가 루터나 칼빈에게 있어 교회직제에 관한 이해는 종교개혁기간 내내 이전의 가톨릭과는 아주 다른 입장을 고수하였다. 즉 이들에게 있어 성직자와 평신도의 질적인 차이는 지양되었다. 하지만 직제의 가르치는 기능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직제에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개혁가들의 사후, 얼마 않되어 교리화, 정통주의화, 화석화되어갔다. 또한 공동금고규정은 개신교 내부의 신학적 논쟁과 신앙고백전쟁을 겪으면서 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제도로써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공동기금은 행정당국이나 특별재단의 책임으로 넘겨지게 된다. 또한 빈자구호를 위한 구체적인 섬김사역자인 디아콘과 디아코니쎄도 차츰 사라지게 되거나 목회의 보조역할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신교적 정체성과 본질의 결핍은 17세기부터 그 면모를 드러낸 경건주의운동과 19세기의 디아코니아운동에서 다시금 강화된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신학과 실천인 디아코니아는 오늘의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그리고 유럽의 사회복지체계, 더 나아가 유럽 통합과정의 가장 근저에서 사회적 에토스로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즉 사회복지국가의 원칙인 보충과 연대의 원칙이 유럽사회의 사회적 보편가치관으로 자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디아코니아운동을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영향사적 고찰은 당면한 한국사회의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을 위하여 한국개신교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추동시킨다. 또한 개신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복지실천을 강화시키고 당면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한국개신교의 디아코니아적 책임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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