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며칠 전 미국 Pew Research Center에서 세계 종교인구 동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았다. "윤리적이 되고 선한 가치관을 가지기 위해 신을 믿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이른바 제1세계 국가들은 '필요 없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70%대에서 90%에 이른다고 했다. 오로지 미국만은 예외적으로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이 54%에 그쳤다. 한국도 53%였다. 한국도 제1 세계 반열에 들어가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70% 이상 될지도 모르겠다.

윤리적이 되는 데 신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몇을 소개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유발 하라리가 최근에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이란 책 중 Godless Ethics이라는 소제목 밑에서 윤리적 삶은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following divine commands)"이 아니라 "아픔을 줄이는 것(reducing suffering)", 따라서 아픔을 깊이 감지하여 내 행동이 나와 이웃에 어떤 불필요한 아픔을 주는가를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고 보았다.

달라이 라마도 <종교를 넘어>라는 책에서 극락 지옥으로 사람들을 윤리적이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았다. 내가 윤리적 삶을 살면 행복하고 비윤리적 삶을 살면 불행하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자연히 윤리적이 된다는 "secular ethics"(종교와 관계없는 윤리)를 제창하고 있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종교 없는 삶>에서 자기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전통 종교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윤리적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감옥에 있는 죄수 중 무신론자는 1%도 안 된다는 보고도 있다.

캐나다 사회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은 <거대한 신>이란 책에서 인류 역사에서 신을 필요로 하던 때가 있었다. 신이 사다리 역할을 해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 그 사다리를 걷어차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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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미국 사람들 44%, 한국 사람들 45%는 윤리적이 되기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단다. 미국이나 한국은 기독교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모두 신을 믿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은 물론 자신은 100% 신을 믿는다고 할 것이다. 이른바 유신론(theism)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묻지만, 입으로는 신을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실제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현재 한국 기독교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와 부조리, 성직자의 탈선, 금품 선거, 성직매매, 성직세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하늘에서 친히 굽어보시고 계신 하느님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들이 어찌 이런 일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분명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신앙 태도를 구태여 이름을 붙이라면 "실제적 무신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실제적 무신론이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만연된 신관인지 모른다.

사실 이런 실제적 무신론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21세기에 걸 맞는 신관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 혹은 벌이나 주고 소원이나 들어주는 신, 코로나바이러스도 퇴치하지 못하는 신이 더 이상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신은 어떤 신일까?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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